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복사하는 주사위
# 4
생각해보면, 특별하지도 기이하지도 않은 일이다. 길을 가다가 우연히 만난 부랑자에게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물건을 받았다는 사건은 과거라는 이름의 하수구로 흘러가는 시간에 실어 얼마든지 같이 떠내려보낼 수 있는 그런 사건이다. 그러나 강윤은 그가 죽어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신했고, 그로부터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그 사실을 잊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죽어가는 사람의 마지막을 지켜보았다는 사실을 아주 중요한 경험으로 간주했으며, 자신이 받은 쓸모없는 물건을 함부로 다루지 않았다. 하긴 문제의 주사위는 아주 부피가 작았기 때문에, 어떻게 다루느냐 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내버리거나, 잃어버리거나, 간직하고 있거나 셋 중 하나가 될 뿐이다. 더 압축하면,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가 된다. 그리고, 그는 용케도 그 주사위를 잃어버리지 않고 간직하고 있었다.
하필이면 새로운 희망을 만들던 시기에 그는 낙태라는 말을 듣고 심한 충격을 받아 하마터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송두리째 포기할 뻔했다. 물론 20세기를 등 뒤로 넘기던 작년에 그는 이미 자신의 기타를 부쉈고, 그 다음에는 부술 만한 무엇인가가 그에게 남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상 송두리째 내던질 만한 소중한 것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단지 그의 왼쪽 가슴에 꽂힌 반쯤 젖은 화약만이 문제였다. 그 화약은 우리가 아는 화약과 달라서 젖었다고 해서 그 생명이 다 하고 마는 그런 성질의 화약이 아니었다. 마르기만 하면 얼마든지 그 기능이 되돌아와서 불씨가 당겨지면 폭발할 수 있는 화약이었다. 강윤은 불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 구체적으로는 약 두 주 가량의 시간이 흐른 후 그는 자신이 가진 것들을 쉽게 내버려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 상황에서 그는 칠득이와 민규를 만나게 되었다. 시기적으로 좋은 때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강인과 관련하여 최근 K클럽 일대에 퍼진 이상한 소문을 그들에게서 듣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음악을 그만둔 후로는 가능한 한 과거를 떠올리는 장소를 피해 온 그는 이번에도 K클럽 대신 다른 장소를 택했다. 그가 택한 곳은 <라>구 부근에 위치한 대학로에 있는 ‘뉴욕’이었다. 민규가 먼저 나타나고 뒤이어 칠득이가 나타났는데, 그들은 그들의 본거지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의 값비싼 술집에 행차하게 된 것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찾아오는 데 한참 걸렸잖아. 이런 곳에서 만나서 뭘 어쩌자는 거야.”
메뉴판을 눈으로 훑는 민규의 등을 쓸며 칠득이는 강윤을 쳐다보았다. 강윤은 대답 대신 탁자 위에 놓인 병따개를 들고 만지작거렸다. 민규가 칠득이의 배를 손으로 쳤다.
“형도 참, 이럴 때 아니면 언제 형 뱃속에 이런 비싼 부르주아 술 집어넣을 거야? 강윤에게 고마워하지는 못할망정........”
“그건 그렇군. 그렇게 생각하니까, 야. 너 기타 때려부수고 얼마만에 인간 된 거냐? 기특한 것,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멀리까지 올 건 없었는데.......”
“K클럽 근처는 내가 불편해서......”
“강인이나 용환이 만날까봐 그러지?”
강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K클럽 부근을 지날 때면 어김없이 익숙하게 풍겨오는 그 냄새를 맡는 것이 은근히 불편했기 때문에 가급적 먼 곳으로 비껴온 것인데, 그런 이유를 이해 못할 그들은 아니었지만 그들에게 이해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웬일로 부른 거야? 다들 음반 작업하느라 바쁘다고 들었는데......”
“넌 음악 접었다고 해서 인간관계까지 접을 참이냐? 요새 근황이 궁금해서 불렀다. ”
칠득이는 메탈 그룹 <그라이아이>의 보컬이었고, 민규는 같은 그룹의 베이시스트였다. 음악을 그만두기 전에도 그다지 뮤지션들과의 친분이 두텁지 않았던 강윤이 그런 대로 친하게 지낸 몇 안 되는 사람들 축에 끼는 사람들이었다. 강인 쌍둥이와 동갑나기인 민규는 강윤뿐만 아니라 강인과도 서슴없이 ‘인이’, ‘윤이’라는 호칭을 쓸 수 있을 만큼 매우 친했고, 이미 서른을 넘긴 칠득이는 K클럽에서 활동하는 거의 모든 밴드를 자기 휘하에 거느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K클럽의 뮤지션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이었다. 여기에서 큰 영향력이란 친분 이상의 것을 의미하지 않았다. 그는 유달리 강윤을 좋아해서 그를 어떻게든 <그라이아이>의 멤버로 끌어들이려고 애를 썼는데, 그것이 뜻대로 안 되어 매우 실망하면서도 여전히 강윤에게 남다른 애정을 보였다.
“그래, 아직도 바텐더 알바 나가냐?”
“아니, 그 일 접고, 요즘은 노가다 뛰고 있어.”
“그러지 말고 복학해서 학교나 다녀. 군대도 안 간 놈이 학교는 왜 안 가고 돈 번다고 지랄이냐. 이제 기타도 안 치면서. 그러다 공부할 때 놓치면 너만 후회해. ”
“공부할 거야. 그런데 집에서 나오니까 돈이 좀 많이 들어서 우선 뛰고 있는 거야.”
“그러게 몸도 성치 않은 놈이 집은 왜 나오냐? 강인처럼 몸이나 건강하면 말도 안......”
민규가 팔꿈치로 칠득이의 가슴을 쳤다. 강윤이 환자로 취급받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한다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결손이 완치된 지금에 이르러 강윤을 환자라 부르는 것은 옳지 않았다.
“형은 왜 자꾸 이 자식이 병자라고 생각하는 거야?”
“미안하다. 자꾸 생각이 나는 걸 어쩌냐. 그러고 보니 자꾸만 생각나는 게 또 있군. 너의 사랑하는 그녀는 요즘 어떻게 지내시냐?”
“민효? 늘 그렇지 뭐. 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하고.....”
“주경야독. 아! 모범적인 사람의 생활을 영위하고 있군. 그렇다고 한번 만나뵙지도 못할 만큼 바쁘신 건 아니겠지? ”
“형이 걔를 왜 만나려고?”
그러자 침묵을 지키던 민규가 입을 떼었다.
“저기.......요즘 집에 들어가 봤어? 네가 출가한 상태라서 물어보기가 좀 껄끄럽지만, 혹시 인이하고 민효, 좀 이상하지 않았어?”
‘혹시 이 자식들이 민효의 낙태를 알고 있는 건가?’ 한 줄기 의혹이 강윤의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이야?..........”
민규는 강윤의 표정을 살피고, 그 다음으로 칠득이의 표정을 살폈다. 칠득이가 쓴웃음을 지었다. 민규는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며 다시 강윤을 쳐다보았다.
“K클럽이 완전히 쑥대밭이 되었어. 그 소문 때문에.......그 소문이...........”
“그 소문? 그게 뭔데? 뜸들이지 말고 바로 말해 봐. ”
“넌 요즘에 K클럽에 간 적 없으니까 잘 모르겠지만, 인이가, 왜 그 여자 있잖아. 장유경.......”
가능하면 완곡어법을 사용하고자 진땀을 흘리는 민규 대신 칠득이가 간단히 설명했다.
“장유경이랑 인이가 같이 잤다는 소문, 헛소문이 아닌 모양이다.”
적어도 낙태 얘기는 아니었다. 순간 강윤의 온몸의 피가 정수리를 향해 치솟았다. 그러나 이내 냉담해졌다.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민효? 그래. 민효가 알면 난리날 일이구나. 그애가 괜찮을까? 그녀가 가엾다는 생각이 물처럼 밀려드는 것과는 반대로, 이상하게도 강인에 대한 분노는 다시 일지 않았다.
“그거 확실해?”
“직접 들었다는 놈들이 한 둘이 아냐. 그리고 장유경 본인이 ‘<디아이 셀> 보컬이 내 애인이다’라고 말했다는 말 같지 않은 소문도 들려오고. 하지만 아주 신빙성 없는 소리도 아냐. 강윤 넌 그 여자 잘 모르지? 보통 간 큰 여자가 아니라구. 그보다도 생각을 해 봐. 지난번에 강인 혼자서 장유경이 작곡한 곡 듣겠답시고 그 여자 스튜디오에 갔다가 돌아와서는 어떻게든 그 여자가 쓴 곡을 받아내겠다고 설쳤던 거 잊었어? 포기했다고 생각했는데, 항간에 들리는 얘기들을 종합해 보니까, 그 녀석 포기 안한 모양이야.”
“그래도 그 놈, 그렇게까지 할 놈은 아냐.”
딱 잘라 대답하는 강윤의 얼굴을 민규가 불안한 눈초리로 살펴보았다.
“그거야 네 생각이지. 벌써 잊었어? 정말, 재작년 그 <애도>사건 때도 결국 자기가 부르겠다고 지지리 떼를 써서 결국 부르고 말았잖아. 이번에는 또......”
민규는 강인이 <교향곡 X+1번 애도>에 보였던 그 광적인 집착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윤아, 네가 인이한테 직접 물어보는 게 어때? ”
“왜 그걸 내가 물어봐? 궁금하면 네가 직접 물어봐.”
“그 녀석 사생활이야 우리가 알 바 아니지만, 정말 인이가 아직도 그 여자가 작곡한 미발표곡 때문에 그 여자랑 실랑이하고 있을 가능성은 있잖아.”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럼 넌 강인이 그 여자랑 잤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냐?”
“잤다 해도 그 자식 마음이지.”
“너 강인 동생 맞냐? 말하는 게 어째 그래? 혹시 싸웠냐?”
“나가 사는 놈이 형 얼굴 몇 번 본다고 싸워 싸우길. 술이나 줘. 그리고 담배도 있으면 좀 주고. ”
“담배 아직 안 끊었냐?”
“내가 언제 담배 끊는댔냐?”
그날 밤 자정이 넘어 강윤은 강인이나 민효 두 사람 중 어느 한 사람이라도 집에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도둑고양이마냥 슬그머니 집으로 들어섰다. 정확하게는 민효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들어왔지만, 밖에서 보았을 때도 불이 모두 꺼져 있던 집에 사람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렇다면 이 계집애가 여지껏 뭘 하고 돌아다니느라 집에 안 들어오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일단 소파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알콜에 절은 뇌로 복잡한 생각을 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습관이 만든 본능에 따라 그의 폐가 담배를 요구했으므로 그는 무심결에 호주머니를 뒤졌다. 담뱃갑 대신 딱딱하고 조그맣게 모서리진 금속의 감촉이 손에 잡혔다. 주사위를 꺼내든 그는, 한 순간 놀라움에 사로잡혀 그 주사위를 얻게 된 경위를 떠올렸다. 그는 엎드린 채 죽어가고 있던 사내를 생각했다.
‘기억을 복사하는 주사위.........’
강윤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할 수만 있다면, 민효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기억이 있었다. 만약 정말로 주사위든 뭐든 기억을 복사하는 도구가 있다면, 그는 그 기억을 복사해서 민효에게 전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민효를 생각하자 뒤따라 강인이 떠올랐다. 그러자 어느 정도 뇌에서 알콜이 증발하면서 보다 복잡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부모님은 왜 강인과 민효의 관계를 묵인했던가. 그건 그 애들을 결혼시킬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왜 민효를 친딸처럼 애지중지했나. 그건 바로 다름아닌 나, 강윤 때문이다. 언젠가 강 박사에게 미친 듯이 대들던 강인의 모습이 영화의 한 컷처럼 되살아났다. 몇 번이나 민효의 피를 강윤에게 수혈했었죠? 그리고 그 이상의 계획........그 이상의 계획? 순간 강윤의 상념은 거기에서 끊어져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그의 의식이 다음 단계로의 진입을 거부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원점으로 돌아와 이번에는 생각의 가지를 다른 방향으로 틀었다. 강인의 아기까지 가졌던 민효가 강인을 쉽게 포기할 리 없다. 강인 역시 마찬가지다. 칠득이 형이나 민규가 얘기한 K클럽에서의 소문 따위는.......빌어먹을 개나 처먹으라지! 그러나 그 소문이 사실이어서, 정말 강인이 다른 여자와 자고 있다면? 단순히 민효 한 사람에게만 처절하고 비참한 문제인가?
갑자기 픽 하는 소리와 함께 형광등이 켜졌다. 불을 꺼놓은 채로 소파에 늘어져 있던 그는 놀라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아 눈만 깜박거렸다. 빛에 반사된 먼지들의 잔상이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가운데 다소 놀란 얼굴의 민효가 현관 앞에 서 있었다. 들어오면서 불을 켰기 때문에 어둠 속에서 갑자기 나타난 강윤을 보고 그녀도 놀란 것이다. 어둠 속에서 나타난 천사와 빛 속에서 나타난 악마가 서로를 망연히 쳐다보았다. 강윤이 먼저 침묵을 깼다.
“어디 갔다 왔어?”
“이모님한테 갔다 왔어. 김치 좀 가져가라고 하시길래 말이야. 일찍 오려고 했는데 자꾸 붙잡으시는 걸 뿌리치질 못해서....”
이모님이란 강인과 강윤의 이모를 말하는 것이었다. 쌍둥이의 이모님 부부는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서 살고 있었다.
“못 쓰겠군. 젊은 처녀를 지금까지 붙잡아두다니.....”
강윤의 퉁명스러운 혼잣말에 민효는 빙긋 웃고는 들고 있던 비닐 봉지를 추슬러 부엌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강윤이 뒤따라 부엌으로 들어갔을 때 그녀는 냉장고에 반찬거리를 집어넣고 있었다. 그는 의자에 앉아 말없이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이윽고 그의 시선을 한 듯 그녀는 천천히 허리를 펴고 강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 할 말 있어?”
이미 스스럼없이 대하기에는 두 사람 사이에 지나치게 많은 허물과 간극이 생겨 있었기에, 강윤과 둘이 있을 때 그녀가 눈에 띄게 불편해하는 것도 그다지 이상할 것이 없었다. 강윤은 단 한 번도 편안한 마음으로 그녀를 대한 적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심장병이 완치된 후에도 이따금씩 일어나는 원인불명의 발작은 분명 민효 때문이라고 단정지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K클럽에서 인이를 가지고 이상한 말들을 하고 있더만.”
마지막으로 800밀리짜리 우유 몇 개를 냉장고에 집어넣은 후 돌아선 민효는 정색을 하고 되물었다.
“내가 낙태한 아기가 인이 아기라는 얘기가 새어나간 건 아니겠지?”
“그 얘기가 아니야.”
“다행이네.”
“너 그 얘기를 인이 말고 또 누구한테 했어?”
“아무한테도 안 했어. ”
대답 끝에 민효는 핏기가 가실 정도로 입술을 깨물었다.
“말해 봐. 그 얘기가 아니라면, 뭐지? ”
민효는 다 알고 있다, 라고 강윤은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면 저렇게 당당하고 침착할 리 없다. 그러나 태연함을 넘어서서 무감각하리만큼 ‘낙태’라는 말을 남의 애기하듯 입에 올리는 그녀의 모습은 그로서도 천만 뜻밖의 것이었다. 게다가 자신이 알지 못하는 강인의 이야기라면 뭐든지 알고 싶어 안절부절 하던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도 사라졌다. 이런 걸 변화라고 하는 건가? 그는 당황한 기색을 애써 숨기며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인이가 다른 여자하고 잔다는 얘기.”
사실은 완곡어법을 써서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불행히도 그는 수학적 감각과는 달리 언어감각이 남달리 뛰어나지 못한 편이었다. 게다가 아직 취해 있는 상황에서는 혓바닥도 잘 돌아가지 않았다. 때문에 말을 하면서 저절로 시선이 바닥을 향하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민효는 식탁을 사이에 두고 강윤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잠시 후 그녀는 놀라울 정도로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거, 사실이야.”
강윤은 저도 모르게 민효를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표정이 말만큼 무미건조하지 않은 것을 보자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쓴웃음을 짓고 있었지만, 입꼬리는 금세라도 쳐질 듯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예쁘기는 하지만 화려하지 않은 그녀에게 남자들은 용케도 곧잘 마음을 빼앗기곤 했는데, 대개 눈에 보이지 않는 그녀의 관능미를 감지해내는 능력을 가진 남자들이 그러했다. 그러나 그런 남자들은 그녀에 대해 조금만 더 잘 알게 되면 금세 싫증을 내고 혹했던 마음을 되돌렸다. 민효는 무관심과 그다지 구분되지 않는 관대함을 그들에게 보여 주었다. 잘라 말해서 그녀는 ‘제 3의 남자들’을 필요 이상으로 가까이하지 않았다. 그녀의 단점을 잘 아는 강윤은 그녀의 단점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 여자가 작곡한 노래가 꼭 있어야 한다고 했어. 그 여자는 인이와 자는 조건으로 그 노래를 주기로 했대.”
“너 괜찮아?”
그 질문에 금세 민효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괜찮지 않으면?”
“그런 대답이 어디 있어? 넌 그게 사실이란 걸 어떻게 확인한 거야? 인이가 직접 그러든?”
“그래. 그애가 직접 얘기했어. 그리고 왜 그래야 하는지도 충분히 설명했고. 난 납득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애를 무슨 수로 말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