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명
당신은 사람들의 표현을 빌리면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 때문에 자살하셨습니다. 당신이 자살하셨을 때 당신 곁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당신은 어쩌면 타살을 당했을지도 모르지만, 그 희박한 가능성 때문에 당신이 자살하셨다는 말을 믿지 않을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당신이 조금은 덜 고결한 이유로, 세상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이 불륜이라든지 생활고라든지 하는 치졸한 난관 때문에 자살하셨기를 바랬습니다. 당신을 사랑한 사람들은 당신을 구하지 못했고 당신이 숨을 거두시면서 부른 사람들의 이름 중에 제 이름이 없었을 거라는 걸 압니다. 아니 분명히 없었습니다. 누군가의 표현을 빌리면 당신은 '어두운 복도를 쓸쓸하게 걸어가셨다'고 하지만 당신을 쓸쓸하게 만들고 당신을 고립시키고 당신을 자살로 몰아간 사람들의 이름 가운데 제 이름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분명히 있었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평범한 인간에 불과했을 당신이 그런 고결한 이유로 자살하다니 그건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당신은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웠던 사람'으로 기억되어 버렸고 남은 사람들은 모두 '자살 방조자' 혹은 '자살 종용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당신은 절대정의는 절대적으로 파멸한다는 걸 몸소 보여 주셨고 그럼으로서 남은 사람들을, 아니 남은 저를 초라한 인간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을 후회하게 만들었습니다. 인간들이 만든 지고지순한 윤리대로라면 살아 있었어야 했을 당신은 죽어 버렸고 죽어도 상관없는 사람들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당신이 당신 자신의 연약한 모습을 숨겼기 때문에 사람들은 (사실은 저는)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숨겼습니다. 그건 당신을 증오했던 사람들이 당신을 향한 증오의 마음을 숨긴 것과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저는 당신이 스스로 끝내는 것만이 답이라고 했다는 걸 믿을 수가 없지만 어쩌면 그건 극히 순간의 충동이었고, 우리가 운명이라고 부르는 불가항력적인 힘이 그 기회를 잘 포착해 당신의 목숨을 빼앗았고, 정말로 영혼이라는 것이 존재해서 당신의 영혼이 후회하고 있으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 그건 당신이 죽음을 택하신 이유로는 너무 고결합니다. 당신이 고결한 인간이었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정말로 그게 이유였다면, 전 이렇게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은그 아름다운 이유로 죽은 당신의 남은 허황한 그림자만 예쁘게 포장해 남은 사람들이 당신 때문에 울도록 만들었지만, 그들이 그들 스스로 얼마나 비참해졌는지는 그들 스스로도 모르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을 증오합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이렇게 죽었는데 넌 아직도 살아 있는 거냐'는 질문을 던져 놓고, 걸어다니고 말하고 웃고 찡그리고 담배 연기를 내뿜는 당신의 실체를 영원히 숨겨 버렸습니다. 진리니 정의니 하는 것을 추구하면 결국은 당신 꼴이 된다는 걸 가르치신 겁니다. 그리고 살기 위해서는 타협하고 순응하고 회피하고 간사해져야 하고, 그러면서도 누군가가 정의를 외치면 그 정의에 동조하는 시늉이라도 하며 살라는 모순을 자살이라는 최고로 우스운 방법으로 가르치셨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정의로워야 한다고 외치고 정의가 승리한다고 외칩니다. 정말로 당신이 스스로를 꺾으셨다면, 아무리 당신의 정신을 좀먹은 인간들을 탓한다 해도 전 당신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당신을 하찮게 여겨 당신의 정신을 좀먹은 인간들은 용서 따위가 필요없는 인간들일 것입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용서할 수 없는 건, 당신이 사랑하셨고, 당신을 사랑했고, 당신 곁에서 당신을 구할 준비가 언제든지 되어 있었는데도 어찌된 셈인지 당신을 외면하고 있었던 사람들, 바로 '우리들'입니다. 그리고 저는 '우리들'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들'과 ‘우리들' 속에 섞인 저는 절대로 자신을 용서하지 못할 겁니다. 죽은 사람은 시간이 가면 잊혀지게 마련이고, 우리들 역시 시간이 가면 당신을 잊을 것이고, 설사 기억한다 한들 지금 이 순간과 같은 그런 기억은 분명히 아닐 겁니다. 당신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처럼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말은 거짓말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패배자로 남을 겁니다. 그리고 당신을 패배자로 만든 모든 사람들이 서로 용서할 수도 용서받을 수도 없을 겁니다. 그러나 당신을 잊든, 혹은 잊지 못하든 역시 우리들은 살아갈 겁니다. 살아남았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들은 승리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있는 한 당신이 당신 자신과 우리들에게 씌운 굴레는 풀지 못할 것입니다. 당신이 돌아가실 때, 비명을 질렀는지 어땠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눈 앞에서, 손 끝에서 당신을 잃고 만 나는 비명을 지릅니다. 이 비명은 이제 다시는 들을 수 없는 당신의 목소리처럼 사라지겠지만, '당신의 목소리가 살아 있는 사람의 귀에 들리던 때가 있었다'는 사실처럼 없앨 수 없는 흔적을 남길 것이고 그 흔적은 우리 죽는 날까지 우리 가슴 속에 살아남아 끊임없는 비명을 지르게 할 것입니다. 그 비명은 아마도 너무 낮아서 들리지 않을 테고,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지르는 그 낮은 비명의 울림이 우리 가슴 속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 채 살아갈 것입니다. 하지만, 어쩌면 당신과 비슷한 누군가가 비슷한 이유로 어딘가에서 당신과 같은 방법으로 죽어갈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운명이라고 부르는 불가항력이 그러한 죽음을 알려 주지 않는 한 그조차도 우리는 눈치채지 못하겠지만 말입니다. 제가 아직도 반신반의하며 당신 정말 자살하셨느냐고 묻고 있는 이 시간에, 누군가는 죽어가고 있을지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2001년 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