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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득이는 화가 잔뜩 난 얼굴로 두 개피째 담배를 피워물었다.
흡사 화분을 뒤집어 놓은 듯한 크고 시커먼 모자 밑으로 뻘건 머리카락이 몇 가닥 엿보이는, 선글라스를 낀 그의 기이한 모습을 사람들은 흘끔거리며 쳐다보았으나 그의 그 큼직한 모자가 신기했을 뿐 그가 언더그라운드에서 독보적인 존재인 그 칠득이라는 사실을 눈치챈 사람은 없는 듯했다. 혹 알았다 해도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한낮에 변두리 커피숍에 혼자 앉아 누구를 기다리거나 하는 것이 일반적인 유명인의 행동은 아니라는 것이 평범한 사람들의 견해가 아닌가.
지금 칠득이는 시간 약속 잘 못 지키기로 유명한 녀석과 약속을 한 참이었다. 문제의 녀석이란 중대한 문제로 심각하게 한 약속은 칼같이 지키면서도 내키지 않는 일방적인 강요에 의해 정한 약속은 잘 안 지키는 녀석이었다. 오늘같은 경우는 칠득이가 어거지로 나오라고 떼를 써서 마지못해 한 약속이었다.
그러나 칠득이가 그리 오래 기다린 것은 아니었고, 그가 화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꽁초가 된 두 개피째의 담배를 막 비벼 껐을 때 강윤이 들어왔다. 약속 시간에 늦었는데도 전혀 서두르는 기색이 없었다. 울화가 치밀어야 마땅했으나 그 희고 야윈 얼굴을 보자 오히려 터지려던 화가 사그러들어 버렸다. 그나마 오늘은 녀석도 다른 때보다 일찍 나온 편이었다.
미안하다는 말을 웅얼거린 강윤이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칠득이는 즉시 본론으로 들어갔다.
“너, 아주 음악 때려치운 거냐?”
“응.”
밥 먹었냐는 질문에 대답하는 듯 태평한 모양새였다.
“심장병 도져서?”
“아니.”
“그럼 뭐야 임마. 아무 이유도 없이 음악을 때려쳐? 거짓말하지 마. 강인하고 무슨 일 있었지?”
“갑자기 거기 강인을 왜 갖다 붙여?”
강윤의 태평스럽던 눈매에 불이 붙은 기색이 보이자 칠득이는 일단 한 발 물러섰다. 한 번 화가 나면 물불을 안 가리는 강윤의 성미를 잘 아는 그였다. 게다가 그의 직감으로도 강윤에게 심중의 변화를 일으키도록 한 사람이 강인인 것 같지는 같았다.
“아르바이트는 할 만하냐? ”
“형 오늘 왜 그래. 왜 안 묻던 걸 꼬치꼬치 캐묻고 난리냐구.”
“무슨 다른 재미있는 일이 생겼길래 음악을 때려치웠나 싶어서. 난 말이야, 네놈 재능이 아까워. 넌 아직 모르나 본데. 내가 본 바로는 넌 천재야. 다른 건 꼴통인지 어떤지 몰라도 음악 하나만은 확실하단 말이야. 내 감은 틀리지 않아. 적어도 지금까지는 틀린 적이 없어. 그라이아이에 들어오고 말고가 문제가 아니라 지금 네 선택은 널 위해서나 이 나라 언더그라운드 록 음악을 위해서나 옳지 않다 이 말이야, 알았어?”
“.........”
“너, 다른 이유 있지? 있으면 말해. 다른 건 몰라도 네놈 일이라면 확실하게 비밀 지켜준다. 이건 맹세한다, 진짜. 그러니까 말해 봐,”
“시끄러. 이유 없어, 내가 싫다는데 왜 자꾸 그래? 그런 거 알고 싶어서 불러낸 거야?”
“야!”
이번에는 칠득이도 지는 척만 하고 있지 않았다.
“어린 게 보자보자 하니까.......내가 뭐 나 좋자고 이러는 줄 알아? 다 널 위해서......”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칠득이는 일단 말을 멈추었다. 제아무리 언더그라운드 스타라 해도 엄연히 스타는 스타였다. 사람들에게 정체를 들키면 곤란한 것이다. 강윤도 자신이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침울한 얼굴로 눈을 내리깔았다. 그러고 보니 기껏 불러내놓고 커피 한 잔도 안 사줬다는 생각이 퍼뜩 칠득이의 머리를 스쳤다.
“뭐 마실래?”
“됐어. 우리가 무슨 애인 사이냐 차 한 잔 앞에 놓고 얘기하게. 나중에 밥이나 사 줘. 그리고.......”
강윤은 머뭇거렸으나 칠득이는 애써 재촉하려 들지 않았다.
“그냥 심장병 때문이라고 쳐. 나 그만 가볼게.”
칠득이는 서둘러 일어서는 강윤의 팔을 잡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강윤은 칠득이의 눈에 얼핏 떠오른, 조롱과 연민이 한데 뒤섞인 듯한 웃음을 보았다.
“자식아. 이건 가지고 가.”
강윤의 손에 3×4크기의 사진 한 장이 쥐어졌다. 사진을 본 강윤의 안색이 갑자기 새파랗게 변했다. 그는 금방이라도 덤벼들 듯이 칠득이를 노려보았다.
“지난번에 너 민규한테 운전 면허증 보여줄 때 지갑에서 떨어진 걸 내가 주웠다.”
칠득이는 아무래도 강윤이 과민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그런 거 안 흘리게 조심하고 다녀.”
강윤은 잠시 사진을 들여다보다 주머니에 넣었다. 이미 냉정을 되찾은 표정이었다. 그는 칠득이를 쳐다보고 탁자 위에 놓인 칠득이의 담배갑을 내려다보고, 다시 칠득이를 보았다. 이윽고 결심한 듯 그는 입술을 혀로 핥았다.
“나 갈게.”
조용히 커피숍을 나서는 그의 등을 칠득이는 씁쓸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그놈의 사진, 차라리 찢어버리고 못 본 걸로 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잃어버린 줄 모르고 있었던 눈치인데.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 그 사진 속의 여자가 강윤이 음악을 그만둔 이유인가? 개운치 않은 입맛을 다시며 그는 다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바깥으로 나온 강윤은 황망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변두리인 탓인지 도로는 한산했고 자동차의 소음도 그닥 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에서는 크래쉬나 슬레이어의 곡을 방불케 하는 찢어지게 강렬한 메탈 음악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쓰러지는 소녀, 소녀의 얼굴에 번갈아 드리워지던 파란색과 보라색의 조명. 그는 주머니에 넣었던 사진을 꺼내 손바닥에 놓고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어느 새 발걸음은 저절로 멎어 있었다.
칠득이 형이 누구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라도 하면? 물론 칠득이가 보고 들은 것을 시시콜콜 아무한테나 흘리고 다니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사진을 쥐어 줄 때의 칠득이의 표정은 모든 것을 이해한 사람의 표정이었다. 그러나 지금 강윤은 후회하고 있었다. 한 마디라도 했어야 했는데.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 달라고. 그는 얼굴을 찡그리며 사진을 다시 집어넣고 횡단보도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물론 강인과 칠득이가 나누었던 ‘취한 놈들끼리 한 이야기’에 대해 그가 알 턱이 없었다.
“그 어떤 놈이 누군데?”
눈믈이 고인 듯 강인의 눈이 희미하게 빛났다.
“강윤.”
일제히 ‘뭐가 어째’하는 표정으로 칠득이를 쳐다보았으나 칠득이는 당연하다는 표정이었다.
“그래, 너희는 모르겠지. 그 녀석이 기타만 칠 줄 안다고 생각하고 있지? 어쩌면 그 녀석이 음악 그만둔 건 잘 된 건지도 몰라. 몇 년만 지나면 나 같은 건 쨉도 안 될 무서운 놈이 될테니까. 하지만 뭐 예술에 우열이 어딨어. 웬만큼만 되면 그 뒤부터는 즐기는 게 중요하지. 자, 한 잔 할래?”
아무래도 강인의 자존심에 타격이 가해진 게 아닌가 싶더니 역시나였다. 강인은 칠득이가 내미는 술잔을 단숨에 비웠다.
“조심해, 형. 당장 눈 앞에 있는 놈부터 경계해야지? 형이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이 대단한지는 몰라도 형의 실력이 몇 년씩이나 걸려야 따라잡을 만큼 위대한 경지라고는 생각이 안 돼. 솔직히 말해서, 그 ‘애도’만 해도 난 형이 가소로울 따름이란 말야.”
“어쭈, 너 말 잘했다. 어디 겨뤄 볼까? 이번에는 우리끼리만 부르고 치울 게 아니라 아예 너도 무대로 나오라구. 그래야 팬들한테 공정한 평가를 듣지. 안 그래?”
“형, 취했어. 강인 너도 알잖아. 칠득이 형의 취중농담. 너무 신경쓰지 마.”
민규의 만류는 별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강인이 호기롭게 웃고 있었다.
“지는 쪽은 다시 그 노래 안 부르기로 하는 거야, 알았지?"
“오냐, 어차피 부를 일도 없을 거 아냐, 그 노래 부르고 어디 성한 사람 있었냐? 다 죽었지.......”
“형은 예외잖아.”
“글쎄다. 예외일지 어떨지.”
어슴푸레한 조명이 반사하는 빛을 받아 칠득이의 흰 얼굴이 우울하게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