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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lsavina Jun 04. 2023

51. 소설가 칼여사의 일일

칼마녀의 테마에세이

나는 소설가이고, 환상문학이나 순수한 판타지 장르를 싫어하진 않지만 그래도 현실 세계에서 벌어지는 인간사를 기반으로 한 설정에 적을 두는 편이다. 요약하자면 살면서 한번쯤은 부닥칠 법한 딜레마나 고난 등을 생각해 보자는 견지에서. 문학이 실제의 삶에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지 않고서야 어떻게 사람들에게 책을 읽으라는 말을 떳떳하게 하겠냐고. 여튼 나의 삶의 결정적인 선택들은 결국 내 업과 관련되어 있다는 얘길 하다보니 나오는 말인데.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 나.


가난해서 차 살 돈도 없고 누가 차를 준다 해도 어린애 치어 죽인 김여사 될까 봐 운전대 안 잡기로 결심했지만 버스를 타고 다니는 정말 중요한 다른 이유는. 버스를 타며 길거리를 돌아다니지 않고서는 사람 구경을 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대단히 거창한 뭐가 아니라, 스쳐가는 모든 인간 군상의 풍경이 그러다 포착하게 되는 장면들이 그러다 벌어지는 사소한 에피소드 그 모든 것이 나에게는, 정말 필요한 것들이다. 혼자 혹은 가족을 태우고 먼 거리를 여행하는 운전 여행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것들은,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는 필요치 않을 것이다. 타인의 삶에 관심을 둘 이유 없이 자신의 삶만 잘 꾸려가면 되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방해받지 않는 안전한 자동차 여행이 효율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며 사람들 사이에 섞여 다니는 경험은 한 번이든 열 번이든 귀중한 경험들이다. 정말로 갈 곳이 없어서 방에 틀어박혀 책만 읽는 세월을 장시간 보내본 경험이 없다면 내 말뜻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거실 부엌이 따로 없는 두 칸짜리 방에서 노모와 아이 둘과 함께 몇 년을 보내는 세월 동안 내 유일한 낙은 벽장 속에 숨겨놓은 인형들이었다. 개인의 경험과 그 경험으로 얻은 깨달음은 오로지 그 개인 자신에게만 귀중할 뿐 타인에게까지 귀중한 것은 아니다. 어쩌다 보니 운전대를 안 잡는 것에 대한 변명이 길어졌다. 정말 최근에 이르러서야 깨달은 것 중 정말 중요한 것은, 타인에게 의미있는 모든 가치를 내가 반드시 공유해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었다. 내게 의미있는 모든 가치를 당신이 꼭 공유할 의무가 없는 것처럼. #면허는있고요 #오해마시고 #면허있냐고또물으면 #입꼬매버릴거야


여튼 사람들을 구경하며(관찰까지는 아니고. 스토커냐고요 관찰씩이나 하게) 다니다 보니 나도 구경거리가 되겠는데 남의 눈 너무 괴롭히면 안 되겠어서 옷은 신경쓰려고 하는 편. 물론 나 편한대로

가방 손수 떴냐는 질문 격하게 환영합니다. 그러믄요. 그런 날은 입을 종일 귀에 걸고 다님. 소설이든 뜨개용품이든, 내가 제작한 것의 가치를 인정받는 건 기쁜 일. 작가로서의 보람도 바로 그 지점에 있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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