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alsavina Apr 02. 2018

다이스Ⅱ -34

기억을 복사하는 주사위

  # 34 



  “여보세요?” 

  오랜만에 요란스럽게 울어대는 전화 수화기를 집어든 것은 강윤이었다. 그는 약간 놀라는 표정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반응 없이 전화 저편에서 울려오는 몇 마디의 간단한 말을 받아 넘겼다. 

  “데리러 가지 않아도 괜찮겠어?” 

  “누구야?” 

  민효는 옆에 앉혀 둔 다 나이디를 끌어안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잠시 후 수화기를 놓은 강윤은 어깨를 약간 으쓱해 보이고는 대답했다. 

  “강인, 풀려났대. 진범이 잡혔대.” 

  “그럼, 장유경 씨를 죽인 그 사람이 잡혔다는 말이야?” 

  ‘좀 시시하다‘는 생각이 언뜻 민효의 머릿속을 스쳤다. 그녀는 황급히 그 생각을 머리에서 지웠다. 잘됐어. 다행이야. 토요일에 죽였든 일요일에 죽였든 그게 뭐가 대수야. 인이가 범인이 아니라는 게 중요하지. 

  주사위 담당자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안경을 고쳐썼다. 

  “이제 정말 가 봐야겠군요. 아가씨, 그 동안 고생 많았습니다.” 

  “뭘요.....” 

  그러나 대답하는 민효의 목소리에는 맥이 빠져 있었다. 

  “이제 다시는 찾아올 일이 없겠군요. 강윤 군. 다음에는, 혹시 길에서 주사위 담당자가 죽어가는 것을 보더라도 구하지 말라고 하고 싶지만, 그렇게는 하지 않을 거죠? 그 손은.....” 

  주사위 담당자는 방금 전까지 수화기를 쥐고 있던 강윤의 손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언제든 도움의 손길이 뻗어오면 그 손을 잡아주게 되어 있는 손이니까. 어쨌든, 형제분이 무사히 풀려나서 정말 다행입니다.” 

  주사위 담당자는 경황 없이 서 있는 민효의 팔에서 다 나이디를 가볍게 안아들었다. 주사위는 이미 주사위 담당자의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간 뒤였다. 그는 여전히 멍청하게 그를 바라보는 민효에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 뒤이어 강윤에게도 인사를 한 후 한 팔에 다 나이디를 안고, 다른 한 팔로 현관물을 밀고는 밖으로 걸어 나갔다. 현관문을 열자 쏴아 하고 비가 내리는 소리가 불시에 들이닥쳤다. 그제서야 민효는 밖에 비가 내리고 있다는 사실과 거실이 몹시 어두워져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잠시 후 진호와 은하, 그리고 용환이 머리와 어깨에 묻은 비를 툭툭 털며 들이닥쳤다. 우산을 요란스럽게 털어대는 은하 옆에서 진호가 외쳤다. 

  “인이 풀려났다며? 전화왔었어.” 

  “그래서 이리로 온 거야?” 

  “응. 집으로 오겠다고 하길래. 바로 이리로 뛰어왔지. 헌수가 강인을 데리러 갔어.“ 

  “잘못하면 칠득이 형까지도 따라 오겠군.” 

  강윤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호랑이 제말하면 온다는 속담을 증명이라도 하듯 칠득이가 도착했다. 민효는 다 나이디가 품에서 빠져나간 자신의 빈 손을 하염없이 내려다보았다. 1층과 2층을 오르내리며 무엇인가를 유심히 살피던 은하가 민효를 향해 다가왔다. 

  “다 나이디가 안 보이네? 어디 갔어?” 

  “갔어.” 

  “가다니, 어딜?” 

  민효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은하는 강윤 쪽을 돌아보았다. 은하와 눈이 마주친 강윤은 멀거니 그녀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이마를 툭 쳤다. 

  “그러고 보니, 그때 받은 양육비, 한 푼도 안 썼군. 돌려줬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어.” 

  “무슨 소리야? 그럼 그때 그 아저씨가 와서, 그애를 데리고 간 거야?” 

  사태를 파악한 은하는 깎아놓은 조각처럼 서 있는 민효에게로 다가갔다. 은하의 팔에 떠밀리자 그제서야 그녀는 허물어지듯 소파에 주저앉았다. 말할 수 없는 허탈감이 그녀를 에워쌌다. 어린 시절, 애지중지 키우던 병아리가 한 달 만에 죽었을 때와 비슷한 심정이었다. 물론 다 나이디는 병아리가 아니었지만, 어쨌든 민효는 그때 이후 처음으로 이별을 만난 셈이었다. 거듭거듭 발을 적시는 밀물같은 허탈감이 그녀의 가슴을 적셨다. 빠져나간 존재의 무게에 덧붙여 보낸 애정의 무게가 사라진 후 그녀는 가벼워져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다이스Ⅱ -3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