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savina의 인형이야기
오랫동안 공부를 하고 글을 쓰면서, 어느 새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것들에게 얽매이기 시작했다. 내가 끊임없이 머릿속에 입력하는 것들을, 필요할 때 꺼내서 누군가에게 펼쳐보이는 게 불가능한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들려줄 수 있거나 보여줄 수 있다고 한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촉각을 동반하지 않은 존재는 그 실재감이 결여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아무리 인정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쳐봐야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어쩌면 인간의 감각 중에서 촉각은 가장 중요한 감각이다. 우리는 우리가 만질 수 없고 안을 수 없으며 키스할 수 없는 존재를 사랑하는 것을 환상이라 부른다. 반면 우리가 만질 수 있고 포옹할 수 있는 존재를 사랑할 때 우리는 그것을 비로소 사랑이라 부른다. 아, 중요한 단서 하나를 깜박했다.
항상 곁에 있어주는 것, 항상 내 옆에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추상적인 개념을 쫓고 쫓는 가운데 개인적으로는 현실적인 생업에 대한 고난까지 겹치면서 삶이 더욱 팍팍해졌을 때, 내가의지하고 매달려야 할 것은 더 이상 손에 잡히지 않는 구름 같은 이론이 아니었다. 그래서였을까, 어느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 새 나는 반짇고리를 만들었고, 손에 실과 바늘을 쥐고 있었다. 침모가 될 손재주를 타고난 것도 아니면서.
인형의 마법 같은 아름다움에 취해 있다보면, 잠시 내 앞에 당면한 근심을 잊게 된다. 어쩌면 알코올이나 마약보다도 강력한 최면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서글픈 사실은, 내가 아름답지 않다는 사실마저 잊을 수 있어 다행스러워한다는 것. 물론 모든 약이 그렇듯이 인형이 주는 약 또한 그 효력을 발휘하는 시간은 정해져 있어서, 깨어나고 나면 고통에 사로잡히곤 한다. 내가 취했을 때 느꼈던 그 행복감과 정확히 맞먹는 고통의 무게다.
인형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늘상 모자란 사람, 혹은 백일몽을 쫓는 사람으로 취급받기 일쑤다.
하지만 그 반대로, 땅에 발을 딛고 사는 현실의 정체에 늘 목말라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명료한 정신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추상적인 논리와 사고의 압박에 혼란스러워하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 인형 애호가들은 인형을 사랑한다.
인형은 그 어떤 사물보다도 구체적이다. 정해진 형태로 정해진 자리에 있으며, 그 위치를 바꾸거나 그 모습을 바꾸는 것은 온전히 그 인형을 소유한 사람의 의지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