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스Ⅰ-7

기억을 복사하는 주사위

by Kalsavina

# 7



과연 강인이 민효에게 줄 아이스크림을 사기 위해 아이스크림 숍에 들르는지 안 들르는지를 살려보기에 앞서 우리는 우선 강윤의 행보에 대해 알아두어야 한다.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연속적으로 벌어지는 가운데 잘 아물어 가고 있던 마음에 앉은 딱지가 다시 떨어져나가는 통에 그는 세균 감염으로 괴로워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그런 거짓말을 했어?’라는 강윤의 질문에서부터 다시 시작하자.

‘왜 그런 거짓말을 했어?’라는 질문에 민효는 눈살을 찌푸리고, 겸연쩍어하고, 자신의 행동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말아 달라는 의사를 표시했다. 검지손가락을 자신의 입술에 갖다대며 고개를 흔드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으므로 강윤은 더 이상 그녀를 책망하거나 힐난하지 않았다. 그 대신 반쯤 애원하다시피 말했다.

“그렇게까지 해야 했어? 다른 방법이 없었어?”

민효는 강윤의 손을 잡고 거실로 간 후 그를 의자에 앉도록 하고 자신도 그 옆에 앉았다. 이때만큼은 그도 민효의 침착한 태도가 견딜 수 없이 싫었다.

“조용히 포기하려고 했지. 하지만 그러기에는 내가 너무 많이 삐뚤어진 거야. 비열하다거나 치졸하다거나 하는 욕을 듣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을 정도로 말이야.”

“강인이 알게 되면 어떨 것 같아? 그 자식이 그래 내가 잘못했다, 용서해 달라 하고 다시 너한테 마음을 되돌릴 것 같아?”

“마음을 되돌리다니? 무슨 마음을 되돌려? 강인한테 되돌릴 마음이 어디 있어? ”

여기에서 독자들은 강윤과 민효가 이야기하고 있는 ‘거짓말’ 내지는 ‘잘못된 행동’의 실체에 대해 꽤 구체적이고 정확한 짐작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그 실체에 대해 덮어두기로 하고, 강윤과 민효의 사이에 오간 대화의 일부만을 언급하기로 한다. 민효는 확고한 태도로 강윤에게 말했다.

“내가 생각하는 그런 애틋한 마음은 오래 전에 없어졌어. 강인이 내게 한 행동들은 내게 너무 지나쳤던 거야. 그애는 아직도 나를 잘 몰라. 너나 강인이 생각하는 나는 내가 아니야. 그걸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는 거야. 이건 내 보복이지 강인의 마음을 되돌리려는 노력이 아니야.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몰라도 지금으로서는 인이는 내 적이야.”

사랑하는 사람을 적으로 삼으려는 그 마음을 강윤은 도통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는 부모님 다음으로 가장 사랑하는 두 사람이 자신을 떼놓은 채 밀착되어 있을 때보다 더 짙은 배신감에 당혹스럽기만 했다. 민효는 그런 마음을 이미 간파하고 있었다. 그녀는 강윤을 향해 몸을 구부렸다. 팽팽하게 선 희고 가는 목의 실루엣이 강윤의 눈을 시리게 파고들었다.

“너 웃긴다. 어떻게 인이를 두고 적이란 말이 나오는 거지?”

“네가 내 말이 웃긴다고 느끼는 건 네가 날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야. 아까는 나한테 뭐라고 했지? 나 대신 강인을 때려 주겠다고 했잖아. 그 말은 어디 가고 이제 와서 딴 소리야? 네 힘을 빌지 않고 내 힘으로, 내 방법으로 강인을 혼내겠다는데 뭐가 웃긴다는 거야? 적이라는 말이 우스워? 그럼 내가 너한테 물어 볼까? 난 네 친구야? 아니면 적이야? ”

강윤의 왼쪽 가슴에서 자잘한 통증이 일었다. 흥분했다가는 다시 발작을 일으켜 병원에 가게 될지도 모른다. 그는 손으로 가슴을 눌렀다. 그러나 빨라지는 맥박을 가라앉히기에는 눈 앞을 어른거리는 민효의 목이 너무나도 심각한 방해물이 되었다. 그는 민효 쪽으로 고개를 구부려 그녀의 목을 가볍게 깨물었다.

“윤아.”

강윤은 대답 대신 이빨을 더욱 세게 박았다. 잠시 후 날이 선 비명을 지르며 민효는 몸을 일으켜 강윤의 이빨을 억지로 자신의 몸에서 떼어냈다. 목이 아파 우는 민효를 똑바로 쳐다보며 강윤이 말했다.

“많이 아프지? 너, 내가 내 기타 부수기 전날,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니?”

강윤은 자신의 아이바네즈와 자신의 희망이 동시에 산산조각 난 밤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었다. 현관문 앞에 걸려 있던 작은 종은 하필이면 그날 종소리를 내는 방울이 부식되어 고장난 통에 침묵만을 울렸다. 강윤은 소리 없이 강인의 방 앞으로 걸어가 반쯤 열린 문 틈으로 새어나오는 소리들을 들었다. 자신의 팔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강인의 두 팔 아래 민효의 머리카락이 길게 흐트러졌다. 굵고 사납고 힘찬 두 다리가 매끈하고 날씬한 두 다리와 서로 얽혀 밀고 당기기를 반복했다. 그 어떤 것보다도 열에 들뜬 민효의 목소리가 강윤의 가슴을 날카롭게 그었다.

나만 사랑해 줘―

그러니까, 강윤이 자신의 아이바네즈를 부수는 동안 내내 그의 귓전을 울렸던 ‘나만 사랑해 줘’라는 호소를 강인이 무책임하게 배신했던 것이다. 민효가 말하는 보복은 바로 그 배신에 대한 보복이다. 이해 못할 것도 없다. 더구나 민효가 생각해 낸 보복은 초라하기 짝이 없는 보복이다. 현관문에 매달린 고장난 종은 그 이튿날 바로 고쳐졌지만, 강윤의 고장난 가슴은 지금까지도 고쳐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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