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 말보로 리스트 4

#낯선 호텔

by Kalsavina

# 4 낯선 호텔-황공의 아지트



이윽고 황공을 따라 나는 B시에 도착했소.

택시를 타리라고 막연히 짐작한 내 예상과는 달리 역 앞에 깨끗한 고급 BMW가 황공을 위해 기다리고 있었소. 황공은 아무렇지도 않게 조수석에 올라 탄 후 나를 뒷좌석에 앉혔소. 운전수는 탁한 하늘색의 와이셔츠를 입은 깡마른 사내였소. 어딘지도 모를 곳으로 실려가는 동안 입을 연 사람은 아무도 없었소. 단지 한참을 달리던 도중 생각났다는 듯이 황공이 운전수를 향해 한 마디 물었을 따름이오.

“아기는 잘 있나?”

“잘 있습니다.”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운전수는 한 치의 동요도 없이 운전을 했소. 그러나 폭우 때문에 차창 밖으로 비치는 바깥을 확인할 수 없게 된 나는 더욱 심한 불안감을 안은 채 담배 한 갑의 호의에 이끌려 낯선 사람을 따라온 나 자신을 자책했소.

이윽고 차가 멈추었소. 운전사는 내게 뒷좌석 아래 우산이 있다고 일러 주었고 나는 그의 배려에 감사하며 우산을 쓰고 차에서 내렸소. 삽시간에 휘황찬란한 불빛이 눈 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는데, 내리치는 비가 빛에 반사되어 잠깐 황금의 비를 맞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소.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착시(錯視)에 불과했지. 잠시 후 나는 잠시 내 눈을 멀게 했던 휘황찬란한 불빛의 정체를 깨달았소. 그 곳은 어떤 큰 건물 앞에 위치한 돌로 된 작은 광장이었소. 광장에서부터 건물의 현관까지 열을 지어 늘어선 가로등들의 행렬이 바로 내게 착시를 제공한 불빛의 정체였소.

그 건물은 무척 크고, 세련되고, 아름다웠소. 사람으로 말할 것 같으면 고상하고 위엄있다고나 할까. 단순하지만 품위있는 건물이었소. 첫눈에 보기에도 호텔 같지는 않았소. 짐작하기에는 흡사 어느 잘 나가는 대기업의 본사 건물쯤으로 착각할 만했지만, 그것도 아닐 거라는 짐작이 들었소. 그렇다고 오피스텔로 보기에도 뭔가 어울리지 않는 건물이었소. 문득 주위를 둘러 본 나는 그 건물이 허허벌판 한가운데 있음을 깨닫고 깜짝 놀랐소.

계속 놀라고 있을 겨를도 없이 황공과 나는 안으로 들어갔소. 우산을 든 운전수가 자신은 비를 맞아가면서 황공에게 우산을 씌워 주었소. 현관문을 들어섰을 때 내 눈앞에 나타난 것은 크고 황량한 느낌을 주는 로비였소. 이상한 것은 사람이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오. 그러나, 곧 내가 몇 시간 전 역에서부터 걱정하던 잠자리 문제를 이제 해결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니 갑작스러운 안도감이 마음을 타고 젖어들어왔소. 그래서 한숨을 내쉬었지.

운전수는 로비까지만 황공을 모셔다 놓고는 발길을 돌려 다시 나가버렸소. 그제서야 황공은 고개를 돌려 나를 향해 입을 열었소.

“많이 놀랐지. 젊은이?”

“예? 예......”

그런 상황에서 솔직하다 하여 나를 나무랄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거요.

“너무 걱정 말게. 자네에게 해를 끼치려고 데려온 건 아니네.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자네를 여기까지 데려온 진짜 용건은 내일 이야기하도록 하지. 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8층으로 올라가서 8-5호로 들어가게. 오늘 밤은 거기서 자도록 하고, 불편한 게 있으면 문 옆에 비상벨이 있으니 그걸 누르면 되네. 만약 배가 고프거나 필요한 물건이 있다면 서슴치 말고 그 벨을 이용하게.”

그는 거기까지만 얘기하고 발길을 돌려 다른 엘리베이터를 탔소. 나는 지금까지 나와 함께했던 이 기이한 동반자와 잠시나마 떨어져야 한다는 두려움에 약간 머리가 띵했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 내가 타야 할 엘리베이터을 탄 후 버튼을 눌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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