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향곡 X+1번 애도 -3/8

by Kalsavina

3

기침을 할 때마다 기관지에서 끓는 가래가 강인의 호흡을 방해했다. 끈적한 액체가 불필요하게 목을 덮고 있는 느낌은 어쨌든 불쾌한 것이라 해도 참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꾸준한 발성 연습이 필요한 이 상황에서 가래가 저절로 사라질 때까지 무작정 참는다는 것은 안 될 말이었다.

여하간 강인은 종종 밤이 늦어서야 집에 들어가곤 했다. 부모님은 각자의 직업-아버지는 의사, 어머니는 무용학원 선생님-에 바쁜 탓에 어엿한 성인이 된 아들들의 귀가 시간을 규제할 힘도 또 그럴 의사도 없었다. 그러나 오늘은 감기가 아니라 목이 쉰 탓으로 쉴 새 없이 기침을 해대며 해가 지기 전 귀가한 강인이었다.

민효가 그 가냘픈 손으로 현관문을 열었다. 그를 본 민효는 입술에 손을 갖다대며 조용히 하라는 시늉을 했다.

“왜 그래? 아버지 들어오셨어?”

민효는 대답 대신 손을 양 이마 언저리에 갖다대어 뿔을 만들어 보였다. 강인이 피식 웃자 그녀는 속삭이는 음성으로 말했다.

“두 분 다 들어와 계셔. 아버지 화 나셨어. ”

강인은 망설이지 않고 성큼성큼 거실로 걸어 들어왔다. 이제는 제법 배도 나오고 흰 머리도 많이 늘어난 강 박사가 잔뜩 굳은 얼굴로 등나무 소파에 버티듯 앉아 있는 모습이 맨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앞에 어디서 다쳤는지 얼굴에 반창고를 붙인 강윤이 등을 구부린 채 마주 앉아 있었다.

“어, 아버지 들어오셨어요? ”

2층으로 올라가기 전 강인은 쌍둥이 동생과 아버지의 동태를 살폈다. 강윤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서 얼굴에서 반창고 이외에 다른 상처의 흔적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왼손에 감긴 붕대와 청바지 허벅지 부분을 물들인 피가 선명하게 보였을 때 강인은 깜짝 놀랐다.

“그래, 새파랗게 젊은 사내놈들이 싸움 좀 하고 돌아 다니는 거야 뭐 봐준다 치자. 네가 중학교 때부터 한두번 이런 일로 애비를 경찰서에 들락거리도록 만들었냐? 한동안 잠잠하더니 또 피가 끓어오르든? 녀석아 이젠 너도 어른이야.”

사실 강 박사는, 이런 종류의 사건에는 비교적 관대한 편이었다. 처음부터 관대했다기보다는 두 아들들이 코흘리개 시절부터 지금껏 번갈아가며 하루가 멀다하고 밖에서 벌였던 크고 작은 싸움에 골치를 썩인 덕택으로 그럭저럭 면역이 되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이런 경우 강 박사 역시 그 특유의 잔소리―대개는 그의 청년 시절로 그 주제가 이어지는―를 한바탕 늘어놓고 나서는 조용해질 터였다. 그러나 오늘의 문제는 그리 간단히 끝날 기색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강윤을 붙잡고 일장 연설을 시작한 것을 기회로 강인은 슬금슬금 거실을 빠져나왔다. 2층으로 올라가는 그의 뒤를 따라 민효가 올라왔다.

“왜 저랬대? ”

“나도 잘은 못 들었는데.......강윤이 의자를 집어던졌대. 그게 발단이 되어서 패싸움 났대나 봐.”

“안에서 부리는 성질을 밖에서까지 부리다니 그 녀석 또 뭐가 불만인 거야?”

이란성이라 얼굴도 똑같지 않고 성격 또한 판이한 이 쌍둥이 형제의 유일한 공통점이 바로 이 점, 원하는 대로 행동하고 원하는 것을 모두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점이었다. 그러나 막상 원하는 것이 마음대로 성취되지 않을 때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또 달랐다. 항상 열정적이고 성취욕이 강한 강인은 차분하고 냉정하게 해결책을 모색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약간 신경질적이고 천재 기질이 다분한 강윤은 아주 난폭한 방법으로 욕구불만을 표출하는 것으로 해결책을 대신하려 들었다. 오늘 같은 경우도 그런 케이스라는 것을 강인이 눈치채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서로를 잘 알기 때문에.

“아무 이유도 없이 그럴 애는 아냐. 뭔가 말 못할 사정이 있었겠지.”

강인은 민효를 힐끗 쳐다보았다. 강인과 같은 나이인 그녀는 학교―그녀는 K대 1학년이었다―에 갈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집에만 붙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도무지 옷차림에 신경을 쓸 줄 몰랐다. 노란 여름용 티셔츠는 다 해어져 어깨에 구멍이 나 있었고 역시 오래된 면바지를 입었다. 빗질이라고는 통 하지 않는 짧은 단발머리를 억지로 치켜 올려 묶고 있어 정말이지 몸집만 큰 어린애 같았다.

“왜 그래? 너 내 뺨에 난 여드름 보고 놀리려고 그러지? ”

“아니, 너무 예뻐서.”

예쁘다는 말을 듣고도 민효는 별 감흥이 없는 얼굴이었다. 하기야 예쁘다는 말은 강인이 기분 좋을 때면 으레 입에 올리는 레파토리이고 보면 그럴 만도 했다.

“다음 주에 M 대학 축제 말이야. 이틀째 날인가 사흘째 날에 락 페스티벌이 열리거든. 우리 밴드도 참가하는데, 너 보러 안 올래? 네가 락 별로 안 좋아하는 건 알지만, 그래도 모처럼 큰 무대에 서는 거니까 한 번 와 보는 것도 나쁘진 않잖아.”

민효는 입을 오물거리다 팔을 들어 기지개를 켜며 하품을 했다. 강인이 예쁘다고 한 것은 단지 입버릇에서 나온 말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예쁜 얼굴과 호리호리한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교향곡 X+1번 애도라는 노래 얘기했었지? 그 노래 부를 거야.”

“아, 그 부르기만 하면 다 죽는다는 노래? 왜 하필 그런 노래를 불러?”

“금지된 곡이니까. 그것도 하나의 매력이잖아. 쉽게 부를 수 있는 노래는 필요없어. 그리고난 그 노래를 좋아하니까 내 목소리로 불러서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 그게 다야.”

민효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발을 들어 슬리퍼 바닥에 붙은 껌 종이를 떼냈다. 그다지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말투로 그녀는 말했다.

“난 들어본 적이 없으니 뭐라 할 말은 없고, 하고 싶어서 한다니 정말 너다운 대답이야. 그 노래에 지나치게 집착하지는 마라, 얘. 지나친 집착은 결국 집착의 대상이 아니라 집착의 주체를 파먹는 거야. 그 노래를 꼭 네가 불러야 할 이유가 있어?”

“지금 편집증 얘기 하는 거야?”

“아니, 편집증이 그렇게 간단한 거면 다행이게. 다만 말이야. 좋은 노래는 듣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거야. 하기야 어차피 넌 음악을 만드는 입장이고 난 듣기만 하는 입장이지만. ”

“넌 내가 그 노래 부르면 죽을 거라고 생각해?”

민효는 잠시 헛소리는 그만두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설마. 천재는 단명해도 바보는 오래 산다는데.”

“그럼 내가 바보란 말이지.”

“그렇게 되나?”

“그럼 그 바보 노래 들으러 올 거야 말 거야?”

“가면 되잖아. 얼마나 잘 부르는지 들어 보자고. ”

“고마워.”

강인이 볼에 입을 맞추자 민효는 까르르 웃었다. 때마침 강윤이 2층으로 올라와 그들을 보고는 잠시 화가 난 표정으로 멈추어 섰다. 민효는 강윤을 쳐다보고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강인에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너도 강윤도 쉬운 건 싫어했었지? 이럴 때 보면 역시 형제라는 게 표가 난다니까. 난 가서 사회학 레포트나 써야겠다. ”

민효는 하품을 하며 그녀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하얀 목 뒤에 미처 묶이지 못한 잔챙이 머리카락 몇 가닥 사이로 두 개의 빨간 여드름이 보석처럼 또렷하게 박힌 것이 보였다. 민효가 문을 닫자 강윤은 민효가 닫은 다갈색 나무문을 멀거니 쳐다보다 얼굴을 찌푸리며 왼손을 들었다. 손이 아픈 모양이었다.

“너 잠깐 나 좀 따라 들어와. ”

강윤은 순순히 강인을 따라 방으로 들어왔다. 문을 닫기가 무섭게 강인은 강윤에게로 다가가 그의 얼굴을 잡고 이리저리 돌리며 얼마나 다쳤는지를 살폈다. 다행히 뺨이 좀 부었을 뿐 얼굴에는 별다른 상처가 없었다.

“아버지 말대로 한동안 잠잠하다 했지. 또 어디서 뭘하다 이랬냐?”

“아르바이트 하다가. 덕택에 또 잘렸다.”

“그렇게 크게 다친 건 아니지?”

강인은 옆에 앉은 동생의 허벅지를 손으로 슬쩍 때렸다. 강윤은 비명을 지르며 형의 어깨를 주먹으로 쳤다.

“으윽, 아픈데 왜 건드리고 난리야. 그냥 좀 베인 거다. ”

“대체 어떤 놈들이었는데?”

“돈 좀 있다고 살살 웃어가면서 꼬박꼬박 빈정거리는 놈들, 왜 내가 제일 싫어하는 놈들 있잖아. 몇 번 경고했는데 말을 안 듣길래 이 몸이 친히 시범 케이스로 어퍼컷 좀 날린 것 뿐이야. 민효 말대로 지금쯤 사망 일보 전이겠지만, 그것도 다 자초한 거라니까.”

깅윤은 담배를 꺼냈으나 갑자기 얼굴을 찡그리고는 다시 집어 넣었다.

“참, M 대학 축제 때 민효도 온다고 그랬거든. 네가 데리고 좀 와라.”

“싫어. 또 그때처럼 쓰러지면 또 나보고 업으란 말이야?”

“그때는 몸살감기였다잖아. 민효가 아픈 줄 모르고 고집 부린 내 잘못이지. 하지만 이번에는 아니야. 본인이 오겠다고 했다구.”

“난 싫어. 걔가 어린애도 아닌데 왜 매번 보디가드가 붙어야 하냐구.”

“그건 그렇군.”

강인이 담배를 꺼냈을 때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강윤이 아!하는 소리를 냈다.

“형, 그거 알아? 쥬이가 자살했대.”

“뭐?”

쥬이는 언더그라운드의 아웃사이더로 알려진 독보적인 뮤지션. 한때 ‘호랑나비’라는 곡으로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으로서 TV가요 순위 최정상에 오르는 기적을 이뤄낸 실력있는 작곡가 겸 록커였다. 2년 전부터 활동을 중단한 상태였으나 최근 들어 다시 활동을 재개한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었다. 상당히 신빙성 있는 소문이어서 쥬이의 팬들 사이에서는 적지 않은 설레임이 일고 있었다. 그런데 죽었다니, 그것도 자살이라니 쥬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강인으로서도 의아한 사건이었다.

“누가 그래? 신문에라도 났어?”

“민규가 한 얘기야. 확실하대. 못 믿겠으면 칠득이 형한테라도 전화해 봐. 지금쯤은 그 형도알았을 테니까.”

침묵을 지키는 강인을 보며 강윤은 신경질적으로 웃었다.

“왜? 못 믿겠어?”

“아니야. 다만......요전에,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어. 쥬이가 새로 낼 앨범을 극비리에 녹음하고 있었다는.......”

“그건 나도 들어서 알고 있어. 하지만 강인, ‘애도’는 안 부르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그게 무슨 소리야?”

“민규가 하는 말이, 그 ‘애도’를 쥬이가 녹음하고 있었다는 헛소문이 돌고 있었단다. 너도 알지. 쥬이가 K클럽 출신인 거. ”

정말로 쥬이가 그 곡을 새 앨범에 싣기 위해 녹음 중이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K클럽을 거친 뮤지션이라면 일단 ‘애도’를 알고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고 봐야 한다. 강인은 눈살을 찌푸렸다. 담뱃재가 바닥에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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