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스Ⅱ-14

기억을 복사하는 주사위

by Kalsavina

# 14



강윤이 다시 집 안으로 들어왔을 때 그는 자신과 민효가 잠시 문을 열어놓은 사이에 예상치 못한 손님이 찾아와 있음을 알고 다시 한 번 소름이 끼쳤다. 선글러스를 낀 남자, 다 나이디를 데려왔던 그 남자가 소파에 앉아 벙글벙글 웃으며 그를 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아가씨께도 얘기했지만, 그렇게 문을 함부로 열어놓고 나다니면 안 됩니다. 내가 주사위를 돌려받으러 온 사람이 아니고 도둑이었다면 어쩔 작정이었어요?”

“민효는 어디 있죠?”

그는 이유 없이 화가 나는 것을 참으며 말했다.

“다 나이디를 데리러 2층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강윤은 타는 듯한 눈길을 남자에게 보내며 그와 마주앉았다. 비록 남자의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는 상관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마주한 채 묵묵히 앉아 있었다. 이윽고 남자의 입에 차가운 미소가 맺혔다.

“제가 적시에 온 건지 모르겠군요.”

선글러스 남자는 강윤의 심중을 꿰뚫고 있다는 듯이 이렇게 입을 열었다. 강윤이 대답하지 않자 그는 다시 이렇게 말했다.

“적어도 강윤 군이 여기 계신 걸로 봐서는 적시에 찾아온 것 같군요.”

“물어볼 말이 있어요.”

강윤이 자신의 질문을 재빨리 머릿속으로 정리하는 동안 선글러스 남자의 얼굴에 잠깐 당혹스러운 빛이 떠올랐다가는 사라졌다.

“무엇이든 여쭈어 주십시오. 당신이 그 주사위와 다 나이디의 보호자인 동안은, 얼마든지 당신의 질문에 대답해 드리지요.”

“다 나이디의 정체가 뭡니까?”

매우 간단하고 단도직입적인 질문이었다.

선글러스 남자는 얼른 대답하지 않고 근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아마도 민효를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그가 대답을 보류하며 시간을 끄는 동안 강윤은 이 사람이 이제 겨우 두 번째로 얼굴을 마주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생각해냈다. 그런데도 전혀 낯설다거나 생경스럽다는 느낌이 없다. 그의 말마따나 적시에 찾아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다시 온 목적이 뭐란 말인가? 단순히 주사위를 돌려받아 다 나이디를 데려가기 위해서인가?

“다 나이디에 관해서라면, 제가 전에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순간 강윤의 눈썹이 꿈틀거린 것을 눈치챘는지 그는 헛기침을 했다.

“하긴, 자세히 말씀드리지는 않았지요. 그녀는 그 주사위의 진짜 주인입니다. 그녀가 없으면, 그 주사위를 통제하지 못해요.”

“그 꼬마 계집애가 그걸 어떻게 통제한다는 겁니까?”

“통제한다기보다는 뭐랄까......솔직히, 그 주사위를 통해 이 사람 저 사람의 기억이 마구 뒤섞여 여러 사람에게 전달되는 건 바람직한 일은 아닐 테지요. 뭐, 개인적인 프라이버시의 침해 문제도 있고........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녀에게는 그 주사위가 꼭 필요합니다. 이를테면 태아에게 있어 탯줄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요.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하십니까? 뭔가 구체적인 의문점이 있으신 것 같은데?”

솔직히 말해서, 이 선글러스 남자의 대답은 너무 추상적이라고 강윤은 생각했다. 그러나 한 가지는 옳다. 내가 궁금한 건 다 나이디가 누구냐는 질문이 아니다......그녀는 어떻게 해서 민효의 몸속으로 들어왔을까? 그래, 그걸 물었어야 했다.

“그녀가 민효의 몸 속으로 들어와서 내게 얘기했어요. 그녀가 민효의 몸 속으로 들어왔을 때......”

두 명의 똑같은 민효를 보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강윤은 선글러스 남자가 놀라거나 아니면 곤혹스러워하며 발뺌하려 드는 상황을 막연히 가정해 보며 말끝을 흐려 버렸다. 그러나 선글러스 남자가 의외로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본 그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진짜 다 나이디는 실체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뭐 혼령이라거나 귀신이라거나 이런 뜻은 아닙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을 허황한 소리로 듣지 않으신다면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 드릴 수 있습니다만......”

이번에는 선글러스 남자가 말끝을 흐렸다. 강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녀는 실체가 없어서, 사람의 몸과 인격을 빌려야 합니다. 그렇다고 그녀가 아무나 골라서 그 인격을 빌리는 건 절대 아닙니다. 그 주사위가 기억을 복사한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 그리고 그 주사위에 기억을 복사할 수 있고 다른 누군가의 복사된 기억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의 인격만 빌리는 겁니다. 솔직히 말해서 어느 정도 예상한 일입니다만, 민효 양의 인격을 빌렸군요. 그런데 어떻게 다 나이디가 민효 양의 몸을 빌린 사실을 아셨습니까?”

“민효의 손바닥에 다 나이디의 이름이 새겨진 걸 봤어요. 나중에 그 이름이 사라진 후에는 다시 민효로 되돌아왔고.”

“많이 놀라셨겠군요. 하지만 이제 괜찮습니다. 아시다시피 제가 돌아온 건, 다 나이디를 데려가기 위해서니까요. 그녀가 없어지면 강윤 군이 더 이상 그녀 때문에 당황하거나 불쾌하실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강윤은 집안에 들어온 선글러스 남자와 맞닥뜨린 뒤 처음으로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그는 선글러스 남자가 다 나이디를 데려가려고 다시 왔으리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니 그가 다시 이곳을 찾은 목적 자체를 생각하지 않았다.

그때 마침 민효가 다 나이디를 안고 내려왔다. 나이디는 검고 또렷한 눈으로 선글러스 남자를 쳐다보았다. 선글러스 남자는 자못 송구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두 분께 본의 아니게 폐를 많이 끼쳤습니다.”

“지금 그녀를 데려가야 한단 말입니까?”

“예. 그런데 그것보다.......”

선글러스 남자는 다 나이디를 안은 민효를 아래위로 훑어보다가 말했다.

“주사위는? 저는 주사위를 돌려받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녀를 데려갈 수가 있습니다. 주사위는 어디에 있나요?”

“죄송해요. 주사위를 찾았는데, 다른 사람에게 그만 빌려 주고 말았어요.”

“아가씨 멋대로 말입니까?”

민효는 자신의 팔에 안긴 다 나이디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물론, 저도 그럴 생각은 아니었어요. 윤이 거였으니까. 그런데.......”

그녀는 쭈뼛거리며 대답했다.

“다 나이디가 허락한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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