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흐린 날의 유즈

Kalsavina의 인형이야기

by Kalsavina

올 여름 내내 인형들을 들고 다니며 참 열심히 이런저런 사진들을 찍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그 말은, 딱히 마음에 드는 사진을 건지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사진들을 아쉬운 대로 올려 보자면 대략 이렇다.

나름대로 예쁘게 찍혔다고 생각되는 사진들이지만, 이렇다 할 연상의 실마리를 찾아주는 사진들을 건지지 못한 건 사실이다.

올 여름은 유독 비가 잦았고, 그래서 여름이 일찍 끝났다는 착각이 가능할 정도로 더위가 빨리 물러갔고, 흐린 날이 많았다. 그래서 오늘도 그런 착각에 빠진 채 머리를 비우고 있다가 문득 생각나서 찍은 유즈의 사진이 의외로 대박이었던 것이다.

이런 느낌을 아주 좋아한다. 모모꼬돌 특유의 발랄함과 도시적인 공허함의 조화. 그 불합리한 조화 속에서 유독 두드러지는 인형 특유의 화사함이 주변을 압도하는 순간.

그 인형이 점유한 공간이, 사람이 점유한 공간보다 유독 작다고 느껴질 때, 우리는 화려한 도시 속에서 위축된 우리 자신의 초라함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때마침 휴일이라 도로는 한산했고 비가 오기 직전이었던 하늘은 우중충한 회색이었다.

내가 집을 나서기 직전 급히 챙겨나온 유즈, 나의 첫 모모꼬였던 쨍한 얼굴의 주근깨 아가씨는 그 삭막한 배경을 잘도 자연스레 흡수했다. 그 순간 그녀는 분명히 우리가 속한 이 작은 세계의 한 조각을 지배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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