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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lsavina Jun 29. 2022

35. 거대한 속임수

칼마녀의 테마에세이

살다 보면 꼭 인생을 통째로 사기당한 것 같은, 치명적인 배신을 당한 것 같은, 거짓말에 놀아난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그냥 특정한 누군가에게 특정한 일부분을 그렇게 당했다는 게 아니라 뭔가 처음부터 뿌리까지 본질적으로 "속았다"는 기분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이다. 아마 푸시킨은 이런 기분을 시로 표현했나 본데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이런 기분을 느끼고 나면 왠지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해도 그게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살아 있다는 게 그 자체로 하나의 허황한 꿈일 뿐이라고 여겨질 때, 그래서 그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느껴질 때.

조금쯤은 꿈 속에서 더 오래 놀아보자,는 기분으로 자신을 다독이지 않고 어떻게 자신을 지탱해 나갈 수 있을까.


이런 기분 때문에 혼자이고 싶을 때, 그런 나를 "이기적이네"라든지 "주변과 가족과 친구들 생각은 하냐"라든지 하고 비난하지 않고 그냥 조용히 바라봐 줄 사람이 하나라도 있을까.


살아간다는  자체그냥 하나의 거대한 속임수에 놀아나는 과정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은 며칠 전 찾아낸 근사한 편의점에서 찍은 건데 하필 그 근사한 편의점이 학원 1층이다. 내일 이후로는 다시 찾을 일 없는. 아니 뭐 생각나면 들러보면 되긴 하지만 굳이 여길 들르러 여기까지 올 일이 있겠나 싶고.

좀 더 일찍 와봤어야 했는데. 너무 아쉽네.


큰길가가 보이는 바 자리를 기막히게 깨끗하고 높이가 적절하며 편안하게 만들어놓았고 외쿡 고급 술을 종류별로 진열장에 이쁘게 (구경하라고) 진열해놨고 다른 데서 안 파는 실론티 캔과 잉블티백 미니사이즈를 판다. 진심 통째로 들어다 집 앞에 옮겨놓고 싶지만 ㅋㅋㅋㅋㅋ 그 자리에서는 저런 뷰가 안 나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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