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복사하는 주사위
# 36
민효는 침대에 모로 누운 채 클클거리며 웃었다. 눈물이 말라붙은 뺨에 먼지가 달라붙어 지저분해지는 것도 아랑곳없이 그녀는 베개에 얼굴을 묻고 웃음 소리를 감추었다. 강인은 그런 그녀를 딱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괜찮아?”
“아파.......너무 아파.......꼭 생리통 같아......그런데 웃음이 나와.......왜 이렇게 웃기는지 나도 모르겠어.”
“너한테 미안해.”
“그런 말 하지 마. 더 웃기잖아.”
한참 만에 웃음을 멈춘 그녀는 숨을 할딱이며 말했다.
“엄마 아빠가 귀국하시기 전에 네가 풀려나서 정말 다행이야. 네가 살인범으로 구속될 뻔했다는 사실을 알기라도 하면 두 분 다 졸도하실 테니까?”
“두 분, 귀국한대?”
“응. 어제 전화왔었어. 아마 곧 귀국하실 것 같아.”
몸을 바로 눕히고 강인을 올려다보며 그녀는 말했다.
“아마 우리가 한 짓, 용서하지 않으실 거야......내가 한 짓도.”
“네가 한 짓?”
“임신했다고 거짓말 한 거......”
“그거야 우리가 말하지 않으면 될 일......”
그러나 민효는 누운 채로 고개를 절레절래 저었다.
“너나 윤이는 몰랐겠지만, 부모님은 알고 계셨을 거야. 내가 불임이라는 걸. 그래서 너와 내가 자든, 나와 윤이가 자든, 개의치 않으신 거야. ”
강인은 그 자리에 주저앉은 채 몸을 굽혀 민효의 가슴에 자신의 얼굴을 묻었다. 그녀는 주사위가 자신에게로 옮긴 기억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기로 했다. 유경과의 섹스를 대가로 ‘희’를 거래하게 되었을 때 강인이 느낀 묘한 굴욕감. 오르가즘의 절정해서 신음 소리를 지르는 유경의 얼굴이 강인의 눈 속에서 민효 자신의 얼굴과 겹쳐지던 모습......아마 장유경도 어쩌면, 그 모든 것을 보고 있었겠지. 설령 내가 귀신을 만났다 해도 상관없어. 회환 같은 건 없어. 모든 것이 끝난 지금에 이르러 그녀를 괴롭히는 것은 따로 있었다. 무엇인가를 잃었다는 상실감. 서운함. 아픔.
강윤이라면 아마 이해하겠지. 다 나이디를 보내고 나서, 나도 모르게 떨어뜨린 눈물을, 강윤은 보고 있었으니까. 강윤, 너는 알겠지......빨갛게 물든 눈을 손으로 비비며 그녀는 중얼거렸다.
“다 나이디가 보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