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사소한 노여움

by Kalsavina

내 인생의 사소한 노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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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를 살해한 범인이 잡혔다는 소식이 휴대폰 너머로부터 전해졌을 때 나는 숨을 삼켰다. 엇나간 호흡 탓인지 아니면 안도감 때문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때부터 계속해서 나는 약한 호흡곤란을 느끼며 답답한 가슴을 두드려야 했다.

때마침 남편이 집에 있었기에, 같이 택시를 타고 경찰서로 가기로 했다. 다행히 남편은 당장에라도 경찰서에 가서 그놈 면상을 확인하겠다는 내 굳은 결의를 꺾지 않았다. 주먹을 꼭 쥐고, 지갑과 핸드백을 챙기면서 나는 정아와 마지막으로 나누었던 아니 정확히 말해 마지막으로 ‘만나서’ 나누었던 대화를 되새김질하듯 차근차근 떠올렸다. 그 기억은 내 머릿속 노트에 꼼꼼히 정리되어 있다가 적절한 때를 만나자마자 일목요연하게 내 의식의 수면을 따라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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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할 거야.”

정아와 나는 한때는 꽤 친했지만, 으레 대부분의 친구들이 결혼하고 나면 그렇듯 각자의 가정을 꾸린 후에는 별 교분이 없었다. ‘없었다’고 잘라 표현하기가 망설여지긴 해도 그게 사실인 걸 어쩌겠는가. 그래서였을까, 나는 거의 5년만에 만난 그녀의 갑작스러운 선언이 그리 놀랍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유를 물어본 것도 별달리 놀라거나 궁금해서 그랬던 건 아니다. 어찌됐건 그런 마음을 먹은 데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을 게 아닌가.

“그게 그러니까.....페스티벌 때문이야.”

“뭐?”

“재즈 페스티벌.”

이게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남편의 외도, 고부갈등, 가정폭력, 혹은 그러한 류의 길고 지루한 스토리를 예상했건만. 이건 예상이 엇나가도 한참 엇나가지 않는가.

오랜만에 만난 정아는 옛날 그대로였다. 단아했고, 청순했지만 어딘가 박복해 보이는 느낌을 주는 얼굴. 송아지 눈처럼 큰 눈 위로 그려진 큼지막한 쌍꺼풀 탓이었을까. 옛날이나 지금이나 아니면 살이라고는 하나 없는 약간 우묵하게 패인 뺨 탓이었을까. 우리는 햇빛이 아주 잘 들어오는 어느 카페의 창가에 앉아 있었다. 블라인드가 쳐진 쪽으로 앉은 정아의 얼굴에 짙은 음영이 드리워져서였을까. 잠깐 싸한 느낌이 가슴을 훑고 지나가는 것이 지금도 생각난다. 아마 재즈....페스티벌이라는 단어가 주는 그 청량감 때문이었을까.

“작년 가을에, 애들 아빠랑 애들 데리고 가평에 갔었거든.”

작년 가을, 가족 나들이, 가평. 나는 머리가 나쁜 편이 아니었기에 정아가 제시한 키워드에서 어렵지 않게 답을 찾아냈다. 10월달이면 가평 근처의 자라섬에서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이 열린다. 거길 갔었구나. 거기서 무슨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다.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정아가 입을 열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뭐가?”

“집에 돌아오는 길에 자라섬에 들렀어. 재즈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는데.”

“그랬는데?”

“돌아서야 했어.”

“뭐?”

“나는 너무너무 가고 싶었는데, 그 곳을 이렇게 찾아왔는데, 그 앞에서 돌아서야 했다고. ”

“아니 왜? 대체 왜?”

“그게......남편이 그러더라고. 지금은 안 된다고. 아이들도 있고, 밤까지 있으려면 추워질 텐데 아니 이미 추워지고 있는데, 담요나 파카 같은 것도 없고, 애들이 감기 걸릴 테고. 그렇다고 자기 혼자 애 둘을 차에 태워 숙소까지 갈 수도 없고. 아니 이미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었으니까 그냥 집에 가야 하는데, 집까지는 차로도 다섯 시간이나 걸리고, 난 대중교통편도 모르고. 또.”

“그만해.”

그때 나도 모르게 그만하라고 했던 걸, 이제 와서 이렇게 후회하게 될 줄 몰랐다. 그때 정아는 그 재즈 페스티벌을 포기해야 했던 이유를 그렇게 끝없이 조목조목 열거하면서 자신을 필사적으로 설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는 그걸 몰랐다.

그래서 나는, 정아의 편을 들지 않았다.

“네 신랑 말이 맞네. 그래,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그건 네 신랑을 탓할 수도 없는 거라고. 누가 봐도 상황이 그렇네. 더구나 네 아이들, 아직 둘 다 아기 아니야? 큰애가 올해 여섯 살이던가? 둘째는 몇 살이지? 아무튼 네 신랑이 그 애들을 데리고 어떻게 혼자 장거리 운전을 하라는 거니?”

정아는 대꾸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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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몰랐다. 정아가 느꼈을 그 답답하고 억울한 마음을. 스스로의 의지를 그렇게 가족이라는 이름의 타인에 의해 꺾이고 또 꺾이던 마음을. 간절히 원하던 것들을 번번히 눈앞에서 놓치고 돌아서야 했을 때의 그 허탈한 마음을,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정아에 대한 기억은 또 있다.

우리가 한창 어울려 다니던 대학 시절, 정아에게는 애인이 있었다. 누가 봐도 별볼일없는 남자였지만, 그는 정아에게 다정했고 둘은 한쌍의 원앙이 저리가라 할 만큼 애틋했다. 그랬던 남자와 정아는 정아가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헤어졌다. 정아의 부모님이 사생결단하고 정아의 연애를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혼자 힘으로 장사와 집안일을 다 해내며 가족을 이끌어 오다시피 한 정아의 어머니의 반대는 대단했다. ‘나는 보란 듯이 내 딸을 좋은 집안에 시집보내 사돈댁 덕 보며 그간의 고생을 다 보상받겠노라’고 공공연하게 외치고 다니던 분이었다.

“참 대단하시다, 너네 어머니.”

딸의 친구들 앞에서까지도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외치시던 분이었다. 다들 약속이나 한 듯 혀를 찼지만 정아는 묵묵부답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아의 어머니는 자신의 딸만큼은 좋은 남자와 결혼해 고생하지 않고 사랑받고 살기를 원했을 뿐, 다른 뜻은 없었으리라고 본다. 하지만 정아가 죽어버린 지금, 그녀의 악에 받친 염원은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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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택시가 경찰서 앞에 다다랐지만, 쉽사리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생각해보니 정아와의 마지막 대화는 어느덧 반년 전이었다.

그날 나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쉽게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그날따라 남편의 귀가가 늦어서였는지 아니면 아이가 아파서 보채서였는지, 그것도 아니면 시누이와의 빈정 상하는 통화 탓이었는지 좌우지간 늦게까지 깨어 있었던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 거의 12시가 되어갈 무렵 전화가 걸려왔다.

-늦은 시간에 전화해서 미안해.

-괜찮아. 어차피 안 자고 있었으니까.

-불면증 있니?

-아니.

-나 이혼했어. 서류 접수한 거 통과됐어. 이제 서류상으로는 나 혼자야.

-언제 한 거니? 오늘?

-아니, 이제 두 달 정도 됐어.

-애들은 남편이 데려가고?

-응.

더 할 말이 없었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응. 저기 그래서. 나 이제 갈려고.

-가다니, 어딜?

-재즈 페스티벌.

-자라섬?

-응.

-혼자?

-응.

-조심해서 갔다와.

그때쯤 남편이 들어왔던 것 같다. 그래서 더 이상 통화에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려서, 건성으로 정아에게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그로부터 사나흘 정도 지났을 때 유경이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정아, 죽었어. 살해당했대. 경찰이 그러는데, 자라섬 근처 국도변 풀숲에서 시신을 찾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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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얘기지만 정아의 죽음은 아주 잠시, 인터넷이며 텔레비전 뉴스를 떠들썩하게 잠식했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순식간에 잠잠해졌다.

정아의 남편과 아이들은 그 무렵 일본에 가 있었고, 그래서 알리바이가 완벽했다. 정아의 남편이 사주한 게 아닐까라는 의심도 잠시 해 보았지만, 그럴 이유가 없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정아가 위자료라고 받은 돈도 형편없는 액수였다.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지만 별반 기대하지 않았다. 애초에 경찰을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정아를 잊어갔다.

잊어가던 정아를 떠올린 것은 불과 닷새 전이었다.

시어머니 생신을 확인하고 미리 날짜를 체크해두기 위해 책상용 카렌다를 들추던 나는, 무심결에 정아가 살해당했던 작년 10월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어떤 생각이 머릿속에 스치고 지나간 순간, 나는 번개처럼 일어나 온 집안을 뒤져 용케도 남아있었던 작년 달력을 찾아냈다.

정아가 내게 전화한 날이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았지만, 정아와의 마지막 통화가 있었던 날의 기억을 역추적한 어느 순간, 나는 정아와의 통화가 10월이 아닌 11월 초순경임을 분명하게 기억해냈다. 아마 정확하게 확인하면 날짜가 분명히 나오겠지만 그때는 11월이었다.

이미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이 끝난 시점이었다.

곧이어 나는 인터넷을 켜고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을 검색했다. 작년 가을,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은 주최측의 사정으로 인해 아예 열리지도 않았었다는 사실을, 나는 불과 닷새 전에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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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정아는 자라섬으로 갔다. 그리고 죽어서 돌아왔다.

몇몇 기자들이 이미 진을 치고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수사과로 들어갔다. 이미 조사가 다 끝나고 이송을 준비하는 경찰들은 분주했다. 그들의 어깨 너머로 나는 검은 점퍼를 머리 위로 덮어쓴 사내의 뒷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순간, 냉정하게도 나는 깨달아 버렸다. 나는 정아의 절친한 친구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랬기 때문에, 절친한 친구가 되어주지 못한 한 사람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그 자리에서 나는 이성을 잃었다.

“얼굴 좀 보자!”

일시에 사내를 제외한 모든 경찰들의 얼굴이 나를 향했다. 온몸의 피가 역류하면서 아까부터 약하게 나를 압박하던 호흡곤란이 거대한 흉통으로 다가왔다.

“야 이 개쌍놈아. 얼굴 좀 보자고! 걔를 왜 죽였어?!”

“진정하세요!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은주 엄마! 진정해!”

남편과 경찰이 나를 제지했고 흥분한 나는 고래고래 악을 쓰며 그 자리에서 끌려나갔다. 야 이 개쌍놈아, 걔를 왜 죽였어. 네가 뭔데 걔를 죽였어. 걔가 뭘 잘못했는데. 야 이 개쌍놈아.....개새끼야.....

공허하게 반복되는 나의 절규가 내 귀에도 들려왔다. 끝없이 되풀이되고 또 되풀이되는, 공허하고 허탈하기만 한 목쉰 절규. 아마도 이 세상 모두가 한번쯤은 질러 보았을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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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왜 그랬냐?”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이 뇌까렸다. 돌아보니 남편의 옆얼굴은 한심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솔직히 너 정아씨랑 그렇게 친하지도 않았잖아. 살해됐다는 연락도 몇다리 건너 들었다며. 오버한 거 아니야?”

“오버할 만하니까 오버했지.”

쓸쓸하게 그렇게 대꾸하고 나니, 다시 분노가 치밀었다. 그런 내 마음을 읽은 듯 남편이 맞받아 대꾸했다.

“잊어버려라. 뭐 말 안해도 시간이 가면 다 잊겠지만. 정아 씨는 안됐다만, 여자 혼자 여행을 간다는 거 자체가.....아니다. 누구 탓을 하겠냐. 탓을 하자면 그 죽일놈이지만, 법원에서 형량이나 제대로 때릴려나 모르겠다.”

억울하고 분했다.

남편의 말 때문이 아니다. 정아가 불쌍해서도 아니다.

죽고 난 다음에야 정아를 이해하게 된 나 자신에게 화가 나서 그런 것도 아니다.

어차피 인생사라는 게 그렇다. 한없이 어리석게도 그렇다. 늘상 적절한 때를 놓치곤 한다. 내가 화가 난 것은, 내 분노가 내 인생의 사소한 노여움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이 분노가, 나를 그리고 세상을 바꿀 수 있을 만큼 거대한 분노가 아니라, 앞으로도 수없이 맞닥뜨리게 될 내 인생의 사소한 노여움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기 때문에, 나는 분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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