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의 폭주
37. 함세복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팠다.
눈을 떠 보니, 나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매우 부드럽고 푹신한 침대였다.
주위를 둘러본 나는, 그곳이 수연과 나의 보금자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옷이 모두 벗겨져 있었다. 실오라기 하나 남겨지지 않고.
아마도, 내가 가진 녹음기를 아키에게 들킨 걸까.
약에 취한 동안에도, 녹음기로 아키와의 대화를 계속 녹음하고 있었다.
녀석이 삼일의 마약 공급책이라는 증거를 잡기 위해서.
하지만, 내가 졌다. 녀석에게 멋지게 당했다.
모든 기억을 싸그리 지우고 싶었지만, 빌어먹을 뇌가 어젯밤의 처참한 기억을 하나하나 다시 재생시키고 있었다.
-왜 그런 사람을 사랑해요?
-수연이 누나를 남자에게 빼앗기는 게 그렇게 싫었어요?
싫다고, 싫다고 싫다고 몇 번을 외쳤는지 모르겠다. 그것만은 분명히 기억한다.
지금까지 살면서 그토록 처절하게 절규했던 기억은 없다.
내 옷을 벗기는 아키의 거친 손길, 땀에 젖어 번들거리는 피부. 입 속을 사정없이 파고들던 혓바닥. 그리고.
더는 기억해내고 싶지 않았다.
온몸이 쑤셔왔다. 결코 아파서는 안 될 부위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박영민에게 처음으로 당한 날, 그날 이후 한 번도 아팠던 적이 없는 곳이 아파왔다.
아키, 이 개자식.
처음부터 녀석은 이걸 노렸던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