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 말보로 리스트 17(완결)

#17 정지된 속삭임

by Kalsavina

# 17 정지된 속삭임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나버린 지금, 나는 악의 속삭임을 듣는다오. 그런데 이상하지, 자꾸만 내 곁에 다가와 내게 애써 뭔가를 전하려 노력하는 악의 속삭임이 들리는데 그걸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어. 이제는 그 속삭임조차도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오. 나는 불명예스러운 인생의 종말을 향해 조심스럽게 걷고 있는 보잘것없는 한 인간에 불과하오.

이제 와서 여전히 잊혀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말보로 리스트의 주동자였던 황공의 그 확고한 신념이오. 황공의 신념이 옳은가 그른가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소. 마찬가지로 황공의 신념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 역시 단 한 번도 가져 본 적이 없소(어리석은 믿음이지). 단지 내가 말하는 것은 신념 그 자체요. 아니 집념이라고 하는 편이 더 낫겠지. 나는 항상 그 집념을 생각하오. 그가 자신의 사명감에 대해 가졌던 그 굳은 의지를 생각하오. 그건 단순히 한 고집센 인간의 집념이 아니오. 그건 세상을 바꿀 수 없을지 몰라도, 아주 조금, 세상을 아프게 할 수 있소. 이봐요. 지금 내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인가? 만약 듣고 있다면, 거짓이라도 좋으니, 소리 죽여 흐느껴 보시오. 아주 작게, 아주 조금만, 울어 보란 말이오. 눈물이 나지 않는다고? 그렇군. 나 역시 이제 와서 눈물을 흘리지는 않는다오. 자, 이제 마지막으로 내 목소리를 들어요. 너무나도 희미해져 버려 이제는 들리지도 않는 악의 속삭임처럼, 당신을 향한 내 목소리도 이렇게 가늘어지다가 결국은 끊어지고 수화기가 만들어내는 희미한 잡음의 여운만이 남을 테니. 그리고 수화기를 내려놓는 그 순간에 당신은, 반드시, 한 개피의 담배를 입에 물어야 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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