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황공을 만나게 된 경위
# 3 황공을 만나게 된 경위
알겠소. 지나치게 서론이 길어진 듯하니 되도록 간단히 얘기하리다. 당시 내 나이 겨우 스물 여덟. 결코 늙었다고 말할 수 없을 나이이지만 그 당시의 나는 거의 인생의 막바지에 다다른 듯한 기분이 들었소. 나는 빈털터리였고 주위에 손 벌릴 사람 하나 없었소. 부모도 형제도 모두 떠나가고 애인 따위는 애시당초 없었으며 어느 노래 가사처럼 ‘새파란 젊음을 밑천삼아’ 되는 대로 살아온 청년이었소. 그렇다고 내가 막가는 인생을 살았다는 건 아니오. 나는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고 교육도 남부럽지 않게 받았지만 타고난 재능과 인간됨의 그릇, 그리고 운으로부터 모두 버림받은 탓에 그냥저냥 사회의 언저리를 부유하게 된 어중이떠중이였던 거요.
어느 날 나는 정말 하룻밤 잘 숙박비조차 없는 신세로 길거리에 나앉게 되었소. 그때까지 그와 유사한 경우를 수 차례 당했기 때문에 그다지 걱정할 필요는 없었지. 그러나 그날 밤, 엄청난 폭우가 몰아쳤기 때문에 나는 별 수 없이 근처에 있던 기차역으로 갔소. 달리 비를 피할 만한 곳은 많았겠지만 그 곳이 내가 생각해 낼 수 있는 장소 중에서는 가장 쾌적하리라고 짐작했거든. 그리고 그곳에서 ‘마침내’ 나는 황공을 만났소.
평일이었던 탓인지 악천후 탓인지, 기차를 타려는 사람이 많지 않았소. 황공은 여유 있게 대합실에 있는 의자에 앉아 파이프 담배를 피워 문 채 앉아 있었소. 얼핏 보기에는 그저 부유해 보이는 지극히 전형적인 장년의 남자였을 뿐이오. 그가 문 파이프가 아니었다면 나의 시선이 굳이 그를 지목하지도 않았을 거요. 아니오. 이제 와서 생각하면, 그에게는 뭔가 ‘아리송한 것’이 있었소. 그건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것이었지.
어쩌다 보니 나는 황공의 가까이에 앉게 되었소. 사실 내가 의자에 앉아야 할 이유는 없었지요.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는 게 내 목적은 아니었으니까. 나는 오늘 밤을 어떻게 새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걱정하면서 대합실 구석에 있는 피씨 룸에나 죽치고 있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소. 돈이 없어 인터넷을 할 수 없겠지만 최소한 밤새 그럭저럭 견딜 수는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오. 그러면서 주머니를 뒤적여 담배를 꺼냈는데 안타깝게도 담배가 꼭 한 개피밖에 남아 있지 않았소. 안 그래도 암담하기 짝이 없는 미래 때문에 콱 자살이나 해버릴까 하고 뒤틀린 심사를 어찌하지 못하는 참에 담배까지 떨어지니 가히 죽을 맛이었소. 그래서 그만 소리내어 중얼거리고 만 거요. ‘이런 씨팔.....’
황공은 내게서 두 자리를 건너간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내가 중얼거린 욕을 들었는지 고개를 돌려 나를 지그시 쳐다보더군, 한 순간 나와 시선이 마주쳤지만 나는 그 시선을 싹 무시해 버렸소. 그는 담배를 피워 문 내 모습을 한참 쳐다보았소. 얼핏 그가 웃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지만 그 역시 무시했소. 그로부터 15분 후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는 꿈에도 짐작하지 못하고 말이오.
담배 한 대가 다 타는 데 딱 10분이 걸립디다. 한 5분 동안 할 일 없이 그 자리에 앉아 있다가, 도저히 딱 한 대만 더 피우고 싶은 그 충동을 어쩌질 못하고 일어서서 담배를 사러 일어서려는데 황공의 목소리가 들렸소.
‘담배가 필요한가. 젊은이?’
나는 난데없는 어르신의 질문에 약간 당황하여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소. 그러나 황공은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이 내 앞에 담배갑을 내밀었소. 포장도 뜯지 않은 타임(Time)이었지. 한 개피라면 또 모르거니와 그 비싼 담배 한 갑을 통째로 내 주는 황공의 행위는 나로서는 이해가 불가능할 뿐 아니라 이해하기도 싫은 것이었소. 그저 ‘선심쓰기 좋아하는 노인’ 정도로 치부하고 싶었던 거요.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서부터 일어났소. 담배를 피우려면 라이터가 있어야지. 그런데 그 망할 놈의 라이터가 고장이 났는지 기름을 다 먹었는지 아무리 불을 붙이려 해도 불이 안 붙더라 이거야. 옆에서 나를 지켜보던 황공의 시선을 의식하며 한참 동안이나 용을 쓰고 있자니, 머침내 그가 딱하다는 듯이 웃옷 주머니에서 성냥갑을 꺼내는 거요. 그리고는 손수 성냥을 성냥갑 귀퉁이에 대고 쳐서 불을 붙여 내게 내밀더군. 그렇게 불을 붙여 문 담배맛이 얼마나 황홀했을지는 상상에 맡기겠소.
그쯤 되면 나의 은인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그 노인, 아니 장년의 사내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안 할 수가 없었소. 그래서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본 순간 그 감사하다는 말은 목구멍 아래로 쑥 넘어가고 말았소. 무슨 충격적인 걸 본 거냐고? 그런 건 아니었소. 단지 그의 벙글벙글 웃는 얼굴을 보니 아무런 말도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소. 황공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소.
“어쩐지 오늘 따라 차를 타기가 싫어서 일부러 역에 왔더니, 젊은이를 만나려고 그랬던 모양이군. 젊은이, 보아하니 갈 곳이 없는 듯한데, 만약 내 짐작이 맞았다면 날 따라오지 않겠소?”
내 선택은 그래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소. 그의 짐작은 사실 그대로였고, 나로서는 그를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될 하등의 이유가 없었으니까. 설령 그를 따라가서 잘못된다 해도 죽기밖에 더 하겠느냐고요. 그로부터 1시간이 지나서야 나는 새마을호 창가 자리에 앉아 옆에 앉은 황공을 의식하지 않으려고 애쓰며 창 밖을 바라보는 자신을 깨달았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