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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리아예프 Feb 06. 2024

만약 천국이 있다면 도서관+헬스장처럼 생겼을 것이다.

웨이트 트레이닝 만세!

보르헤스는 “만약 천국이 있다면 도서관처럼 생겼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이 말에 공감하면서도, 약간의 수정을 해보고자 한다. 바로 이렇게. “만약 천국이 있다면 도서관+헬스장처럼 생겼을 것이다.” 언젠가 보르헤스를 만난다면, 이렇게 수정한 문장을 보여주겠다. 그리고 약간의 투정이 섞인 타박을 해주겠다. 몸을 움직이는 기쁨은 분명 책 읽는 기쁨 못지 않다고.


그러니까 나는 책 읽기만큼이나 운동을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웨이트 트레이닝을. 사실 학창 시절엔 지금처럼 운동을 엄청 좋아하진 않았다. 당연히 꾸준히 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체육 시간이 되면, 운동장과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 운동을 하지 않는 아이들과 수다떨기를 좋아했다. 체육 활동을 ‘무식함’과 연결 짓는 무의식도 머릿속 어딘가에 있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피상적인 인식이다.


어쨌건 그 시절엔 아주 많은 것들이 나를 운동과 멀어지게 했다. 결정적인 건 학교 체육시간이 아니었을까. 학창 시절 체육 시간에 내가 배운 것은, ‘운동이란 얼마나 즐거운 것인지’가 아니라, ‘내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얼마나 운동 신경이 떨어지는지’였으니까. 이런 환경에서 운동에 흥미를 갖기는 불가능했다. 사실 내가 경험한 학교의 체육 교육 방식은 엘리트 체육인을 선발하고 육성하는 방식을 닮았다. 아이들을 경쟁을 시키고, 활동에 점수를 매기고, 이를 통해 줄을 세우는 방식. 그 때의 내가, 생활체육인으로서 운동을 즐겁게 영위하는 방법을 배웠으면, 운동을 좀 더 일찍 좋아하게 되지 않았을까. 그럼 10대도 20대 초중반도 좀 더 건강하게 보내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내가 무슨 바람직한 체육 교육의 방향과 비전을 제시하려는 건 아니다. 내가 뭘 알겠나. 월드컵 경기도 안 보는 내가….


그래도 20대 후반쯤부터 나는 운동을 본격적으로 좋아하게 되었다. 왜 좋아하게 되었나 생각해보면, 역시 책 덕분이다. 나는 인터넷 서점을 서핑하다가, 최영민이라는 분이 쓴 <불량헬스>라는 책을 우연히 발견했다. 책 소개 카피에 눈이 갔다. “S라인과 식스팩에 돌직구를 날리다” 돌직구? 무슨 돌직구? 지금도 그렇지만 피트니스라는 게, 실은 루키즘(lookism)과 떨어뜨릴 수 없는 것 아닌가. S라인과 식스팩은 루키즘의 대표적인 표상 중 하나고. 하지만 나는 그 책 덕분에 루키즘에 얽매이지 않은 피트니스의 세계를 만났다. 말 그대로 건강한 육체와 정신을 추구하는 운동의 세계를 만난 것이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이 책에 달린 평가를 볼 수 있다. 가장 많은 공감수를 받은 100자평은 다음과 같다. “무료로 받지 않았으면 절대 보지 않았을 쓰레기 같은 책”…. 좀 너무한 거 같은데…. 물론 어떤 이가 쓰레기라고 욕해도, 누군가는 그것을 통해 새로운 배움을 얻고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법이다. 무엇보다 읽는 인간은 무슨 일이든 견뎌낼 수 있다. 내가 재밌게 읽은 책에 남긴 저런 부당한 평가와 악플도….


아무튼 이렇게 운동을, 그중에서도 웨이트를 좋아하게 되었지만, 내가 인터넷에서 흔히들 얘기하는 “3대 500”의 웨이트 고수는 아니다. 식스팩이 선명하게 보이는 것도 아니고. 뭐 데드 리프트는 135kg, 스쿼트도 135kg, 벤치 프레스는 65kg 정도 해서, 3대 335 정도 드는… 그냥 웨이트 좋아하는 평범한 사람이다. 심지어 스쿼트도 자세 안 나와서 풀 스쿼트까지 하진 못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동과 웨이트 트레이닝을 통해 누린 혜택은 많다. 첫 번째로는 웨이트가 생활에 규율을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출근 전에 운동을 하고 하루를 시작하면 하루가 꽤 상쾌하다. 좀 늦게 일어나더라도 괜찮다. 10분이라도 해보시길. 두 번째는 수도승처럼 일종의 ‘도 닦기’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왜, 종교를 가리지 않고, 수도사들은 마음과 정신의 수양을 위해 일부러 고행을 하지 않나. 그런 고행을 위해 무슨 산 속 깊은 폭포를 찾아갈 필요가 없다. 헬스장이 있으니까. 그리고 이건 정말인데, 작은 고통은, 큰 쾌락을 주기 마련이다. 이 큰 쾌락은 루키즘에 기반한 욕망을 달성하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 성취감과 자기 효능감, 상쾌한 기분을 준다는 의미다. 세 번째는 우울감이 잘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웨덴의 정신과전문의이자 작가인 안데르스 한센은 운동을 “천연 항우울제”라고 부른다. 돈은 거의 들지 않는 항우울제.


이처럼 운동은 마냥 좋다. 하지만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건강하지 않은 욕망이 생겨날 수 있다. 루키즘이 강화되고 거기에 집착하는 욕망, 나는 이런 욕망은 경계하고 싶다. 남성성 표출을 통한 시각적 매력의 향상엔 너무 신경쓰지 않고 싶은 것이다. 원래도 무슨 대단한 몸짱이 되서, 바디 프로필을 찍는다거나 할 생각은 없기도 했다. 여건이 된다면 언젠가 찍을 수도 있겠지만. 뭐 넓은 등짝, 떡 벌어진 어깨, 굵은 팔뚝, 잔뜩 올라간 엉덩이와 두꺼운 허벅지를 갖기 싫은 것은 아니다. 우리가 가진 미적 기준을 충족시키는 것이, 웨이트를 하는데 전혀 동기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다만, 많은 이들이 그런 외형에 집착하면서, 일반인들마저 약물에 손을 대고 로이더가 되는 것 같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나도 그런 욕망, 즉 루키즘이 1순위가 되면, 약물을 통해 엄청난 퍼포먼스와 외형을 가져보고 싶어하지 않을까? 실제로 로이더가 됐더니, 운동 효율이 말도 안 되게 올라가, 한 번 들 거 열 번도 더 들게 됐다는 얘기가 인터넷엔 많다. 신세계를 만났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욕망에 휘둘리며 운동한다면, 운동을 통해 건강은커녕, 되레 병을 얻는 것은 아닐까. 신체에 관한 것이든 정신에 관한 것이든.


일본의 웨이트 전도사이자 파워 트위터리안인 테스토스테론은 자신의 트위터 글을 모은 책 <웨이트 트레이닝이 최강의 솔루션이다>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생의 문제 99%는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해결 됩니다.” 나는 당연히 이 말이 과장됐다고 생각한다. 인생의 문제들이 얼마나 복잡한데, 그리고 세상에 당장 해결될 수 없는 문제들이 얼마나 많은데, 어떻게 웨이트로 99%가 해결 되나. 하지만 99%는 아니더라도, 9% 정도는 해결이 된다면? 이러면 해볼 만 한 거 아닐까. 인생을 살아가면서 맞닥뜨리는 문제의 9%는 해결되는 삶의 기술, 이는 인생에 비장의 한 수가 되어줄 것이다. 9%라는 것도 상당히 보수적으로 잡은 것이니까. 그러니 속는 셈치고 웨이트를 한 번 해보자. 테스토스테론이 정립한 아래 도식을 기억하며.


우울하다 -> 웨이트 트레이닝

자신감이 부족하다 -> 웨이트 트레이닝

이성에게 인기가 없다. -> 웨이트 트레이닝

다이어트를 하고 싶다. -> 웨이트 트레이닝

뚱뚱하다 -> 웨이트 트레이닝

스트레스가 많다 -> 웨이트 트레이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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