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의 폭주 -완결
에필로그 - 송선우
어째서 이 참혹한 이야기의 결말을 내가 이야기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박영민은 수연이 아키를 죽이러 간 거라고만 생각해서, 당연히 아키를 죽이고 도망쳐나오는 수연을 어떤 식으로든 빼돌릴 궁리만 하고 있었다. 그녀가 아키의 손에 죽으러 갔으리라고는 전혀 짐작도 하지 못했다. 따라서 도청기를 통해 녹음된 그들의 통화내용을 확인하고도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아키, 즉 김재경의 집 주위를 둘러싼 CCTV와 삼엄한 삼일의 감시망을 뚫고 그녀를 구해 오는 것은 사실상 백 프로 불가능했다는 걸 이제는 나도 알고 있다.
그날, 박영민은 수연에게서 보고를 받자마자 바로 철수해야 했다. 정확히 말하면, 그녀는 아키와의 대화가 도청된 파일의 내용을 들으며 패닉 상태가 된 박영민에게 아키가 죽었음을 전화로 보고한 후 즉시 철수를 요구했다. 아마 그 길로 경찰에 전화를 했을 것이다.
박영민이 도청해 녹음한 파일에 엄청난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 일로 결국 삼일은 해체일로를 걸어야 했다. 당연하다. 삼일의 보스가 함씨 집안의 두 상속자를 죽였다는 뉴스는 전국의 공중파를 타고 일파만파로 퍼졌다.
경찰서에서 수연은 아키의 자살방조 혐의를 순순히 시인했다. 내부 CCTV를 확인한 경찰이, 자신의 머리에 스스로 총구를 겨눈 아키와 그 아키에게 권총을 쥐어주는 수연을 낱낱이 확인한 이상은 시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박영민도 나도, 그녀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을 구하려는 우리의 노력에 무심했고, 그녀 스스로를 애써 구하려 하지도 않았다.
박영민은, 그녀의 음성이 녹음된 녹음 파일을 들으며 흐느껴 울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함세복이 감옥으로 자신을 찾아오는 것만은 막아 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 전에 해둘 이야기가 있다.
나는 그녀에게 약혼을 제의했지만, 그녀는 웃으며 그 약혼을 거절했다.
아무도 모르게. 두 번째로 찾아온 나의 아파트에서.
"저는, 불임이에요."
사실인지 거짓말인지는 지금도 모른다.
다만, 사실이든 거짓말이든, 그 말을 내 앞에서 했다는 것 자체가, 나와는 결혼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더 이상 그녀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이제는 알고 있다.
그녀와 결혼하려 했던 것 자체가 어리석은 짓이었다는 걸.
다만 어떤 식으로든 그녀를 지키려고 했었고, 반드시 결혼이나 약혼을 통해서만 그녀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누군가를 보호한다는 건, 그런 식으로는 되는 게 아니다.
함세복에 대해서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다.
박영민과 나는 우리가 아는 모든 검찰 측 인맥을 동원해 함세복이 마약사범으로 구속되는 것을 막았다. 다행히, 김재경이 삼일의 마약공급책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의 혐의가 죽은 그 자신에게는 불리하게, 그리고 그의 외사촌으로 밝혀진 함세복에게는 유리하게 작용했다.
죽은 김재경이 자신의 상속권을 위협하는 함세복에게 강제로 마약을 투여해 그녀를 마약사범으로 만들었다는 주장이 검찰에 먹혀들었고, 그 결과 그녀는 기소유예로 풀려났다. 실로 다행스러운 일이었지만, 그 이후에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현실 또한 수연과 마찬가지로 가혹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녀는 마약 중독에서 회복되기 위해 약 3개월 간의 집중치료를 받았고, 그 후 일 년이 넘는 시간에 걸쳐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다. 그 기간 동안, 그녀가 유수연을 만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함세복에게는 그녀가 결코 원하지 않았던 거액의 재산과, 그녀가 원하지 않았던 약혼자만이 남았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아름다운 수연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녀는 내가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결코 나와 결혼할 수도, 심지어는 사랑할 수도 없는 이 잔인한 현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박영민은 경찰에 강태석과 관련된 모종의 자료를 제출했고, 그 결과 강태석 건에 대해서는 유수연은 다행히도 무혐의 처리되었다. 그러나 김재경의 자살방조만큼은 형사처벌을 피해갈 수 없었다. 결국 그녀는 스물 다섯 살이 시작되던 해에 교도소에 갇히고 말았다.
아키의 자살방조죄 2년 5개월은, 박영민과 내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녀의 형량을 낮춰 보려고 백방으로 노력한 결과였다.
나의 안티고네를 어떤 식으로든 놓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발버둥쳤었다.
하지만, 그녀는 나를 원하지 않았다. 오로지 그 사실만이, 나로 하여금 그녀를 단념하게 한 유일무이한 장애물이었다.
하기야, 안티고네의 운명을 생각하면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나의 운명적인 사랑은 그렇게 비극으로 끝났지만,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안녕, 나의 안티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