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savina의 인형이야기
물론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는 가난하고, 그러다보니 늘 추구하는 이상과는 동떨어진 삭막한 생활을 영위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내 삶을 지탱하기 위한 최소한의 사치를 자신에게 허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때 그 사치는 옷, 혹은 책이었고, 지금은 물론 인형이다. 옷이나 책에 비해 훨씬 사치스럽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아니 그냥 사치라는 표현이 딱 맞다. 적어도 지금의 내 처지에는.
오늘 모처럼 청명한 가을하늘을 만끽하며 한적한 집 주위의 소공원에서 방해받지 않고 단촐한 출사를 즐기는 동안, 얼마 전부터 줄곧 해오던 생각의 끈을 다시 잡았다.
사치는 돈많은 사람들의 전유물도 아니다. 또한 다른 어떤 현실적인 일상의 의무 때문에 포기해야 할 성질의 것도 아니다. 누구나 살면서 자신을 위한 한두 가지 사치 정도는 누려야 한다. 인생의 낙이라는 표현과는 약간 다르게. 인생의 낙은 고단함을 버티기 위해서지만, 일상에서의 사치는 인생 자체의 퀄리티 즉 살 가치가 있는 인생이냐는 질문과 연관지어진다.
내가 찍었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사진들이 잇달아 찍힌 건 순전히 가을 덕분이다. 이 계절을 정말 사랑한다. 일년 중 내가 진짜로 삶을 살아간다고 느끼게 하는 유일한 계절이다.
물론 우리가 일상에서 누리는 사치는, 우리의 일상이 허용하는 만큼의 사치라는 걸 알고 있다. 이를테면 링메의 머리 위로 눈부시게 펼쳐진 하늘, 그리고 침엽수들 사이로 뒹구는 낙엽, 누구에게나 공평한 자연의 아름다움.
하지만 일상이 허용하는 사치는, 때로는 숨막히는 현실에서 종종 겪는 호흡곤란에 대응하는 가장 효율적인 응급처치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어떤 의미에서는 물과 공기나 다름없이 소중하다.
우리가 단순한 바이탈 사인(생체기능 정상작동 신호)의 노예가 아닌 이상은 말이다.
그러니까 일상에 심각한 위협이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사치라면, 그것이 설령 타인의 사치이든, 혹은 자신의 사치이든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즐겨도 된다고 생각한다.
내게 있어 인형은, 바로 그런 사치 중 하나다. 현재로서는 거의 유일무이한 사치. 일상이 허용하는 사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