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향곡 X+1번 애도 -1/8

1/8

by Kalsavina

애도


-교향곡 X+1번 ‘애도’-


오, 장미 너 병들었구나

밤에 날아 다니는

보이지 않는 벌레가

날아 다니는 폭풍우 속에

발견했구나 진홍빛 기쁨의

네 잠자리

그의 어두운 감춰진 사랑이

네 삶을 파괴하누나

윌리엄 블레이크 <병든 장미>


1


진호가 자리를 차고 벌떡 일어났다.

“뭐? 그걸 부르겠다고?”

용환이도 헌수도 놀라 강인을 쳐다보았다.

“지금 애도 교향곡이라고 그랬냐?”

록 밴드 DICE EL의 미남 보컬, 우리의 강인은 어느 날 팬이라며 찾아온 M대학의 학생회장으로부터 구미가 당기는 제안을 받았다. 한 달쯤 지나 시작하게 될 M대학의 축제 기간에 게스트로 공연해 달라는 초청을 받은 것이다. 더구나 이미 다른 한 밴드로부터 승낙을 받아 놓았는데, 그 다른 한 밴드는 바로 ‘그라이아이’였다.

“뭐요? ‘그라이아이’라고요?”

“예. 저.......뭐 기분나쁘신 거라도? 실례되는 행동이었다면 죄송합......”

“아니오! 갈께요. 간다구요.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 초대 안해 주셨으면 서운했을 뻔했어요.”

M대 학생회장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돌아갔다. 그가 돌아간 후 강인은 용환이와 진호와 헌수를 즉각 연습실로 불렀다.

“이번에 ‘애도교향곡’을 부를 참이야.”

“난 좀 안 내키는데.......그 곡이 좀 악명높은 곡이냐?”

“나도 싫어. 그 노래 부르고 나서 죽은 뮤지션이 몇이나 되는데......”

“그거 확인된 사실도 아닌데 뭘 쫄고 그러냐? 근데 실은 나도 안 내켜.”

강인이 부르겠다고 한 ‘애도교향곡’의 정식 명칭은 <교향곡 X+1번 ‘애도’>로서 DICE EL의 본거지인 클럽 K에 떠도는 정체불명의 록 사운드를 일컫는 것이었다. 클럽의 티켓 담당자 말로는 90년대 말부터라고 하는데 정확한 연도는 알 길이 없었다. 작사자도 작곡자도 누군지 모르는 그 노래는 아주 애절한 사랑 예찬곡이었다. 그 이름도 처음부터 ‘애도’는 아니었다. 원래는 이름조차 없는 곡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래 전 이 ‘애도’를 불렀던 밴드의 보컬이 교통사고로 죽은 후 이 정체불명의 노래에 대한 이상한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한 번이라도 이 노래를 무대 위에서 부르면, 즉 청중들 앞에서 공연하면 그것을 부른 당사자는 무조건 죽는다는 소문이었다. 그 사실을 증명이나 하듯 지난 99년 이 이름없는 곡을 무대 위에서 불렀던 당대 최고의 메탈 밴드 a.d.k(가명)의 베이스 기타를 맡았던 멤버가 익사하면서 이 노래에 저주가 붙어 있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제목도 작사자도 작곡자도 없는 정체불명의 노래라는 점을 사람들은 새삼 꺼림칙하게 여기게 되었고 처음에 죽은 이름없는 보컬의 영혼이 저주를 내렸다느니 어쩌니 하는 괴상한 이야기가 나돌면서 어느 새 정체불명의 노래는 ‘애도’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곧 ‘애도’는 ‘교향곡 X+1번’이라는 수식어를 달게 되었다. 마치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운명’이라든가 하는 것처럼.

이제는 하나의 전설이 되어버린 그 곡, 동경의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밴드도 감히 라이브로 부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그 곡을 강인이 지금 몇 백명의 관중이 모여들지 모를 라이브 공연 때 부르겠노라고 당당히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어찌 생각하면 강인다운 발상이었으나 dice el멤버들은 강인이 일언반구의 상의도 없이 독단적으로 결정한데 대해 놀라는 한편 화가 나기도 했다. 사실, 저주를 받았든 단순한 우연의 일치이든 간에 석연치 않은 현상이 속속 일어났던 곡이니만큼 강인을 제외한 모두의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걸 네 맘대로 결정하냐 임마?”

“그래서 지금 어떠냐고 묻는 거잖아.”

“꼭 불러야 되겠냐? 너, 그 때 칠득이랑 했던 헛소리 때문에 그러지? 쨔샤. 그럼 그거 농담 아니었어? 넌 무섭지도 않냐?”

“용환이 네가 그랬지. 과학적 증거 없으면 믿을 거 못 된다구. 그 때 네가 웬일로 입바른 소릴 하는구나 싶더라. 지금부터 연습 들어간다. 내가 K클럽에 가서 악보 가져올게.”

문제의 악보는 K클럽 지하실에 보관되어 있었다.

“강인, 그냥 그만둘 수 없냐? 난 께름칙하단 말이야.”

헌수는 건장한 체격에 어울리지 않게 담이 작고 미신을 믿는 편이었다. 강인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머리를 흔들었다.

“너희가 싫다면 나 혼자라도 부르겠어.”

“왜 자꾸 그 노래에 집착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아무렇게나 던진 진호의 말에 강인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는 자신이 그 노래에 집착하고 있음을 시인했다. 강인이 ‘애도’의 독특한, 암울하고도 구슬픈 멜로디에 반한 것은 이미 오래 전 얘기고 그는 틈만 나면 그 노래를 연습했다. 사실 애도를 연습하는 것은 강인 혼자만은 아니었다. ‘애도’는 이상하리만치 작곡이 잘 되어 있었다. 기타면 기타, 베이스면 베이스, 드럼이면 드럼 어느 것 하나 처지거나 상대적인 비중이 낮아지는 데가 없고, 터득하기 어렵지만 일단 터득하고 나면 상당한 연습이 되어 연주 실력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되는 등 잼을 하기에는 그보다 좋은 곡이 없었기 때문에 뮤지션들은 앞다투어 ‘애도’를 연습했다. 하기야 무대에는 아무도 올리지 못했지만.......

그러나 강인은 자신의 목소리만큼 ‘애도’를 멋지게 부를 수 있는 목소리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좋아.”

아까부터 침묵을 지키던 용환이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네가 하면 나도 해. 어차피 음악이 좋아서 이 생활 뛰어들었는데 좋아하는 노래 하나 미신 때문에 못 불러서야 우리가 왜 음악을 하느냐는 근본부터 회의가 들지. ”

“야, 오해하지 마. 난 그 곡 싫은 게 아니야. 난 강인 너보다 열배 백배는 그 음악을 사랑한다구. 알았어 나도 하면 될 거 아냐.”

헌수가 열을 내자 용환이가 부랴부랴 사태를 수습했다.

“알았어. 이렇게 됐으니 진호만 한다고 하면 결정나겠군.”

“뭐야, 내가 언제 안 한다고 그랬어?”

“맨 먼저 싫다고, 안 내킨다고 하지 않았어? 그럼 하기로 한 거다. 강인, 악보 가지러 가자.”

용환이는 대견하다는 눈길로 강인을 쳐다보았다. 그는 이럴 때면 어김없이 역력히 드러나는 강인의 순수하고 싱그러운 열정을 사랑했다. 지난 해 강인을 밴드에 끌어들였을 때만 해도 그가 리더가 되리라고는, 그것도 이렇게까지 팀을 잘 이끄는 리더가 되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물론 이처럼 그를 따르게 되리라고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K클럽의 관리인 겸 매표 담당자인 L은 악보를 내달라는 강인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걸 부르겠다고? M대학 축제에서? 간도 크셔. 그런데 어떡하지? 이미 칠득이가 사보 뜬다면서 가져가 버렸는데?”

칠득이는 하드 코어 그룹 [그라이아이]의 보컬. 그는 ‘애도’를 너무나 좋아했고, 또 잘 불렀다. 자작곡이 아니라는 이유로 정식 공연은 하지 못했지만 그만큼 ‘애도’를 잘 소화해 낸 사람은 없었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애도’의 보컬이었다. 이상하게도 그는 다른 팀의 공연에 게스트로 출연하면서 ‘애도’를 몇 번이나 무대에서 혼자 불렀는데도 죽기는커녕 느긋하게 잘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그 이유가 칠득이의 ‘애도’에 귀신도 감격해서 그렇지 않겠느냐고 농담조로 말하곤 했었다.

그런 칠득이에게 강인이 도전장을 내었던 것이다. 바로 진호가, ‘너 그때 칠득이랑 했던 헛소리 때문에 그러지?’라고 언급한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모처럼 라이벌인 두 팀이 같이 벌였던 술자리에서 강인은 ‘애도’를 두고 칠득이와 언쟁을 벌였던 것이다.

“칠득이 형 사보 뜬 거 있잖아요? 근데 왜 가져갔지?”

혹시 우리가 사보 못 뜨게 하려고 그런 거 아니냐고 말하려다 용환이는 입을 다물었다.

“그럼 어떡하지? 포기할까?”

“그건 안 돼. 칠득이 형 연습실에 쳐들어가서라도 뺏어올 거야.”

“그럴 필요 없어요. 어쩌면 다른 사보 떠 놓은 거 있을 거야. 내가 찾아볼께요.”

결국 L은 먼지를 뒤집어 써 가며 사보를 찾아냈다.

“정말 죄송해요. 감사하구요.”

“무슨 소리, 칠득이 기 좀 꺾어서 고 능구렁이 같은 심보나 고쳐 줘요.”

L은 그가 아끼던 긴 머리채의 블루 블랙 가발을 칠득이한테 뺏겼기 때문에 칠득이를 무지무지 많이 원망하고 있었다.

“일단 칠득이 형한테 뺏겼다면 포기하는 게 좋을 텐데?”

용환이의 농담은 강인의 귀에 들어가지 않았다. 연습실로 돌아오는 동안 강인은 내내 칠득이와 나누었던 ‘취한 놈들끼리 한 이야기’를 생각했다.

“형은 부르면서 제일 좋았던 노래가 뭐예요?”

칠득이의 집에서 그다지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조그만 동네 호프집이었다. 두 그룹의 멤버가 하나도 빠짐없이 모여 있었고 이슥한 밤이라 그랬는지 손님은 그들뿐이었다. 칠득이는 그날 공연이 있었던 터라 성대를 혹사시킨 직후여서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가 부르면 다 좋지 제일 좋고 나쁘고가 어딨어. 굳이 고르자면 우리들의 교향곡.......넘버 X+1번 애도. ”

긴 머리를 뒤로 넘기며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만 부르고 있으면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자주는 못 부르지만.......”

“칠득이 형이 ‘애도’ 부르는 걸 듣는 사람은 그냥 넘어가던데......무슨 사연이라도 있어요? 그 노래가 원래 좀 애달프잖아.”

그라이아이의 베이시스트 민규의 말에 헌수가 반박했다.

“강인도 만만치 않아. 너희가 그 녀석이 부르는 ‘애도’를 들어보기나 했어? ”

강인은 일찍 취했기 때문에 술잔을 마다하고 뒤로 물러앉아 있었다. 칠득이는 강인의 어깨를 살며시 껴안으며 헌수의 말에 동조했다.

“난 들어봤지. 이 녀석도 꽤나 위협적인 라이벌이야. 내가 아는 어떤 놈 빼면.”

“그 어떤 놈이 누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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