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 말보로 리스트 6

#6 칼럼

by Kalsavina

# 6 칼럼




2004년 2월 7일 XX신문


담배값 인상: 목표는 건강인가? 아니면 세금인가?


정부가 올 하반기 중 담배값을 현재 가격의 1/5폭 가량 인상할 것이 확실시됨에 따라 이에 대한 반발의 목소리 역시 드높아지고 있다.

현재의 담배 가격은 국산 담배를 기준으로 하여 갑당 1400~2500원 선이다. 만약 정부의 지침대로라면 담배가격은 적어도 올 하반기 중에는 2000원에서부터 많게는 4000원선으로 오를 것이 분명해진다. 이렇게 되면 저소득층의 상당수가 담배를 끊게 될 것이라는 보건복지부의 정책은 얼핏 보기에는 국민의 건강을 애써 생각해서 내놓은 ‘나름대로는 기특한 정책’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그러나 저소득층의 상당수가 담배를 끊게 될 것이라는 전망에 바로 함정이 있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상식적인 사람들의 예상대로, 담배값이 그토록 상승한다면 저소득층은 불가피하게 담배를 줄여야 한다. 아니 흡연을 하고 싶어도 못하게 된다. 돈이 없으니까. 그렇다면 고소득층은 어떠한가? 고소득층 역시 돈이 없어서 불가피하게 흡연율을 줄이게 될 것인가?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보건복지부, 그리고 흡연을 하지 않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신체의 건강’을 전면에 내세워 담배값 인상을 정당화한다. <담배값을 올리면 담배를 피우지 않을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필자는 담배값 상승과 금연에 반대한다.

보건복지부 장관에게는 하등의 악감정이 없다. 그 점에 관해서는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올린다. 그러나 내가 보건복지부의 장관이든 차관이든, 혹은 담배값을 인상할 권한을 쥔 사람이라면, 결코 국민의 건강을 위해 담배값을 인상하지 않으리라. 진정 국민의 신체적 건강을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담배 수입을 전면 금지하고 전 세계까지는 아니더라도 전국의 담배제조업자들을 목졸라 죽일 것이다. 아니 민영화된 담배인삼공사를 다시 공영화한 후 ‘안티 담배공사’로 개칭할 것이다. 그래야 사람들이 확실하게 담배를 끊을 것이고 국민 건강의 업그레이드에 보건복지부가 결정적인 기여를 하는 셈이 되지 않겠는가?


나는 웃음을 참으며 다음 페이지를 넘겼소.


말이 좀 심하게 나왔는데, 보건 복지부 측에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왜? 아직은 담배값 인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결정되지도 않은 사항 때문에 미리부터 열 올릴 필요는 없다.

그러면 다시 저소득층의 흡연 문제로 돌아가자. ‘담배값이 상승하면 저소득층은 금연할 것이다.’ 그냥 듣기에는 그럴 듯한 이 명제가 사실상 명백한 ‘칼 안 든 도둑놈의 횡포’라는 사실을 증명하기란 상당히 어렵다. 우선 ‘담배값이 상승해도 저소득층은 금연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명제를 증명할 길이 현재로서는 없기 때문이다. 이 명제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시험삼아 담배값을 올려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듯하다.

그러나 국민 건강의 증진을 목표로 하는 위대한 ‘담배값 인상 정책’이 그 효력을 톡톡히 발휘하여 저소득층의 금연이 이루어지면, 그건 옳단 말인가? 필자는 과감히 옳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저소득층’의 ‘저소득’을 담보로 한 ‘권리의 강탈’ 이다. 여기에서 권리란 다름아닌 ‘담배를 피울 권리’이다. ‘건강’을 미끼로 ‘담배를 피울 권리’를 권리 이하의 것으로 격하하지 말아 달라. 흡연과 금연 모두 개인의 선택 문제이다. 개인의 선택은 사실상 그 개인의 권리이다. 한 개인의 건강은 다른 사람의 걱정거리는 될지언정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을 협박하기 위한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의사가 환자에게 ‘담배 끊으셔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최소한 의사는 환자에게 ‘담배 끊는 데 드는 비용을 추가로 내십시오 라고 말하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대강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는 알겠는데, 그래도 좀 어렵게 느껴졌소.


이제 결론을 낼 때다. 담배값 인상 정책의 목표는 국민의 건강인가? 담배로 인해 거둬들일 세금인가? 필자는 명백하게 세금이라고 단정한다. 국민들 가운데에도 적지 않은 수가 이에 공감할 것으로 본다.


‘국민들 가운데에도 적지 않은 수가 이에 공감’하는 게 아니라 사실이잖아. 뭘 그런 걸 가지고 새삼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한담.


따라서 담배값 인상을 철저하게 반대하는 입장을 필자는 고수한다. 만약 국민 건강과 흡연의 정당성 문제를 논하려거든, 제발 부탁이니 ‘돈 문제’는 빼고 얘기해 달라고 호소하고 싶다. 그러면 그 문제는, 국민 건강과 흡연의 정당성 문제는 그때 가서 속시원히 논해 주마. 그러므로 굳이 이 자리에서 ‘저소득층의 신체 건강’과 ‘저소득층의 정신 건강’ 사이의 함수 관계를 논하지는 않겠다.



끝이 뭔가 미진하다고 생각하며 나는 필자의 이름을 보았소. 이름을 본들 누구인지 알 리 만무함을 빤히 알면서도 본 거요. 황공은 내가 칼럼을 다 읽는 동안 초조한 얼굴로 담배를 피우고 있었소. 눈을 가늘게 뜬 채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담배연기와 담배를 쥔 손으로 얼굴을 반쯤 가린 그의 모습은 얼핏 턱이 떨어져나간 하회탈을 연상케 했지.

“처음에는 그런 대로 논설조의 필체를 유지하는가 했더니, 끝에 가서는 완전히 막가파가 따로 없군요.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하필이면 XX신문이 이런 칼럼을 실어 줬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 것이......”

“맞았어. 잘 봤네. 그거 신문에 실린 칼럼처럼 보이지? 사실은 아니야.”

“그러면?”

“실릴 뻔했다가 말았지. XX신문이 아니라 어느 잘 나가는 신문이라 한들 이런 걸 실어 주겠어? 우리 나라 신문의 한계가 빤한데.”

“맞습니다. 그런데 이게 신문에 난 게 아니라면, 어르신은 이걸 어떻게 가지고 계시는지? 필자와 무슨 사적인 친분이라도?”

“그 친구는 죽었네.”

“예?”

나는 놀라 되물었지만 황공은 태연했소.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게. 고문당해 죽은 건 아니니까.”

“어르신......지금은 2004년이고......”

“알아 알아. 나도 더 이상은 얘기 안해. 그랬다간 자네도 나도 다 다쳐. 좌우지간 그 친구가 죽은 건 참 안 됐어. 머리는 좋았지만 명이 짧았어. 불운한 친구 같으니. 그 친구만 살아 있었던들 일이 좀 수월했을 텐데.”

문득 담배가 피우고 싶어지더군. 황공의 눈치를 보며 우물쭈물 의자 팔걸이에 놓인 담배갑에 손을 대려는 참에 황공이 잽싸게 담배갑을 내밀었소.

“하지만 자네를 찾았으니 그렇게 힘들지는 않겠군. 이제 자네가 해야 할 일을 설명해 주지.”

그래, 길고 긴 삼천포를 거쳐 드디어 본론에 이르렀구나. 그래서 나는 바싹 긴장하느라 담배에 불을 붙이는 것조차 잊고 황공의 입을 쳐다보았소.

“지금부터 자네가 할 일은, 말보로 리스트를 작성하는 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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