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스Ⅱ-32

기억을 복사하는 주사위

by Kalsavina

# 32



강인이 권 형사를 상대로 성의없는 질의응답을 펼치고 있을 때 집에서는 난데없이 찾아온 주사위 담당자와 마주친 민효가 까무러칠 정도로 놀란 참이었다. 다른 때 같으면 그다지 놀라지 않았겠지만 이번에는 강인이 살인범으로 구속수감되지나 않을까 하고 가슴이 졸이던 참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초인종도 누르지 않고 성큼 현관으로 들어섰기에 그녀의 충격은 컸다.

“이거 너무 놀라시는군요. 죄송합니다.”

“아니오. 괜찮아요.”

가슴을 쓸어내리며 민효가 대답했다. 그녀는 이번에는 주사위도, 다 나이디도 자신의 수중에 있음을 분명히 상기했다.

주사위 담당자의 선글러스는 칠흑같은 검은색에서 이번에는 짙푸른 바다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눈을 들여다볼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손님에게 늘 하던 대로 차를 내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보자 주사위 담당자는 고개를 내저었다.

“죄송합니다만, 폐가 안된다면 녹차를 주시지요. 지금은 입이 깔깔해서.....왠지 커피를 마실 마음이 들지 않는군요.”

민효는 녹차 티백을 넣은 잔을 새로 가져왔다.

“오늘 강윤 군은 안 계신가요?”

“곧 올 거예요. 금방 다녀오겠다고 했으니까.”

“흠, 볼일을 보러 가셨군요?”

민효는 강인과 관련된 일을 주사위 담당자에게 간략히 이야기했다. 바로 그 일 때문에 걱정이 된 강윤이 경찰서에 다녀오겠다고 일러 두고 외출한 것이었다.

“듣자니 강윤 군은 따로 살고 계시지 않으셨나요? 이번 일 때문에 아무래도 집에 자주 들르시겠군요.”

“거의 매일 여기에 와 있어요. 저쪽 집의 집세가 아까울 정도로요.”

그렇게 대답하고 나자 민효의 얼굴이 약간 붉어졌다. 주사위 담당자가 한 질문의 뉘앙스를 눈치챈 것이다. 주사위 담당자는 싱글거리며 말했다.

“강윤 군이 아가씨를 보는 눈만 봐도 알 수 있답니다. 왜 그런 노래 가사도 있었지요 아마?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잖아......’ 그건 그렇고 강윤 군의 형제분이 살인범으로 몰렸다니 아가씨 걱정이 크시겠군요.”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으세요? 그녀가 죽은 날은 제가 그녀를 만나기 전날이었어요. 제가 귀신을 만나기라도 했던 걸까요?”

주사위 담당자는 그답지 않게 유쾌한 표정으로 껄껄 웃었다.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그런 경우에는 아무런 설명도 곁들이지 않는 편이 훨씬 신비스러워서 좋지 않을까요? 귀신이니 뭐니 쓸데없이 설명해봐야 해명되는 것은 없고 구차해지기만 하니까요. 뭐 굳이 설명하자면, 사람은 죽은 후에도 49일 동안은 이승에 머무른다는 그 흔한 설도 끌어다 쓸 수 있지 않겠습니까? 혹시 모르죠. 그 주사위가 아가씨 손에 있었다면, 주사위가 복사한 기억이 뭔가 설명을 해 줄지 모르지요. 지금 그걸 갖고 계신가요? 어차피 저는 그걸 돌려받으러 왔으니까요.”

때마침 강윤이 돌아왔다. 그는 강인을 만나려 했으나 예상보다 길어진 피의자심문조서시간 때문에 허탕을 치고 돌아온 참이었다. 그는 주사위 담당자를 보고도 그다지 놀라지 않았으며 그의 인사에 반가워하지도 않았다.

민효는 주사위를 그에게 건넸다. 그녀가 다시 2층으로 올라가 자신의 방에 누워 있던 다 나이디를 안고 내려오자 주사위 담당자가 그에게 말했다.

“최소한 한 가지는 알겠군요. 강윤 군의 형제분은, 그 불쌍한 아가씨를 죽이지는 않았어요.”

“그래요?”

그렇게도 빠른 기억의 전달에는 강윤도 다소 놀란 눈치였다.

“그 불쌍한 아가씨의 죽음에 대해서 그다지 할 말은 없군요. 하긴 제가 뭐라고 말할 수 있는 입장도 못 되지요. 하지만 제가 묘한 때에 이걸 돌려받으러 찾아왔다는 생각이 듭니다......글쎄요. 아마 경찰에서 제시한 날짜가 거짓 날짜는 아닐 겁니다. 그렇다고 아가씨가 그 죽은 아가씨를 만난 날짜도 틀림이 없구요. 다만 제 생각에는......그 아가씨가 강인 군에게 마지막으로 애원했을 때의 목소리가 여기에 분명히 들어와 있으니 하는 말입니다만.”

한 번이라도 좋으니까 나를 위해서 노래해 줘.

“제 생각에는, 그 유경이라는 아가씨가 진짜로 죽은 건, 강인 군이 그 아가씨의 부탁을 들어준 순간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니까, 강인 군이 그 아가씨를 위해 클럽에서 그 슬픈 노래를 불렀던 그 순간에, 그 아가씨가 진정으로 죽은 게 아닌가 싶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 전에 죽은 건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요?”

“아마 ‘반만 죽은 것’이라고 해 두지요. ”

민효의 얼굴에 날카로운 아픔이 스쳤다. K클럽에 가서 강인의 노래를 들을 때면 항상 느껴지던 그 아픔. 강인은 자신의 목소리가 그녀를 공격했다고 했지만.......그 순간만은 그게 아니었다. ‘희’를 들었던 그 순간만은 그게 아니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장유경이 죽었다는 걸 알아차린 거야. 그래서 마음아파한 거야. 어쩌면 그걸 알아차린 건 내가 아니라 나와 인격을 나누던 다 나이디였는지도 모르지. 그래서 내 몸을 아프게 한 건지도 모르지. 다 나이디를 생각하자 그녀의 생각이 어느 복잡한 미로의 막다른 지점에서 멎고 말았다. 바로 ‘다 나이디와의 이별’이라고 씌어진 지점이었다.

“이제 이 애를 데려가셔야겠군요.”

“그렇습니다. 이별만이 인생이죠? 아가씨. 슬퍼하시면 안됩니다.”

“네에.”

민효는 자신이 슬퍼하는 것을 주사위 담당자나 강윤에게 보이고픈 생각이 별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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