란의 폭주
34. 함세복
결국, 아키에게 다시 가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아키의 약은 아키의 경고대로 강력했다. 결국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매번 홀린 듯이 밤마다 아키의 집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의 싸움이 너무나도 끔찍했다.
싸움 자체보다 끔찍한 것은, 나의 두려움이었다.
절대로 수연이를 의사 사모님 따위로 만들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이었다.
의사 사모님이 된다 해도, 결국 유혹해서 어디론가 함께 도망쳐 버리고 말겠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걷지 못하게 되는 날이 오면."
수연은 그렇게 말하며 이마에 손등을 얹었다.
"그때는 이렇게 방바닥을 굴러다녀야 되겠지."
그리고는 거실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그렇게 거실 바닥을 구르는 그녀는, 그 비참한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너무나도 요염했다. 그 요염함이 내 가슴을 찢었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물컵을 던져놓은 자리까지 온 그녀는, 등 뒤로 날카로운 물컵 조각이 박히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의사 선생님께서, 이런 사람을 부인으로 맞이할 거라고, 지금 나한테 말하고 있는 거야? 함세복? 대답해 봐."
"그만해!"
결국 내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유수연이 이겼다. 생각해보면, 내가 이 아이를 이긴 적이 몇 번이나 있었던가.
그날 밤, 밤새 수연의 등에 박힌 유리조각을 빼내야 했다.
새볔녘, 잠든 수연을 내려다보는 내 손이 주체할 수 없이 떨려왔다.
그게 금단현상이라는 걸 그때는 몰랐다.
역시, 이 약은 강하고, 사랑스럽다.
호화롭지만 을씨년스러운 아키의 집에서, 나는 황홀한 기분에 취해 눈을 감고 소파에 머리를 기댔다.
이거라면, 언젠가 수연을 잊을 수 있게 해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