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말보로 리스트 작성
# 9 말보로 리스트 작성
악과 내가 함께 했던 일련의 작업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리다. 말보로 리스트를 작성하기 위한 극빈자들의 명단을 구하는 일은 주로 악의 수하에 있는 네 명의 남자들이 맡았소. 모두 나보다 나이가 많이 들어 보였지만 악에게는 깍듯하더군. 그들은 경찰서에 약간의 돈을 쥐어주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극빈자들의 명단을 뽑아 올 수 있었소. 말하자면 말보로 리스트를 작성하는 데 있어서 경찰서가 가장 큰 공헌을 한 셈이오.
그 외에도, 동사무소나 약국, 소방서 등등 말보로 리스트를 작성하는 데 있어 도움에 되어 줄 기관은 많이 있었소. 문제는 사회의 제도권 밖에 있는 말보로 리스트의 명단이 존재했다는 거요. 우리는 이들을 찾아내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소. 때로는 악과 내가 직접 발로 뛰어야 할 때도 있었소. 경찰서를 조회하는 것을 제외한 가장 좋은 방법은 극빈자를 신고하는 사람들에게 적으나마 현금을 지급하겠다는 광고를 내었을 때였소. 신고가 들어온 사람들의 명단을 일일이 확인하는 작업이 매우 번거로웠지만 확보된 명단의 수는 어느 때보다도 많았소.
그 다음에는 이 극빈자들 가운데 담배가 필요치 않은 사람들, 즉 노약자나 어린이(그리고 아주 적게나마 포함된 임산부)들을 제외하고 신체가 건강하며 금연자가 아니며 성실하게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있으되 기회를 박탈당한 사람들을 가려내는 작업이 필요했소. 바로 그 작업을 거쳐야만 완벽한 리스트가 작성되는 거요. 내가 전적으로 맡은 부분이 바로 이 과정이었소. 황공은 나름대로 엄격한 기준을 세워두고 있었으므로, 그 작업을 진행하는 데는 상당한 어려움이 많았소.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황공이 요구하는 말보로 리스트의 대상이 누구인지를 알아차렸소. 그는 빈곤으로 인한 무력감, 빈부의 격차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주어지지 않는 댓가에 절망한 이들을 원했던 거요. 그리고 황공의 말보로 리스트에 오르는 특권을 차지한 그들에게 위로의 담배를 권하고 싶었던 거지. 내가 처음 기차역 대합실에서 황공을 처음으로 만났을 때에 그랬던 것처럼 말이오.
말보로 리스트는 흔히 에이포 용지라고 부르는 복사용지 10장 단위로 작성되었소. 10장이 완성되면 악은 지체없이 그녀의 부하들을 끌고 그들에게 공짜 담배를 나누어주는 작업에 착수했소. 악이 주로 찾아간 곳은 사창가나 공사장 같은 전형적인 장소였소. 그런 곳에서는 심중팔구 돈이 빠듯한 담배 수요자들을 찾을 수 있는 법이지. 하루는 나도 경험삼아 악을 따라 말보로 리스트의 대상을 만나러 간 적이 있소. 그 곳은 시골의 어느 깊은 산골짜기에 있는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이었소. 병으로 다 죽어가는 농부였는데도 걸신들린 듯 담배만 찾는 것이었소. 우리가 담배 한 보루를 선물하자 그는 극적으로 다시 살아난 사람처럼 기운을 차리더군.
“담배값 인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악이 물었소.
“뭐라? 담배값을 인상해?”놀란 듯이 농부가 되물었소.
그는 정부의 담배값 인상 정책에 관해 아는 것이 없었소. 그런 경우, 지친 다리를 끌고 십 리 길을 걸어 동네 가게를 찾아가서 담배값이 올랐다는 말을 듣고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나서야 정부가 담배값을 인상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될 거요. 우리는 그 농부에게 얼마간의 돈과 한 보루의 담배를 선물한 후 그 집을 떠나왔소.
그 후도 가끔씩 나는 악을 따라나섰소. 때로는 음습한 뒷골목이나 삭막한 네거리에서 지나가는 부랑자들에게 아무 말 없이 한 갑의 담배를 선사하는 작업에 동참한 적도 있소. 사람들의 반응은 가지각색이었지. 그걸 일일이 다 말하자면 아마 일 년은 넘게 걸릴 거요. 어떤 사람들은 거절했고, 어떤 사람들은 우리를 쫓아와서 우리가 얼마나 끔찍한 악행을 행하고 있는지를 침이 튀도록 설명하기도 했소.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갸우뚱거리면서도 담배를 받아갔소. 선거철도 아닌데 왜 이런 식의 괴이한 향응 제공을 하느냐고 묻는 이도 더러 있었다오. 그 중에서도 한 청년이 유난히 기억에 남소. 머리가 곱슬곱슬하고 콧잔등이 납작한 청년이었는데, 담배를 받자마자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이렇게 외쳤소. 내일 나 자신의 종말이 와도 나는 오늘 담배를 피우리라!
나중에 그 청년 역시 말보로 리스트에 올랐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