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

kalsavina의 인형이야기

by Kalsavina

지난 날들을 돌이켜보면, 가끔은 후회가 될 때가 더러 있다. 조금은 더 유익하고 보람있고 현실적인 일에 시간과 노력을 더 많이 쏟아부었어야 했다는 후회 말이다.

새로 뜬 코바늘 파우치와 함께 찍은 가을이. 가을이가 입은 볼레로 또한 손수 코바늘로 떠서 만들었다.


언제 보아도 귀여운 리틀초돌 링메

그건 어쩌면, 자신과의 전투를 치열하게 치러내지 못했다는 후회일 수도 있고, 조금은 살벌한 현실에서 물러나기 위한 방편으로 인형을 선택했다는 일종의 자책감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이 진짜로 좋아하는 일을 외면해가면서까지 현실에 몰두하는 냉혹한 시간을 보냈다면, 그게 과연 진정한 나로서의 삶을 산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인형과 함께했던 지난날들을 후회하며 부정한다는 건, 결국 그 시간을 인형에 의지해 이겨냈던 나 자신마저 부정하게 되는 꼴이다.

여름 원피스를 입은 쪼꼬미

외롭고 힘들고 지칠 때, 빈약한 감각에 의지해 서툰 손놀림으로 예쁜 것을 만들며 우울증을 이겨내는 사람이 바로 나라는 사람이다. 코바늘뜨기를 배우고 인형옷을 만들면서 그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내 손에서 인형을 떠나보내는 순간 나는 내가 아니게 되어 버리는 것이다. 절대로 타협할 수 없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물러서서 양보하는 순간 진정한 나 자신을 잃는다는 걸 깨닫는 바로 그 지점이다.

손수 만든 여름 원피스를 입은 가을이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은 결국 다른 그 어떤 것도 아닌 "아름다움을 향한 끝없는 꿈"이다. 그 채울 길 없는 꿈을 붙들어주는 현실 속의 유일한 수단이 다름아닌 인형인 이상, 나를 나답게 해주는 다른 그 어떤 것도 인형을 빼놓고서는 말할 수 없다. 결국 그 무엇보다도 내게 있어 나를 나답게 해 주는 가장 확실한 것은 인형과 함께하는 내 인생의 시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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