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복사하는 주사위
# 35
경찰서에서의 심문이 강인을 녹초로 만들기는 했지만,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 그의 모습은 수염 때문에 까칠해진 것을 제외하면 이렇다 하게 나빠 보이지 않았다. 다만 볼이 약간 패이긴 했다. 그가 거실로 들어서자 모두들 진범에 대해 질문을 퍼부었지만, 그로서는 상세한 대답을 해 줄 수 없었다.
“도대체 그 여자가 죽은 게 언제래? 토요일이야, 일요일이야?”
“토요일. 내가 나가고 난 직후였대.”
“뭐야? 그럼 역시 민효 씨가 잘못 본 거였구나.”
아무도 민효가 거짓말을 했다고는 생각지 않았지만, 역시 분명한 증거가 없는 이상 살인은 토요일에 있었다는 쪽으로 모두의 심중이 기울어져 있던 터였다. 그러나 강인은 그들의 확신을 철저히 배신하는 한 마디를 던졌다.
“형사님 말로는, 일요일날 누나(유경)를 본 사람이 민효 말고도 둘이나 더 있대.”
모두의 눈이 일시에 휘둥그렇게 떠졌다.
그 자리에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강인의 무사 귀환을 축하하는 파티가 열렸다. 아무도 이것이 파티다 라고 규정하지는 않았으나, 몇 개의 중국 음식과 이탈리아 음식이 배달되어 오자 자연스레 분위기는 파티와 다를 것 없는 분위기가 되었다. 볼이 미어터지도록 피자를 입에 밀어 넣던 은하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 진범, 도대체 왜 장유경을 죽였을까?”
그러고 보니 ‘왜 죽였느냐’는 질문을 던진 사람은 그들 가운데 아무도 없었다. 진호가 어깨를 으쓱대며 대답했다.
“뭔가 원한이 있었겠지.”
“설마하니 인이 때문은 아니겠지? 인이가 장유경 집에 드나드는 걸 수시로 봤었다며? 인이와 그 여자의 관계를 질투해서 그런 거 아냐?”
“일리 있는 얘기지.”
그러자 좀체 입을 열지 않는 헌수가 뜻밖에도 입을 열었다.
“나는 그 사람이 강인하고는 상관없이, 순전히 그 여자 때문에 그랬을 거라고 생각해. 장유경에 대해서, 우리가 모르는 어떤 감정을 범인이 가지고 있었는지는 아무도 몰라. 어쩌면 사랑해서 죽였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 인이 말만 들어서는 잘 모르겠지만, 경찰서에 인이를 데리러 갔을 때 내가 들은 바에 따르면, 범인은 아무 저항 없이 집 안으로 곧장 들어선 갔대. 집 안에 그다지 격하게 반항한 흔적도 없었대. 그 말은, 장유경과 범인이 최소한 아주 적대적인 사이는 아니었다는 걸 말해주지. 내 생각에는 그 남자가 장유경을 아주 사랑했고, 장유경은 그걸 알면서도 모른 척 한 건지도 몰라. 내가 그 여자를 직접 본 건 몇 번 되지 않지만, 그 여자, 재미로 이 남자 저 남자 골라가며 사귀는 그런 여자로는 보이지 않았어. 뭔가 말못할 비밀이 있었겠지. 그렇게 신비스럽게 예쁜 여자라면 말야.”
끝에 가서 외모 얘기가 나온 덕에 그는 은하의 야유를 받고 말았다. 그러나 은하가 함께 야유를 퍼부을 유일한 여자 동료이자 친구인 민효를 돌아보았을 때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갔지?”
“아까 자기 방으로 갔어.”
은하가 뒤따르려 했으나 강윤이 그녀를 가로막았다.
“내버려 둬. 인이하고 얘기중이야.”
“넌 걔가 인이랑 둘이서만 얘기해도 아무렇지도 않니?”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노골적인 질문을 강윤은 간단히 무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