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슈독
이번 주말 동안 '슈독(Shoe Dog)*'이란 책을 읽었다. 나이키 창업자 필 나이트의 자서전이다. 1962년 창업부터 주식공모를 하기 직전인 1980년까지 내용을 다뤘다. 무려 두께가 3cm짜리였는데 정말 후루룩 읽었다.
찌질하게 시작해 좌충우돌하던, 나이키가 언제 망할 지 자신도 모르던 시절 이야기가 담겼다. 거래하던 신발공급업체에게 배신 당했고, 은행에서 대출을 해주지 않았고, 정부로부터 거액의 세금을 추징당할 뻔 했다.
*슈독: 신발의 제조, 판매, 구매, 디자인에 전념하는 사람. 신발에 일생을 건 사람들은 자기와 비슷한 사람을 두고 즐거운 마음으로 이 표현을 쓴다.
"나는 잘못된 판단을 수백 아니 수천 번 했다...심각하게 유감스러운 것도 많다...그렇지만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없기 때문에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대신, 나의 경험과 인생 역정을 많은 젊은이들과 나누고 싶다. 그리하여 그들이 시련을 극복할 수 있도록 격려와 위로가 되고 싶고, 때로는 충고가 되고 싶다. 젊은 기업가뿐만 아니라 운동 선수, 화가, 소설가에게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꿈과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이 용기를 잃지 않도록 돕는 것은 보람찬 일이다. 나는 그들에게 하던 일을 멈추고 앞으로 40년 동안 시간을 어떻게 쓰고 싶은지, 누구하고 함께 쓰고 싶은지 깊이 고민해보라는 말을 하고 싶다.
20대 중반의 젊은이들에게는 직업에 안주하지 말 것을 권하고 싶다. 천직을 찾아라.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더라도, 계속 찾도록 노력하라. 천직을 찾으면 힘든 일도 참을 수 있고, 낙심하더라도 금방 떨쳐버릴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성공에 이르면 지금까지 느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필 나이트, 나이키 창업자)
1. 여기까지만 읽으면 "웬 꼰대가 꼰대스러운 말을 하네"라고 꺼버릴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고 꼭꼭 부탁하고 싶다. 저 이야기는 단순히 "나 자수성가했어. 너네도 나처럼 열심히 해서 성공하도록 해"라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단한 사람의 성공을 미화해 평범한 사람을 초라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아니다.
2. 퍼블리(publy) 박소령 대표님이 추천해준 책이다. 사실 책을 추천받아 산 건 2017년 10월이다. 그동안 두께에 압도돼 나도 모르게 책장 한구석에 밀쳐뒀다. 그런데 막상 다 읽고나니 주책맞게 눈물이 났다. 책은 동틀 녘이라는 프롤로그로 시작해 해질 녘이라는 에필로그로 끝나는데, 해질 녘에는 등장인물의 현재 이야기가 나온다. 책을 읽으면서 나이키의 탄생부터 고생과 성장을 함께했기에 그들에게 감정이입이 됐나보다. 특히 첫째 아들 매튜 이야기에서는 한참동안 눈물이 핑 돌았다.
3. 오늘부터 내가 읽은 책을 부지런히 소개하려고 한다. 왜 이런 마음을 먹었는지는 이 글 맨 아래에 써뒀다.
슈독에서 뽑아낸 에센스 다섯 가지
나는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잘 못 읽는다. 3분의 1쯤 읽은 후 마지막 챕터로 간다. 결론을 먼저 알아야 편하게 읽는 스타일이다. 소설, 에세이, 실용서 등 모든 분야 책을 다 그렇게 읽는다.
슈독은 그런 의미에서 걱정이 없었다. 나이키는 지금 결국 너무 잘됐다는 걸 아니까. 근데 책 내용이 그렇질 않았다. 대부분이 회사에 어떤 위기가 왔고, 그걸 어떻게 이겨냈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그래서 의외로 쫄깃했다. "혹시 이 사람이 배신했을까?" "저 사람은 지금 나이키에서 어떤 일을 할까?" "그 사람하고는 계속 일 했을까?"…. 궁금한 게 많았다. 결국 마지막 장인 '해질 녘'을 먼저 보고야 말았다. 그때부터 콧날이 시큰하더니 마지막까지 뭉클했다.
누군가에게는 경영서적일테고, 누군가에게는 성공신화일테고, 누군가에게는 인생이야기였을 거다. 나에게는 애니메이션 UP을 떠올리게 하는 인생 이야기였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해야했고, 일을 함께 해나갈 사람을 만났고, 아내를 만났고, 아이들이 태어났고, 하고 싶은 일이 어려움에 (자주) 처했고, 어떻게든 이겨냈고, 때로는 실수를 했고, 누군가는 먼저 세상을 떠났고, 함께 꿈을 꿨던 누군가와는 안 좋게 헤어졌다.
나이키와 관련한 사람들을 떠올릴 때 가장 생각나는 사람은 그의 큰 아들 매튜라고 했다. 언젠가부터 그와 매튜는 삐걱댔다. 매튜는 스포츠가 싫다고 했다. 이런 저런 방황 끝에 남미에서 자선 활동을 하며 안정을 되찾았다. 그 즈음 다이빙을 하다가 바다에서 죽었다. 매튜가 어린 시절 마당에 있던 작은 수영장을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그의 아내가 "매튜는 물에 빠져 죽지는 않을 거야"라고 한 말이 뭔가 모르게 슬펐다.
그가 말한 잘못된 판단, 후회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동시에 어떤 사람과 어떤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싶은지 생각하라는 말이 이해됐다. 또한 천직을 찾으란 말도. 그래서 책에 나오는 경영에 관한 내용보다는 모든 사람이 인생에서 겪는 일에 초점을 맞췄다.
미친 사람들이 역사를 만들어간다
그는 육상선수였다. 고향인 오레곤대학에서 선수로 활동했다. 선수로 대성할 수준은 아니었기에 경영대학원에 간다. 하지만 그는 스포츠와 함께 살아가고 싶었다. 승자와 패자가 가려지기 직전의 숨 가쁜 순간에 느끼는 명료함이 자신의 삶이자 일상이 되길 바랐다.
당시 독일이 지배하던 카메라 시장에서 일본산이 성장했다. 이에 힘입어 그는 "일본이 러닝화 시장을 장악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에게 돈을 빌려 일본으로 갔다.
아식스 전신인 오니쓰카의 신발 '타이거'를 미국에 수입하기로 했다. 회사 같은 건 없었지만 얼떨결에 '블루리본'이라는 회사명을 지어냈다. 1962년이었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이 단순히 제품을 파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달리기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사람들이 매일 밖에 나가 달리면 세상은 더 좋은 곳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회사에는 괴짜가 필요하다
"바우어만 드라이브를 타고 델 헤이즈 웨이가 나올 때까지 계속 가시면 됩니다." 나이키 본사(캠퍼스)를 찾는 방문객에게 경비원들이 항상 알려주는 방향이다. 이 길 이름은 창업 초기 함깨 한 이들의 이름을 땄다.
그는 블루리본 시절부터 함께 한 사람들을 '고용부적격자'로 불렀다. 물론 좋은 뜻이다.
육상코치였던 바우어만은 괴팍했다. 대신 육상에 미쳤다. 폐타이어와 각종 화학제품을 섞어 러닝화에 적합한 소재를 찾았다. 이 과정에서 화학약품에 노출돼 항상 극심한 두통에 시달렸고 시력이 떨어졌다. 그럼에도 머릿 속에는 운동화 생각 밖에 없었다. 물론 그는 미국 내에서 유명 인사였기에 인적 자산이기도 했다.
첫 번째 정규직원이었던 존슨은 열정적인만큼 집요했다. 일주일에 7일을 일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고객 카드를 만들어 고객과 수시로 연락했다. 미국 대륙을 오가며 근무지와 업무가 바뀌어도 결국 잘 적응하고 해냈다.
필이 회계사무실에 다닐 때 만난 델버트 헤이즈는 너무 뚱뚱하고 온갖 공포증이 있어 회계사무실의 파트너가 되지 못하고 나이키에 합류했다. 당연히 나이키가 지금처럼 성장하기 전이다.
바우어만 코치 소개로 들어온 우델은 촉망받던 육상스타였지만 사고로 하반신을 움직일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의지를 꺾지 않았고 나이키를 성장시켰다. 나중에 포틀랜드 강과 공항을 관리하는 기관의 수장이 됐다.
모든 것이 처음부터 의미를 갖는 건 아니다
나이키라는 이름은 1971년 탄생했다. 나이키라는 회사도 그때 만들어졌다. 그 전까지 회사 이름은 블루리본이었다. 일본 운동화 생산업체인 오니쓰카와 안좋게 결별하면서 자체 브랜드를 만들었다. 원래 필 나이트가 생각한 이름은 '디멘션식스'. 뱅골, 팔콘 같은 이름도 나왔다.
하지만 존슨이 꿈에 나왔다며 '나이키'라는 이름을 제시했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승리의 여신 이름이기도 했다. 필은 창업 직전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을 떠올리며 수락했지만 마음에 안 들어했다.
'스우시'라 불리는 로고도 얼떨결에 만들어졌다. 포틀랜드대학에서 잠시 회계학을 가르칠 때 알게 된 캐롤린 데이비스에게 맡겼다. 로고를 만든 가격은 시급 2달러로 17시간만에 만들었기에 35달러였다. 지금으로 치면 200달러(20만원 남짓)수준. 로고가 완성됐을 때 필의 반응은 역시 뜨끈미지근했다.
"지금은 마음에 안 들지만 점점 괜찮아지겠지, 뭐."
나이키가 성공하고 난 후 필은 감사의 표시로 캐롤린에게 나이키 주식 500주를 줬다.
※아르테즈 이름의 유래를 다르게 아시는 분이 있어 소개합니다. 코르테즈의 원래 이름은 아즈텍이었는데요, 1968년 멕시코시티에서 열리는 올림픽을 축원하는 의미였죠. 당시 아디다스에서도 멕시코올림픽을 겨냥해 '아즈테카 골드'라는 제품을 이미 내놓은 상태였습니다. 이를테면 표절 논란이 생긴 거죠.
이 책에서는 《"아즈텍을 가지고 시비 거는 녀석 이름이 뭐라고 했지?(바우어만 코치)" "코르테즈라고 하던에요.(필 나이트)" 그러자 바우어만은 투덜거리듯 말했다. "좋아. 이번 제품은 코르테즈라고 하지." (슈독 p.164)》
그동안에는 고대 문명 아즈텍을 침략해 무너뜨린 코르테즈 장군의 이름을 땄다는 설이 많았네요. 저는 책을 기본으로 정보를 남겼습니다.
현실적 대안도 필요하다
필 나이트는 회계사 자격증이 있었다. 창업을 하려고 할 때 아버지 친구가 해 준 "살면서 직업을 3번은 바꿀텐데 회계를 알면 도움이 될 것"이라는 조언 덕분이다.
그는 창업하고도 7년간 월급을 받지 못했다. 투잡을 뛸 수 밖에 없었다. 회계사무실에 취업을 해 받은 월급을 블루리본(나이키 전신)에 고스란히 투자했다. 당시 나이키는 현금 보유를 줄이고 매출 대부분을 재투자했는데, 당시 기준에 따라 현금 보유량이 적으면 대출이 안됐기 때문이다.
그는 기업가는 때로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했다. 포기할 때를 알고 다른 것을 추구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신 포기가 중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기업가는 포기를 해서 안되는 게 아니라 중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대신 스스로에게 믿음을 가지라고 했다. 믿음은 다른 사람이 아닌 당신이 정의해야 한다는 말과 함께.
루틴을 가져라
그는 매일 밤 달리기를 하고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두 아들에게 옛날 이야기를 해줬다. 두 아들을 주인공으로 역사적 사실에 맞춰 구성한 이야기였다. 그만의 루틴이었다.
이 루틴을 만든 건 그가 최악의 시기에 있을 때였다. 현금 보유량이 적어 은행 대출을 못 받던 시절. 일본 회사에 운동화 대금을 지불하기도 빠듯했고, 은행에서 지급 정지를 하는 바람에 수표가 부도나 직원 월급을 못 주던 때였다.
하고 싶은 일을 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했던 때이기도 하다. 바로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날하는 것. 심지어 육상 라이벌에게까지 찾아갔다. 고등학교 시절 자신을 2등으로 만들었던 육상 선수 그렐. 그가 할머니에게 물려받은 유산으로 사업을 해 큰 돈을 벌었단 이야길 들었다. 그 길로 그를 찾아가 투자를 요청했다.
당연히 거절당했다. 대신 그렐은 달리기 시합을 해 자신을 앞서면 초당 1달러씩 준다는 내기를 했다. 필은 사업을 하면서 살이 10kg 이상 쪄 있었다. 그는 여름 내내 달리기 연습을 했고, 그렐리와의 시합에서 36달러를 받아냈다. 비록 현금 투자를 받진 못했지만 "그래, 계속 가는 거야. 중단해선 안돼"라는 믿음을 스스로 갖게 됐다.
버트페이스나 유명인 마케팅 등 나이키가 가진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하지도 않았건만 벌써 엄청 길어졌다. 사실 내가 진짜 재밌다고 느낀 건 이 인물들이 나이키에서 큰 돈을 번 후 어떤 일을 하느냐였다. 필 나이트가 잠깐 소개한 내용을 보니 모두 자기답게 살고 있는 듯 했다.
슈독을 읽고나서 갑자기 달리기가 하고 싶어졌다. 러닝화를 사러 나이키매장에 가기까지 했다. 그.러.나. 함께 간 지인이 소비를 절제할 수 있도록 해줬다.
달리기의 가장 좋은 점은 몸만 있다면 어떤 비용도 들지 않는다는 거예요.
맞다 . 집에 와서 신발장을 보니 언제 샀는지, 왜 샀는지도 기억 안나는 운동화가 몇 켤레나 있었다. 그 중 나이키도 2켤레나 있었다. 심지어 세탁 후 비닐을 뜯지도 않았더라. 날씨가 조금 시원해지는 9월부터 달리기를 해보려고 한다. 나이키 러닝앱도 깔았다.
나는 왜 책을 소개하기로 했을까. 나는 대단한 독서가는 아니다. 책을 사는 것도 때에 따라 들쭉 날쭉이고, 사도 대부분 읽지 않고 꽂아만 두는 '츤도쿠'에 가깝다. 베스트셀러나 매대에 먼저 눈이 가니 깊이가 있는 편도 아니다.
책은 주로 인터넷교보문고나 바로드림으로 사기 때문에 교보문고 앱만 보면 내 책 사는 습관을 분석할 수 있다. 요즘 나는 한달에 1.3권 정도 책을 산다고 한다. 레벨 1~10 중 8에 속한다고한다. 직전 분기에는 레벨 10이었는데!!
사실 나는 책을 주로 우울할 때 산다. 뭔가 생각이 많아지고, 그걸 정리해야 하는데 누군가에게 말하기 어려울 때. 책과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랄까. 이때는 한 번에 대여섯권씩 사는데, 그 중 다 읽는 책은 몇 권 안된다. 직전 분기에 레벨 10이었던 까닭은 직전 분기에 내 마음이 어지러웠다는 의미다.
슈독을 살 때도 마찬가지였다. 회사를 옮긴 지 일주일도 안됐을 때였는데 모든 게 내 맘 같지 않아서 힘들었다. 내 생각이 맞는 건지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었다. 구구절절함을 다 털어놓으면서도 해결책을 해줄 사람이 떠오르지 않았다.
구구절절함을 들어준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친해야하고, 조언을 해주려면 내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했다. 대부분 이 두 가지를 모두 만족하는 사람을 찾기는 어려운 것 같다. 친구들은 구구절절함은 위로해줄 수 있지만 해결책을 주긴 어렵다.
그래서 내 구구절절함을 들어주긴 어렵지만 해결책은 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저런 걸 물어봤다. 구구절절함을 빼니 말이 겉돌았다. 그럼에도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을 들었고, 책까지 추천받았다. 그때 다른 분들께 추천받은 책은 앞으로 소개할 계획이다.
그 책을 읽고서도 여전히 나는 해결책을 찾아다니지만,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바꾼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 추천받은 책 말고도 여러 경로로 알게 된 좋은 책을 많이 많이 소개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