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 말보로 리스트 7

말보로 리스트는 무엇인가

by Kalsavina

# 7 말보로 리스트는 무엇인가?





“실례지만 어르신, 제가 뭘 작성해야 한다고요?”

“말보로 리스트!”

“그게 뭡니까?”

“거기 리모컨 좀 갖다 주게.”

황공은 내 뒤에 놓인 책상을 가리켰소. 내 뒤에 있던 책상 위에 작고 검은 리모콘 하나가 놓여 있더군. 그걸 황공의 손에 놓자 그는 버튼 하나를 눌렀고 이내 와이셔츠 차림의 사무원처럼 보이는 남자 하나가 들어왔소.

“가서 아기 좀 불러 오게.”

“예.”

그가 나가자 황공은 다시 내게 말했소.

“간단히 얘기하지. 그 칼럼의 필자는 죽었지만, 내가 그의 칼럼을 읽으며 받은 감동의 물결은 아직 죽지 않았네. 그러던 참에 마침 리암 니슨이 주연하고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한 불후의 명작 <쉰들러 리스트>를 보게 된 거야. 쉰들러의 추종자이면서 쉰들러 리스트를 작성하는 그 대머리 이름이 뭐였더라? 아, 벤 킹슬리. 자네가 그 사람 역할이 되어 그 사람 할 일을 좀 해줘야 되겠단 말이야. 물론 자네는 벤 킹슬리하고는 전혀 다르게 생겼지만 그건 아무 문제가 되지 않겠지.”

햐아, 이거 기막힐 노릇이 아니었겠소? 난데없이 영화 얘기부터 시작하여 담배값 인상 문제를 거론하더니 종국에 가서는 영화배우 흉내를 내라니? 순간적으로, 내가 순간의 친절에 녹아난 나머지 미친 사람의 술수에 휘말려 오지 말았어야 할 길을 왔나 하는 후회가 물밀 듯 일더군. 그걸 참느라 무진 애를 썼소. 그런 내 심중을 눈치챘는지 황공이 담배 연기를 내 쪽으로 내뿜으며 덧붙였소.

“그러니까, 자네가 작성해야 할 말보로 리스트는, 목숨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 유태인들의 명단이 아니라, ‘흡연을 선택할 권리’를 빼앗긴 저소득층, 더 정확히 말해 극빈층들의 명단이야. 나는 그 명단에 ‘말보로 리스트’라는 이름을 붙인 거야. 이제 이해가 되나?”

그제서야 이해를 했소. 그러나 생각을 좀 해 보시오. 이 얼마나 해괴한 발상이냔 말이오. 도대체 나치스 치하의 유태인들과 담배값을 인상하려는 보건복지부 치하의 극빈층들이 무슨 연관성을 가지고 있단 말이오. 뭐? 상관 있다고? 그건 당신 생각이지. 좌우지간 계속 들어 보시오.

나는 황공에게 이렇게 반문했소.

“좋습니다. 제가 말보로 리스트를 작성한다고 칩시다. 그 리스트에 오른 사람들에게 뭘 해주시려는 겁니까? 그들이 아우슈비츠로 가는 것도 아닌데.”

“담배를 나눠줘야지.”

“예?”

그러나 그건 별로 놀랍지 않았소. 나는 새삼스럽게 황공의 얼굴을 쳐다보았소. 언젠가 영화에서 본 쉰들러의 얼굴이 얼핏 되살아나는 것 같기도 했소. 어쨌든 황공의 표정에는 말할 수 없이 결연한 의지와 카리스마가 서려 있었소. 따라서 재고해 보시라는 충고 따위를 할 엄두는 나지 않았소. 그 상황에서 황공은 내게 내밀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 무시무시한 카드를 내밀었소.

“영화 속에서 벤 킹슬리가 월급을 받았는지는 모르겠네만, 나는 자네에게 공짜로 일을 해 달라고 말하지 않겠네. 월급을 주겠네. 따라서 자네는 내 고용인이 되는 거야. 이제 좀 선택의 여지가 좀 분명해지지 않나?”

그랬소. 다른 건 몰라도 ‘돈’ 이 들어온다면 얘기가 달라지지 않겠소? 다른 이들처럼 가족이나 형제자매나 애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 이 자리에서 황공에게 쫓겨나면 당장 몸을 편히 누울 잠자리조차 마땅찮은 게 당시의 내 처지였소. 선택의 여지가 분명한 정도가 아니었지.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해야 옳았소. 내가 백 퍼센트 긍정적인 쪽으로 결론을 내리려는 참에 다시 문이 열리며 사람이 들어왔소. 황공이 말한 ‘아기’가 들어온 것이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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