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M대학 축제는 생각보다 빨리 닥쳐왔다.
이내 DICE EL이 공연하기로 한 나흘째 날 아침이 되었다. 항상 충분한 사전 연습을 거쳐 라이브 무대에 오르는 그들이었지만, 이번에는 특히나 강인의 등쌀 덕택으로 진호는 기타 줄을 두 개나 끊어 먹고, 헌수는 드럼 스틱을 부러뜨려야 했다. 왼손잡이인 용환이는 왼손 검지손가락 가운데마디를 다치는 통에 대일밴드를 감아야 했다. 여간해서는 목 관리를 잘 안하는 강인 역시 그렇게 싫어하는 박하사탕이나 허브 드롭스를 요즘은 입에 달고 살다시피 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불안해했다. 사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그들은 라이브 무대 경험이 전혀 없는 신인과는 격이 다르며 이제는 제법 관객을 향한 무대 흡입력도 갖추게 되어 걱정해야 할 이렇다 할 이유는 없었다. 문제는 야외무대라는 점, 그리고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틀린 관객의 수였다. 클럽에서는 대개 관객의 수가 3,40명 안팎. 많아야 50명 정도였다. 이번 공연은 단순히 M대학 단독 축제 행사의 일부가 아닌 일종의 락 페스티벌 같은 성격을 띤 것인데다가 외부인들까지 감안할 때 관객의 수를 가늠하기가 힘들기는 하나 적은 수는 아닐 것이라는 짐작쯤은 어렵지 않았다. 대형 무대에 대한 경험 부족에서 느끼는 약점. 그것이 그들을 휘감고 있는 두려움이었다.
‘그라이아이’ 멤버들이 도착했다. 그들은 오늘 Dice el과 합동공연을 해야 했으나 지금껏 같이 연습한 것은 고작해야 두 번이었다. 그나마 리허설도 없이 오르는 무대였기 때문에 공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연습하지 않으면 공연 중 호흡을 맞추기 힘들 터였다.
그라이아이 멤버들의 건방지고 오만한 성격은 여타 언더그라운드 밴드들과 팬들을 위시하여 그들을 아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적지 않은 화젯거리가 되고 있었다. 그들의 자만에 가까운 자존심을 받쳐줄 실력은 물론 갖추었거니와 수 차례 메이저 레코드사로부터 공중파 출연 제의와 메이저 데뷔 제의를 받았음에도 끝까지 언더그라운드를 사수하는 투철한 ‘언더(?)관’.한국을 방한한 해외 유명 뮤지션의 공연에 게스트로 출연하여 당사자인 유명 뮤지션이 무색할 만큼 원자폭탄격 인기를 과시한 카리스마.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규모 라이브 공연을 고집하는(가끔은 예외적으로 대형 콘서트도 갖지만) 대형 아티스트에 대한 거부벽. 이러한 것들로 인해 그들은 공공연히 비평가를 자처하는 사람들로부터 경외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그 카리스마의 정점이 바로 보컬 칠득이였는데, 그 칠득이는 다른 멤버들이 도착한 이 시간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공연까지 4시간 남은 3시였다.
“어쩌자고 아직까지 안 오고 있는 거야?”
“아까 전화해 봤는데 배가 아프다던가 뭐라던가. 같이 오지는 못해도 시간 맞춰 오겠다고 했는데 안 오는군.”
용환이가 강인의 손을 꽉 잡았다. 참으라는 신호였다. 늦게 온 주제에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없이 그저 태평한 태도에 강인이 막 분통을 터뜨리려던 참이었기 때문이었다.
“강윤은? 같이 안 왔어?”
그라이아이의 기타리스트 진승욱이 넉살 좋게 웃으며 강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같이 있으니 구색도 맞고 귀여워서 보기 좋았는데, 하나는 무섭다고 내빼고 다른 하나는 능구렁이(용환)랑 얼뜨기(진호) 사이에 끼여 있냐? 아까운 녀석을 제대로 써먹질 못하고 있으니.......”
이제는 강인이 용환이에게 참으라고 할 차례였다. 그러나 용환이는 강인과 달라 화가 난다고 대놓고 대드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때마침 칠득이가 도착했다.
“늦어서 미안하다. 병원에 갈까 하다가 이대로 연습 없이 무대에 오른다는 것도 안심이 안 되어서 말야.”
평소 때와 달리 강인의 눈치를 살피는 기색이 역력한 칠득이를 보자 이번에는 그라이아이 측들이 놀랄 차례였다. 용환이는 의아해하면서도 주의깊게 칠득이를 살폈다. 약간 창백해진 안색을 한 채 줄곧 땀을 흘리고 있었다. 본인도 그것을 의식했는지 줄곧 손으로 이마 언저리를 닦아내고 있었다. 마이크 테스트 도중 두 번이나 마이크를 떨어뜨리자 당사자인 칠득이 자신이 화를 냈다.
“젠장 왜 이렇게 손에 땀이 나는 거야!”
샤우트를 구사해야 하는 대목에서 강인은 주의를 기울여 깨끗한 샤우트를 끌어올렸으나 칠득이이의 샤우트는 고음에서 조금씩 갈라지기 시작함으로서 평소의 그다운 자신만만함을 완전히 잃은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칠득이의 행동이 눈에 띄게 불안해지자 그라이아이 쪽은 말할 것도 없고 dice el멤버들도 고개를 갸우뚱거리기 시작했다. 결국 헌수와 그라이아이의 드러머가 드럼 듀엣 연주 연습을 시작했을 때 칠득이의 문제는 드러나고 말았다.
“도저히 안 되겠다. 못하겠어......강인. 잘하면 너 혼자 불러야 하는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르겠는데. ”
“뭐?”
“칠득아!”
“형!”
일동이 경악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남은 시간은 2시간. 이제 곧 분장이 시작될 것이고 그들이 죽치고 있는 출연자 대기실 앞으로 열성 팬들이 몰려들 것이다. 이미 문 밖에서 아까부터 시끄러운 목소리로 칠득이를 부르는 목소리들이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안에서는 문제의 칠득이가 노래를 부를 수 없다고 지금 막 선언한 참인 것이다.
“왜 그래?”
“상태가.......심각해. 이대로는 무대에서 쓰러질지도 모를.......”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터였다. 왜냐하면 칠득이는 말을 채 잇지 못하고 주저앉아 무릎을 꿇더니 이내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쓰러졌기 때문이다. 아연실색한 일동을 제치고 먼저 칠득이에게 달려든 강인을 억지로 끌어내며 진승욱은 출연자 대기실 문을 열었다.
“앰뷸런스 좀 불러 주세요.”
“형! 그러면.......”
“안 되겠다. 니네들만 해라. 오늘은 다이스 엘 단독 공연이다. 가만 있자 칠득이 이 녀석을 일으켜야겠는데.........”
그 때 칠득이가 입을 열었다.
“그건 안 돼. 그라이아이는 오늘 분명히 나간다고 했다. 최소한 이런 식으로 모욕적인 펑크내고 싶진 않아. 생각이 바뀌었어. 내가 무대에서 쓰러져도 그라이아이는 나간다. 그때는 승욱이 네가 나 대신 이 녀석하고 보컬 좀 맡아 줘. 하지만........강인, 네가 그렇게 사랑하는 교향곡 넘버 X+1 ‘애도'는 오늘 네 거다.”
강인은 뚫어져라 칠득이의 핏기가 가신 입술을 쳐다보았다. 현란한 눈빛으로 입을 꼭 다문 채 안면 근육을 굳힌 강인의 입술도 덩달아 핏기가 가시고 있었다.
민효는 M대학에 몇 번 와 본 적이 있었다. 그녀에게 M대학에 다니는 친구가 둘이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렵지 않게 록 페스티벌이 열리는 노천 강당에 도착하자 그녀는 적어도 천 명은 넘음직한 많은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광경을 보고 기가 질리고 말았다. 그녀는 대학 입학식 이후 여지껏 이렇게 많은 사람들 틈에 휩쓸릴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인파를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곧 민효는 북적대는 사람들 속을 쉽게 비집고 들어갔다. 가능하면 강인의 모습을 앞에서 보고 싶었다. 그녀는 이내 실제로 사람들의 수가 멀리서 보던 것처럼 그렇게까지 많지 않음을 알아차렸다. 실제로 그녀는 록 페스티벌이 막바지로 접어들 무렵에 도착했고, 오늘 공연하기로 되어 있는 다섯 개의 밴드 중 세 밴드가 이미 공연을 마친 상태였다.
가능한 한 앞으로 가려는 그녀의 노력이 성공하여 무대 위를 왔다갔다 하는 스탭들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거리까지 왔을 때였다. 갑자기 무대 위로 올라온 사회자로 보이는 남자가 중앙에 세워진 마이크 받침대로 다가가 마이크를 뽑아 들었다.
“아, 아, ”
처음에는 마이크 테스트를 하려는 듯이 보였으나 지잉 하는 전자음이 길게 이어진 후 그가
마이크를 고쳐 잡는 것을 보니 그게 아닌 것 같았다.
“죄송합니다. 예기치 못한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공연할 예정이었던 밴드 그라이아이의 보컬, 배칠득 씨가 갑작스런 복통으로 쓰러져 방금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칠득이라면 본 적은 없지만 강인으로부터 자주 들어서 알고 있던 사람이었다. 솔직하게 말해서 민효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내지르는 이 어쩔 수 없는 이 야유와 낙심의 한숨, 분노의 고함 소리를 고깝게 여길 이유는 없었다. 이미 주위는 캄캄해진 지 오래였고 시계는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이 돌발 사태 때문에 그라이아이의 공연 자체가 취소될 상황이었습니다만, 배칠득 씨의 완곡한 희망으로 그라이아이와 다이스 엘의 합동 공연으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보컬은 기타리스트의 진승욱 씨가 맡았습니다.”
민효는 주위에서 벌어지는 풍경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어떤 사람들은 낙심하며 공연장을 빠져나갔다. 아마도 실려간 칠득이의 팬이었나 보지. 어떤 사람들은 자리를 떠나는 대신 칠득이에 대한 알아듣기 힘든 얘기를 옆에 있는 사람과 함께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아마도 칭찬이거나 욕이거나 그렇겠지. 어떤 사람들은 울기까지 했다. 죽은 것도 아니고 울 정도로 큰 일은 아니건만.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기왕 이렇게 된 듯 남은 공연이나 보고 가지는 일념에서인지 여차하면 앞으로 나가 소리를 지르며 팔을 휘두를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나름대로 공연을 즐기는 그들의 방식이었다.
그들 중에는 단지 소리를 지르고 헤드뱅잉을 하기 위해서 이런 자리를 찾아다니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정말로 음악 자체에 심취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일부는 음악이 아닌 음악인에게 심취해서 라이브를 찾아다니기도 하겠고. 무대가 준비되는 동안 민효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나는 어떤 부류인가. 이런 어지럽고 시끄러운 자리는 질색이고, 록 음악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세 번째 부류라고 봐야겠군. 비로소 공연장을 빠져나간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으나 더 이상 생각은 이어지지 않았다. 그라이아이의 멤버들이 무대 위에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공연이 재개되었다.
진승욱의 노래 실력도 무시할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칠득이의 힘이 넘쳐나는 보컬에 비해 아무래도 관중의 신경을 빨아들이는 흡입력이 부족했다. 게다가 기타와 노래를 병행하고 있어 활발한 무대 매너를 보여주기가 쉽지 않았다. 본인도 자신의 역량을 잘 파악하고 있었던 듯 애써 무리한 애드립을 시도하지 않았다.
민효로서는 진승욱의 노래 실력이며 애드립 따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한시바삐 강인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지금 무대 위에 있는 저 사람 같은 모습일까. 내가 아는 강인과 크게 다를까. 난 여기 괜히 온 게 아닐까. 왜 내가 모르는 강인의 모습을 굳이 알아야 하는 걸까. 진승욱의 노래가 끝나자 곧 dice el 멤버들이 등장했다. 갑자기 어딘가에서 여자들 특유의 비명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왔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녀들은 M대학 여학생들로서 베이시스트 이용환의 팬들이었다.
강인은 웃옷을 벗고 무대 위에 나타났다. 민효는 사람들에게 휩쓸리는 통에 무대 앞으로 아주 가까이 왔기 때문에 강인의 자신에 찬 얼굴을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그녀가 지금껏 보지 못한 새로운 모습이었다. 아니야. 본 적이 있어. 다른 곳에서.......내게는 생소하기만 한 모습이지만. 민효는 반쯤 입을 벌리고 정신없이 이 낯선 청년을 쳐다보았다. 어떻게든 자신이 아는 강인과 닮은 점을 찾아내려고 애쓰면서.
강인과 용환이의 간단한 멘트에 뒤이어 민효의 귀에도 익숙한 dice el의 노래들이 두세 곡 이어졌다. 민효가 아는 그 강인과는 별로 닮지 않은 저 높은 무대 위의 (사실 무대가 높았다) 강인은 침착하게 노래를 부르다가는 고함을 지르고 발을 구르기도 하고, 용환이와 함께 그리 넓지도 않은 무대 위를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쓸데없는 과시욕......이라는 말이 민효 자신의 무의식적 만류에도 불구하고 함부로 의식의 표면 위로 떠올랐다. 그게 옳아. 틀린 말이 아니야. 그러나 지금 웃옷을 홀랑 벗어던져 맨가슴을 드러낸 늘씬하고 싱싱한 청년은 민효와 함께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로부터라는 말은 틀렸겠지만. 그러나 사람들은 앞다투어 그를 부르고 그는 노래 간주 부분에서는 몸을 구부리고 손을 손을 뻗어 사람들이 위로 내뻗친 팔을 잡으려는 시늉을 했다. 민효는 귀를 틀어막았다. 어떤 소리도 듣고 싶지 않았다. 또한 어떤 생각도 더 이어지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의지를 무시한 채 생각은 다시 이어졌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에.....
어느 무더운 여름날 그녀는 먼지가 자욱한 길가에 앉아서 오랫동안 울었다. 왜 울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강인도 옆에서 울고 있었다. 그애는 왜 울었을까. 나 때문에 울었을까. 아니면 내가 그애 때문에 울었을까. 기억하기로는, 그애가 나한테 뭔가 안 좋은 얘기를 했고 그 때문에 슬퍼서 울었던 것 같다. 연결되었던 생각이 끈이 다시금 끊어진 순간, 서둘러 이 자리를, 뻗어올린 팔들의 숲을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의 의지는 스스로를 배신했다. 다시금 사람들의 목소리가, 그리고 강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칠득이 형과 함께 불러야 했을 노래인데, 결국 혼자 부르게 되네요. ”
나왔다. 교향곡 X+1번 ‘애도’. 그녀는 이 노래를 듣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 싫든 좋든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민효는 고개를 떨구고 귀를 기울였다. 왜 이 상황에서 그 무더운 여름날을 기억해내야 했는지 납득하지도 못한 채. 강인의 목소리는 낮게, 높게 이어졌다. 불협화음처럼 들려오는 가락의 마디마디가 그녀의 마음을 빼앗았다. 너무 오래 서 있어서 다리가 아팠다.
Oh, rose, thou art sick.......
민효는 문득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잘못 듣고 있나? 그러나 지금 강인이 발음하고 있는 영어는, 분명 그녀가 그렇게 좋아하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였다. 오, 장미, 너 병들었구나, 밤에 날아 다니는 보이지 않는 벌레 아우성치는 폭풍우 속에.......그런데, 왜 이 시가 하필이면 저주받은 노래라는 그 애도인지 장송곡인지 하는 곡의 중간에 나온단 말인가?
And his dark secret love
does thy life destroy
마지막 구절을 들으며 그녀는 그것이 블레이크의 'The sick rose'임을 확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