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말보로 리스트 5

#5 영화

by Kalsavina

# 5 영화




문제의 그 빌딩, 호텔도 오피스텔도 아닌 그 기묘한 빌딩에서의 하룻밤에 대해서는 함구하기로 하겠소. 다만 몇 마디로 간추리는 걸로 긴 설명을 대신하려 하오. 결코 나쁘지 않은 하룻밤이었소.

내가 잔 방은 다소 삭막했지만 깨끗했소. 다소 늦게 잠에서 깨어난 후 배가 고파진 나는전날 들은 황공의 조언대로 비상 벨을 누렀고 아침 식사가 나왔소. 아침은 한 마디로 진수성찬이었소. 이름도 알지 못할 고기며 아채들을 나는 걸신들린 듯이 먹어 치웠소. 굶주림 앞에서는 인간이나 짐승이나 매한가지인 거요. 배를 채우고 나서야 만족스러워진 나는, 황공이 시키는 일이라면 어떤 일이라도 할 준비가 되었다고 할 정도로 황공에게 감사하게 되었소. 그쯤 해서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황공으로부터의 호출이 있었던 거요. 호출은 전화를 통해서 이루어졌소. 전화로 들려 온 목소리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중성적인 목소리였는데, 매우 빠른 어조로 황공이 기다리고 있으니 몇 호실로 와 달라고 급히 지껄이고는 다급하게 전화를 끊었소.

불안한 마음으로 나는 황공에게로 갔소. 나는 황공이 나와 같은 종류의 침실 같은 곳에서 나를 기다렸으리라고 생각했는데, 내 예상은 틀렸소. 황공은 매우 깨끗한 사무실처럼 꾸며놓은 방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소. 깨끗한 사무용 책상 서너 개와 서류 뭉치, 컴퓨터가 그럴 듯하게 놓인 폼이 변호사의 사무실을 연상케 했소. 아니 그보다는 훨씬 아기자기한 분위기였소. 솔직히 황공과는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였소. 내가 들어가자 황공은 반갑게 나를 맞이했소.

“거기 의자에 앉게. 좀 불편하겠지만 이해하게(바퀴가 달린 사무용 의자였소). 푹 쉬었는지 모르겠군.”

“덕분에 푹 쉬었습니다. 친절에 감사드립니다.”

생각해 보니 그때 처음으로 그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했던 거요. 그는 손을 내저으며 대답했소.

“그런 말 말게. 자네는 나와 큰 일을 해야 할 사람이야. 자네가 해야 할 일에 비하면 그 정도쯤은 아무것도 아니지.”

‘이제야 슬슬 본론이 나오는구나’라고 나는 생각했소. 드디어 그가 내게 진짜 용건을 말하려는 참이었소. 나는 매우 긴장했소. 그는 그가 앉은 의자 옆에 있던 담배를 한 개피 피워 물더니 내게 담배를 권했소. 내가 사양하자 그는 자신이 피워 물었던 담배를 입에서 도로 빼내 들고 한참을 들여다보더니 이렇게 말했소.

“사실, 자네가 해야 할 일은 바로 이 담배와 관련이 있네.”

그때까지만 해도 그가 벌여놓은 사업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없었소. 그저 막연히 ‘담배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업가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을 뿐이오. 그게 내가 추론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가장 논리적으로 타당한 추론이었지. 그 다음 순간 황공은 아주 엉뚱한 질문을 내게 던졌소.

“자네, <쉰들러 리스트>란 영화를 본 적이 있나?”

그의 질문이 하도 엉뚱해서 나는 잠깐 당황했소. 그러나 이내 그 <쉰들러 리스트>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소. 그러나 줄거리는 잘 생각나지 않았소. 매우 오래된 영화였기 때문이오. 쉰들러라는 사람의 이야기라는 것, 2차 대전과 나치스와 유태인에 관한 이야기였다는 기억만이 막연하게 떠올랐을 뿐이었지.

황공은 긴 한숨을 내쉬며 담배 연기를 함께 뿜어냈소.

“좀 더 확실한 줄거리를 기억하고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참으로 안 됐군. 그러나 상관없소. 내가 들려주는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할 테니까. 그 이야기는 이렇소. 쉰들러라는 사람이 아우슈비츠에서 죽게 된 유태인들을 구해내기 위해 자신의 사재를 털어 나치스 장교를 매수해서 유태인들을 아우슈비츠로부터 빼돌린다는 내용이요.”

“대강 그런 내용이었다는 건 기억합니다.”

“그럼 거기에서 그 제목인 <쉰들러 리스트>가 뭘 뜻하는지 알겠소?”

선뜻 대답하지 못했지만, 이내 그 제목의 의미를 깨닫기란 어렵지 않았지.

“그가 구해낸 유태인들의 이름을 적은 명단이 아니었던가요?”

“맞았어. 바로 그게 자네가 할 일이야. 이제 대충 감을 잡았나?”

도대체 영화 <쉰들러 리스트>와 담배,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일 사이의 연관성이 무엇인지, 내가 어떻게 알 수 있었겠나?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소.

“모르겠습니다.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나는 황공이 소리라도 버럭 지르며 화를 내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지만, 황공은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 뿐 어떤 말도 하지 않았소. 그러나 다소 낙심한 눈치였기 때문에 나는 속으로 그에게 미안해질 뻔했소.

“뭐, 별 수 없지. 하긴 이건 서두에 불과하니까. 그렇다면,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걸 읽어 보지 않겠나?”

황공은 그가 앉은 의자 옆에 있던 책상에서 파일 하나를 가져와서는 내게 내밀었네. 나는 그 파일을 받아들고 읽기 시작했지.

작가의 이전글[중편] 말보로 리스트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