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족이 아니라 남이다
그럴 때가 있다. 엄청 뻔한 말인 것 같은데, 평소 몰랐던 게 아닌데 갑자기 탁 와닿는 순간. 지금의 나에게만 들리는 이야기 같은 것.
요즘 한창 고민이었다.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는데, 그게 꼭 회사 일과 무관해야 할까? 꼭 퇴사를 하고 여행을 해야하는 건가? 물론 나는 퇴사도 여행도 해봤다. 꼭 그게 답은 아니더라.
어찌됐거나 하루 3분의 1 이상을 보내는 회사에서, 내가 하는 일로 내 미래를 그려볼 순 없을까? 사실 하루 3분의 1도 넘는다. 하루 기본 8시간 근로, 휴게시간 1시간, 출퇴근 2시간하면 벌써 11시간. 잠 자는 8시간을 빼면 나머지 시간은 5시간 밖에 안된다.
이 과정에서 나를 힘들게 한 건 또 있었다. 별별 불만과 남탓이 늘었다는 자괴감이었다. 왜 회사에 있는 사람들은 나와 생각이 다를까? 왜 나만큼의 에너지를 쏟지 않는 걸까? 회사가 싫든 좋든 해야할 일은 해야하는 것 아닌가? 근데 정작 난 잘하고 있는 걸까? (이쯤되면 자기반성으로 오싹해짐 ㅋㅋ) 여튼 답은 일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좋은 기회에 직방 이언주 커뮤니케이션실장님을 만나게 됐다. 브랜드 가치를 높이며 일하는 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직방에 관한 이야기였지만 어떤 조직에서든 통할 '일에 대한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대략 내 마음을 톡 건드리는 내용을 정리하면 다섯 가지 정도였다.
1.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행동하자.
2. 우리는 남이다. 우리는 성과를 내야하는 프로팀이다. 각자 맡은 일을 열심히, 잘 하자.
3. 서로가 같은 목표를 향해 잘하고 있다는 걸 인정하자.
4. B급 성과 100개보다 A급 성과 1개를 내자
5. 하자고 한 건 하자. (=지키자고 한 건 지키자.)
좀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에서! (매우 매우 길지만, 어떤 사람에게든 언제든 어떤 부분이든 닿길 바라는 마음에서 꽉꽉 채워 담았다.)
이언주 실장은 2007년부터 2014년까지 기자로 일했다. 기자를 그만두고 부동산정보 서비스 '직방'에 합류했다. 구성원이 서른 명 남짓 되던 시절이었다. 창업 멤버는 아니지만 빠르게 성장하는 직방의 변화와 발전을 함께 했다. 합류한지 1년도 되지 않아 앱 다운로드 수가 200만에서 1000만을 기록했다.
적응이 아주 쉬웠던 건 아니다. "입사 3개월을 견뎌낸 것 자체가 뿌듯했어요. 6개월만 더 '버텨보자'고 생각할 정도로 매일 고민을 했죠." 사계절, 한 바퀴를 돌아 1년이 지났지만 '루틴' '비슷한 패턴'은 생기지 않았다. 시장이 바뀌고, 경쟁자가 나타나고, 회사 안팎으로 다양한 이슈가 생겼다. 스타트업은 그런 곳이었다.
늘 스타트를 해야 하는 곳.
그래서 좋고, 그래서 고민한다
브랜드 마케터로도 일한 적 있는 그는 회사의 성장을 함께 하면서 '브랜드'에 더욱 관심을 가졌다. 그는 제품 안에 이미 존재하는 가치를 발견하는 작업을 브랜딩이라고 설명했다.
브랜드 가치는 사람들이 얼마나 아는가(인지도·know)→사람들이 좋아하는가(선호도·like)→사람들이 사랑하는가(충성도·love) 순으로 변한다.
현재 직방이라는 서비스는 '충성고객이 얼마나 늘어나는지, 그들과 함께 회사와 브랜드가 성장하는지'를 고민하는 시기라고 한다. 단지 '아는 서비스'인지 혹은 '사랑받는 서비스'인지의 경계. 이런 고민을 담아 '나의 브랜드는 어떤가요? 어떤 브랜드와 함께 하고 있나요?'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이 실장이 말하는 일 잘하는 사람의 특징 다섯 가지는 무엇일까.
1. 미래를 계획하고 행동하자
꿈이 뭐예요?
원래 하고 싶었던 건 뭐였어요?
2014년 말 직방에 합류하기 전에 받은 질문이다. 한창 취업 준비를 하던 20대에나 들었던 물음을 12년 만에 다시 받았다. 더듬더듬 답했다. "미술 좋아하고, 음악도 좋아해요. 갤러리를 운영하고 싶었어요. 무대가 필요한 연주자를 위한 공간도 겸하면서요." 다소 황당한 이야기였지만 안성우 직방 대표는 경청했다.
"그 꿈 이루려고 지금 뭐하고 있나요?"
"음...(머뭇머뭇)"
"계획을 세워야죠."
그때 깨달았다. '하고 싶은 건 많았지만 제대로 계획을 세운 적은 없구나.' 물론 아무 것도 안 한 건 아니었다. 전시장을 다니고 직접 그림도 그리고 악기도 배웠다. 브랜드 매니지먼트 수업을 듣기도 하고, 문화콘텐츠를 전공으로 대학원도 다녔다. 하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행동했는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었다.
한 직장에서 8년을 보냈다. 성실하고 무난하게 주어진 일을 잘 하는 사람이었다. 순간 순간, 그 때 그때 잘한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장기적 계획을 세우고 목표 달성을 위해 구체적인 일을 해본 적은 없었다.
회사는 당연히 미래를 계획해야 한다. 하지만 개인이 미래를 계획하는 게 회사에도 중요할까? 그냥 일만 잘하면 되는 것 아닐까?
"직장 동료 중에 '여기서 일 배워서 창업하는 게 꿈'이라고 말하는 분이 있어요. 창업할거니까 회사 생활 대충하겠다는 게 아니라, 창업하기 위해 우리 회사를 택한거예요. 조직이 크고 시스템이 잘 갖춰진 곳은 내가 맡은 일만 해야 하잖아요.
직방은 한창 성장하는 조직이라 구성원 간에 빠르게 소통하고 성장을 몸소 느낄 수 있어요. 회사가 성장할 때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팀장이나 대표는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떻게 푸는지 굉장히 가까이에서 배울 수 있다는 게 좋았대요. 빨리 경험 쌓고 배워서 본인 것으로 만들어야 하니까 업무 성과도 덩달아 좋을 수 밖에요.”
자신의 계획이 분명한 사람은 회사 안에서 업무를 훌륭하게 달성하고, 다른 사람에게 좋은 에너지를 전파한다. 그래서 직방은 '자신의 분야에서 리더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서로에게 배우고 즐기며 성장하는 곳'을 지향한다.
2. 회사는 동아리가 아닌 프로팀이다
'회사'에 대해 말할 때 강조하는 게 있다. "우리는 가족이나 동아리가 아니다. 우리는 남이다." 가족 같이 따뜻한 분위기를 강조해도 모자랄텐데 '우리는 남'이라니. 너무 매몰찬 것일까?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다.
우리는 퍼포먼스(성과)를 내야 한다.
우리는 미션을 달성하기 위한 프로팀이다.
프로팀이 되기 위한 세 가지 축이 있다. '훌륭한 인재', '신뢰', '좋은 결과'.
"제가 들어왔을 때만 해도 훌륭한 인재를 뽑기 위해 직방이란 어떤 서비스인지 한참 설명해야 했어요. 그렇게 어렵게 모신 분들과 서로 믿고 일하면서 좋은 결과를 냈죠. 이제는 훌륭한 인재가 먼저 직방에 문을 두드리기도 하는 선순환 구조가 됐어요."
프로팀이 되기 위한 전제조건이 있다. 명확한 역할과 책임(R&R·Role and Responsibilities)이 필요하다. 어떤 성과에 대해 "우리팀이 다 같이 했어"라고 말하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 같은 팀이라고 해도 개인의 역할이 전체에서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어떤 성취를 했는지 알아야 한다.
각 구성원의 역할도 있다. 하나의 목표를 위해 함께 일하지만 자신이 맡은 일을 잘 수행하고, 약속한 건 책임감 있게 하고, 열심히 한다는 것이다. 대신 결과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열심히 노력하는것도 중요하지만 잘 해내는 게 더 중요하다. 우린 프로니까.
3. 서로를 신뢰해야만 한다
우리는 비전을 성취하기 위해 유능하고 열정적인 동료들과 함께 역할을 나눠 롤플레이 합니다. (직방 타운홀 미팅 중)
롤플레이 게임에서 중요한 건 '신뢰'다. 플레이어끼리 서로 역할을 믿고, 각자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 성과를 얻을 수 있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훌륭한 인재가 모였다면 서로 신뢰해야 한다. 스타트업은 작은 조직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성장하고 구성원이 늘어나면서 '신뢰'라는 문제에 필수적으로 맞닥뜨린다. 예를 들어 작은 조직에서 한꺼번에 많은 사람을 채용할 때, 업무능력은 훌륭하지만 조직과 융화하지 못하는 구성원이 있을 때 등 다양하다.
우선 "내 동료는 훌륭한 인재"라고 생각해야 한다. "내 동료는 '회사가 잘 되게 하고 스스로 성장하겠다'는 목표가 나와 같아." "내가 신뢰하는 팀장 또는 임원이 면접을 봤을 테니 훌륭한 인재를 뽑았을 거야." 나의 역할에 충실하되 다른 사람도 역할을 잘 해내리라고 믿어야 한다.
때로는 회사와 잘 맞지 않는 사람이 채용됐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서 입사하자마자 성과를 내는가 하면, 6개월 후부터 급속도로 성장하는 사람도 있다. 일단 우리 조직에 들어왔다면 최소한 우리와 같은 목표를 갖고 자질을 갖춘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함께 일하면서 쌓아가는 신뢰도 있다. "저 팀은 나와 업무는 다르지만 전문적으로 일을 했을 거야." "서로 약속했으니 각자 무슨 일이 있어도 해낼 거야." "잘 안되는 게 있다면 서로 돕자." R&R에 따라 필요한 경험이나 기술, 업무 형태 뿐 아니라 각자의 개성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럼에도 신뢰가 생기지 않을 수 있다. 한쪽의 잘못이 아니다. 누군가 일처리가 못 미덥거나 실수가 잦을 수 있다. 약속한 일을 못 해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어선 안된다. 부딪치지 않으려고 덮어둬서는 안된다. 신뢰를 회복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의심하고 못 미더운 마음을 쌓아두면 안된다. 대화를 시도해보거나 다른 사람을 통해 의견을 들어볼 수도 있다. 이를 잘 조율하는 중간관리자의 역할 역시 중요하다.
4. B급 성과 100개 말고 A급 성과 1개를 내자
기자로 일할 때는 뭐든 열심히 했다. 작은 기사도 부지런히 취재해서 썼다. 기사 개수가 모자라다고 선배가 걱정하면 저장해 놨던 아이템을 슬쩍 들이밀기도 했다. 칭찬도 받았다.
넌 정말 뭐든지 열심히 하고 많이 하는 구나.
기자만 그런 게 아니다. 실무를 담당하다보면 뭐라도 많이 하고 싶다. 안하는 것 보다는 뭐든 해보는 게 나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직방 문화는 달랐다. 앞으로 추진할 업무를 보고하면 "이 일 진짜 잘할 수 있냐"고 물었다. "안하는 것보다는 하는 게 조금이라도 낫죠"라고 답하면 "그런 일은 하지 말라"는 말이 돌아왔다.
우리가 원하는 건 A급 결과를 내는 것이다.
제대로, 꼭 해야하는 일 한 가지를 무조건 A급으로 하자.
일의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는 의미였다. 처음에는 어색했다. 'A급이든 B급이든 많이 하면 무조건 좋은 거 아닌가' 생각한 적도 있다.
달리 말하면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단 뜻이었다. 일의 우선 순위를 정해 꼭 해야하는 일을 제대로 해내는 게 중요하다.
5. 작은 걸 지키자
스타트업하면 흔히 자유로운 문화를 먼저 떠올린다. 자칫 규율이 없고 각자 마음대로 하는 것이 창의성이나 자율성이라고 잘못 생각할 수 있다. 직방에서는 '하기로 한 건 하자'라는 말을 강조한다. 이와 관련된 재밌는 일화가 있다.
"사내에 캡슐 커피 기계를 들여놨어요. 한 번 내려 먹을 때마다 200원씩 요금을 내기로 했어요. 오히려 단가가 더 비싼 음료수는 무료인데요, 커피는 기호식품이라 먹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의견을 반영한거죠.
일주일 단위로 사용한 캡슐 개수와 모인 돈을 비교했어요. 첫주에는 모인 돈이 더 적었어요. 한 1000원 정도? 다들 너무 상심한거예요. 그 다음주에는 모인 돈이 오히려 많았어요. 동료들이 실망할 거란 생각에 거스름돈을 안 가져 간 사람이 있었어요.
하지만 돈이 더 많이 모인 것도 정답은 아니잖아요. 그렇게 몇 주가 지나고 드디어 사용한 캡슐 숫자와 모인 돈이 딱 맞아 떨어졌어요. 다들 기뻐서 환호성을 지르고는 한바탕 웃었어요."
직방에서 가장 지켜야 하는 것은 '마감 시간'이다. 되는데까지 열심히 하겠다가 아니라, 각자 맡은 일을 정해진 기한안에 완료하는 게 중요하다.
대신 성과와 직접 관련 있는 건 무게감이 있으니 지켜야 하고, 상대적으로 성과와 거리가 먼 규칙은 지키지 않아도 봐주자는 말은 안 통한다.
큐리지널과의 대화를 마무리하면서 이언주 실장이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해보자고 했다.
□오늘, 나의 브랜드 가치는 오르는 중입니까?
□나의 가치를 올리는 데 다른 구성원들이 도움이 됩니까?
□나는 그런 동료인가요?
□회사는 도움을 줍니까?
□결국 우리의 목표는 같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