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로 행복하고 싶지만 당장 뭘해야할 지 모르겠다면
이제 이틀 남은 2018년 8월. 이유는 모르겠지만 '브런치 슬럼프 기간'이었다. 루틴을 만들기 위해 하루에 하나씩 브런치에 글을 올리자고 다짐한 게 7월 중순. 늦어도 3일 이내에는 올렸는데 8월 중반부터 텀이 점점 길어졌다. 뭘 써야 하나, 써서 뭐하나, 밤에 쓸데없는 짓 말고 잠이나 자자…. 별 생각이 다 들었다.
한편으로는 천직이란 뭔지 고민했다. 나이키 창업자 필나이트가 쓴 '슈독'을 읽고 나서 그 증세(!)는 더 심해졌다. 이 말 때문에!!
"20대 중반의 젊은이들에게는 직업에 안주하지 말 것을 권하고 싶다. 천직을 찾아라.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더라도, 계속 찾도록 노력하라. 천직을 찾으면 힘든 일도 참을 수 있고, 낙심하더라도 금방 떨쳐버릴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성공에 이르면 지금까지 느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제 20대도 아닌데, 아직도 천직을 못 찾았다면 이번 생은 틀린 걸까? 그때 에어비앤비 밋업에서 전제우님을 만났다. 2014년부터 에어비앤비에서 집을 공유한, 평점 무지 좋은 수퍼호스트. (*그나저나 8월은 나에게 에어비앤비의 달이기도 했다. 밋업, 미팅 등 직간접적으로 알게 된 에어비앤비라는 회사의 매력은 다음에 소개할 예정이다.)
제우님은 천직에 대한 내 생각을 확 바꿔줬다. 그리고 아직 늦지 않았다는 것도 깨우쳐줬다. 행복해지고 싶지만 당장 뭘해야할 지 모르겠다면 제우님 이야기를 꼭꼭 읽었으면 좋겠다.
이상과 현실 사이 균형을 찾을 수 있게 한, 지금의 제우님(과 아내 박미영님)을 만든 다섯 가지 '시작'을 정리해봤다.
1.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준 회사
2. 월급 말고 캐시카우 '에어비앤비'
3. '준비'만이 살길이다, 퇴사
4. 별 일 없는 때론 별 일 있는 여행
5. N잡러를 위한 스마트한 일하기 방법
그리고 퇴사준비생을 위한 '현실적인 퇴사의 기술'도 콕 와닿았다. 미리 소개하자면 ① 회사에서 행복할 때 퇴사하라. ② 계산기를 두드리고, 또 두드려봐라. ③ 퇴사 전 월급이 아닌 캐시카우를 먼저 찾아라.
좀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에서! (늘 그렇듯이 매우 매우 길지만, 어떤 사람에게든 언제든 어떤 부분이든 닿길 바라는 마음에서 꽉꽉 채워 담았다.)
책을 쓴 작가, 에어비앤비 호스트, 여행칼럼 쓰는 여행가, 전시회도 열었던 사진 작가, 여행 관련 서비스를 만드는 스타트업 대표, 기업 대상 컨설턴트, 강연가. 직업 7개를 가진 전제우씨가 먼저 꺼낸 말.
'사짜(사기꾼의 은어)' 아닌가 싶으시죠?
웃음이 빵터졌습니다. 호칭을 정하기 어려워 "제우님"이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왜 이렇게 직업이 많으냐"고 묻자 '천직' 이야기부터 꺼냅니다. 제우님이 생각하는 천직의 조건은 네 가지입니다.
① 좋아하는 일: 좋아하지 않으면 오래할 수 없다.
② 잘하는 일: 잘하지 않으면 취미에 불과하다.
③ 돈을 벌 수 있는 일: 자본주의 세상에서 일을 끝까지 해나가려면 벌이가 돼야 한다.
④ 미래에 가치 있는 일: 기술 발전 등으로 조만간 사라질 직업이라면 천직이 될 수 없다.
과연 모든 조건을 만족시키는 직업이 있을까요? 제우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천직이란 상상 속에만 있는 유니콘 같아요.
그래서 제우님은 생각의 틀을 바꿨다고 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자. 남는 시간에 잘하는 일도 하자. 돈이 될만한 일도 하자. 지금 당장 돈 못 벌어도 미래에 가치 있는 일도 찾아서 해보자."
각 조건에 맞는 직업 여러 개가 모여서 제 천직이 된거예요.
제우님의 천직이 돼준 '직업'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1.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준 회사
제우님은 2011년 SK텔레콤에 입사했다. 컴퓨터프로그래밍 전공을 살려 네트워크 엔지니어링 업무를 담당했다. 당시 SK텔레콤은 몇년간 '대학생이 가고 싶은 회사' 1위였다. 꼭 입사하고 싶었던 회사였고 꿈을 이뤘다. 그는 '회사를 사랑하는 직원'이었다.
주유소도 SK주유소만 갔고, 야구는 당연히 SK와이번스 팬이었죠.
신입사원 때는 '최우수 신입사원'에 선정됐다. 우수 직원상도 여러 차례 받았다. 열심히 일하고 성과를 내면 보상이 돌아오는 게 즐거웠다.
실무도 익혔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실제 산업에 구현하는 게 즐거웠다. 배울 점이 많은 동료들도 좋았다. 허용 범위 안에서 새로운 기술을 적용해보려고 노력했다. 덕분에 실무에 필요한 엔지니어링 능력을 쌓았다. IT기반 스타트업을 창업하고, 프리랜서 개발자로 활동하는 기반이 됐다.
하지만 대기업 특성상 새로운 방법보다는 기존 방식을 활용할 때가 훨씬 많았다. 실무는 협력 업체가 담당하고, 이를 관리하는 업무 비중이 점차 커졌다. 일은 점점 손에 익었지만 "회사 내에서 무엇이 되고 싶다"라는 목표를 찾지 못했다. 회사를 다니다보니 오히려 전문성을 잃어가는 느낌이었다.
'월급에 익숙해지면 조금씩 수동적으로 변하고 게을러지겠지' '실무는 뒷전이고 보고서만 그럴 듯하게 꾸미게 되지 않을까?' 같은 고민이 생겼다.
종종 동기 카톡방에는 "인사발령 언제 나는지 아는 사람?" "조직개편한다는데 아는 거 있냐?" "혹시 구조조정하냐?" 같은 이야기가 올라왔다.
'직장이 안정적인 곳이 맞을까?' '10년쯤 뒤에 구조조정되지 않을까?' '그때 이 회사에만 맞는 인간이면 어떡하지?'….
고민은 계속 이어졌다. 점점 "이대로 (내 인생이) 망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 박미영님과 플랜B를 준비하기로 했다. SK텔레콤 입사 동기이자 UI디자이너인 아내와는 가치관이 잘 맞았다. 두 사람은 회사일을 열심히 하면서 개인 시간을 활용해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기로 했다.
2. 월급 말고 캐시카우 '에어비앤비'
신혼이었던 2014년, 아내와 지인 몇 명이 주말마다 모였다. 앱 만들기가 유행할 때였다. 자료를 찾다가 에어비앤비를 알게 됐다. 앱 디자인이 예쁜데다가 사용성까지 좋았다. 실행력 좋은 아내가 "에어비앤비를 해보자"고 했다. 당연히 여행갈 때 게스트로 써보자는 얘긴지 알았다.
아니. 에어비앤비 게스트 말고 호스트(주인).
에어비앤비 앱을 제대로 사용해보려면 "게스트 메뉴 뿐 아니라 호스트 메뉴까지 다 봐야 한다"는 논리였다. 망설이던 제우님은 아내에게 "딱 한 번만 해보는 것"이라는 약속을 받아내고서야 동의했다.
악기가 놓여있던 작은 방에 거실 소파를 넣었다.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어 에어비앤비 사이트에 올렸다. 이틀 만에 예약이 들어왔다. 중국인 판과 리였다.
부부와 게스트들은 공통점이 있었다. 음악을 좋아하고 고양이를 키웠다. 판이 머무는 3박 4일간 매일 모여 이야기하고 밥을 함께 먹었다. 마지막날은 부부의 친구들까지 불러 시간을 보냈다.
낯선 사람끼리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건 영화 속에서만 가능한 일인줄 알았다. "내 집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에어비앤비는 반복되는 일상에 작은 행복이 됐다. 남는 방을 꾸며 에어비앤비에 올렸다. 돈을 벌려고 시작한 일이 아니었지만 운영하다보니 돈도 생겼다. 월급의 20~30% 수준이었지만 용기가 생겼다.
최소한 굶어죽지는 않겠구나.
"회사 다니면서 회사 바깥에서 월급이 아닌 수익을 내는 일을 찾아보는 걸 권해요. 꼭 큰 돈이 아니어도 돼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적은 수익이라도 내면 자신감이 생겨요. 회사를 그만두더라도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자신감. 그때부터 회사에 쏟아붓던 모든 열정을 조금씩 다른 일로 옮기고 수익을 늘려가는 게 중요해요. 내가 목표로 생각한 금액 이상을 벌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길 때 퇴사하면 돼요."
3. '준비'만이 살길이다, 퇴사
2015년. 퇴사를 결정했다. 회사 안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를 찾지 못했지만, 회사 일은 여전히 재밌고 행복했다. 연차가 쌓이면서 업무 능력도 높아졌고 평가도 좋았다.
그래서 오히려 회사를 그만두기로 했다. “회사 너무 싫어”라는 단순한 감정으로 내린 결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회사가 싫어서가 아니라 "우리만의 삶의 방식을 갖기 위한 준비"로서의 퇴사였다.
퇴사도 아내가 먼저 제안했다. 두 사람은 차근 차근 다음 스텝을 준비했다. 대출 갚을 계획을 세우고, 퇴사 이후 필요한 돈을 엑셀로 정리했다. 이에 맞춰 퇴사 시기도 조율했다. 빚을 갚고 경비를 모으기 위해 한달 40만원으로 버티기도 했다.
마지막은 부모님을 설득하는 일이었다. 부모님은 두 사람의 결정을 반대했다. 자녀들이 순탄하게 안정적으로 살기를 바라셨다. 경제적으로 독립한 성인이었지만 부모님에게 걱정을 끼칠 순 없었다.
"저희 두 사람 모두 부모님의 자랑거리였어요. 여유롭지 않은 가정에서 자랐고, 소위 스카이(서울대, 고려대, 연세대를 일컫는 은어) 출신도 아닌데 이름만 대면 알만한 회사에 다닌다는 걸 뿌듯해하셨어요."
회사에서 배운 '설득의 기술'을 활용했다. 바로 기획안과 프리젠테이션(PT). 양가 부모님을 모시고 국내외 경제 흐름, 각 회사 직근별 근속 기간 비교 등으로 고용 불안 상황을 알렸다. 퇴사 후 계획과 실패에 대한 대처방법까지 담았다.
나중에 알고보니 PT에 수긍하셨다기 보다 '어차피 반대해도 퇴사할 것 같아 기쁜 마음으로 새출발하라고 찬성했다'고 하시더라고요.
퇴사를 후회한 적은 없을까? "지금도 가끔 후회해요. 그럴 때는 예전 회사 동기를 만나 시간을 보내요.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보면 '회사 관두길 잘했구나' 생각해요. 제가 원하는 삶의 방식은 여전히 회사에서 얻기 어렵겠더라고요."
대신 모든 사람에게 퇴사를 권하는 건 아니다. 회사에서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찾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스스로에게 어떤 말을 해줄까?
걱정하지 말고 지금 하고싶은 대로 해.
<퇴사를 생각한다면 이것만은 반드시!>
① 회사에서 행복할 때 퇴사하라: 회사 일이 힘들 때면 제대로 된 판단을 하기 어렵다.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회사가 싫다'라는 마음 때문에 결정하면 후회할 수 있다.
② 계산기를 두드리고, 또 두드려봐라: 퇴사는 낭만이 아닌 현실이다. 건강보험, 국민연금은 어떻게 납부할지, 대출금은 어떻게 갚을 지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③ 캐시카우를 먼저 찾아라: 퇴사 전 회사 바깥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로 10만원이라도 유의미한 수익을 내는 일을 찾길 권한다.
4. 별 일 없는 때론 별 일 있는 여행
퇴사를 하니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그동안 조금씩 해오던 일을 본격적으로 했다. 결과적으로 회사 다닐 때보다 더 바빠졌다. 당시 여행 앱을 만들고 있었기에 세계여행을 준비했다. '개발자 부부가 직접 세계일주 하면서 만드는 여행앱'이라는 콘셉트를 잡았다.
그렇게 여행가라는 직업이 생겼다. 미국, 중남미, 유럽, 아시아 등 전 세계 117개국을 돌아다녔다. 부부의 집에 게스트로 왔던 외국인의 에어비앤비에 게스트로 방문한 적도 있다. 본업인 여행앱 개발에도 하루 3~4시간씩 썼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삶의 방식을 찾으려면 꼭 퇴사를 하고, 세계여행을 해야할까? 여행을 하면서 잃은 것과 얻은 것을 무엇일까?
잃은 것도 얻은 것도 없어요.
부부는 여행에 큰 의미를 두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한다. 여행이 길어지면 결국 일상이 되기 때문이다. 여행을 하는 혹은 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이 보낸 1년만큼, 두 사람이 여행으로 보낸 1년은 때론 특별하고 때론 평범했다고 한다.
"여행이 끝나고 사진을 모아 작은 전시회를 열었어요. 제목은 '별일 없는 여행'. 여행 관련 책을 내자는 제의도 꽤 들어왔는데 다 거절했어요. '퇴사하고 세계여행'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특별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대신 여행은 또 다른 직업으로 이어졌다. 여행 사진 전시회 덕분에 사진 관련 일이 들어왔다. 직접 에어비앤비에 묵어보면서 에어비앤비 운영을 더 잘하게 됐다. 여러 주제로 강연할 때 풍부한 사례가 되기도 한다.
5. N잡러를 위한 스마트한 일하기 방법
두 사람은 이런 경험을 모아 올해 초 '시작은 항상 옳다'라는 책을 냈다. 여행이나 에어비앤비, 퇴사 같은 특정 에피소드를 주제로 삼지 않았다. 살면서 부딪치는 선택 앞에 어떤 생각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담아냈다. 매 순간을 기록해둔 블로그와 소셜미디어(SNS)가 큰 도움이 됐다.
이쯤되면 굳이 직업이 몇개라고 한정 지을 수 있을까 싶다. 투잡, 쓰리잡이라는 특정한 숫자 대신 'N잡러'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천직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제우님이 생각하는 천직의 조건은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 돈이 되는 일, 미래에 가치 있는 일이다. 지금 하는 일은 각각 어떤 의미일까?
"일에 따라서 다양한 의미가 있어요. 글을 쓰는 작가는 제가 좋아하는 일이에요. 앱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은 미래에 가치 있는 일이고요. 다른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따와서 관리·컨설팅하는 일은 당장 돈을 버는 일이죠. 사진을 찍는 건 제가 잘하는 일인거 같고, 강연은 제가 좋아하면서 잘하는 일인 거 같아요. 에어비앤비는 제가 좋아하면서 돈도 되는 일이네요."
N잡러는 시간 관리를 어떻게 할까? 출퇴근 시간이 정해진 회사와 달리 주도적으로 시간을 쓸 수 있지만 자칫 게을러질 수도 있지 않을까?
"다양한 일을 하지만 시간은 여유로운 편입니다. 전날 잠드는 시간에 따라 기상 시간은 달라져요. 일어나자마자 커피를 마시면서 그날 해야할 일을 쭉 정리합니다. 할 일만 쓰는 게 아니라 순서도 정하죠."
지난해 딸이 태어나면서 '육아'도 병행한다. 덕분에 가치관도, 일의 우선순위도 바뀌었다. 관심사도 확장됐다.
"지금은 임산부와 예비 아빠를 위한 앱을 만들고 있어요.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인디 뮤지션을 위한 뮤직비디오 제작 프로젝트도 준비하고요. 조금 더 길게 보면 유기되는 반려동물을 위한 프로젝트도 준비하고 있어요. 몇 가지나 실현될 진 모르지만 조금씩, 천천히 준비하고 있어요.
여기까지 듣고 나니 부부가 함께 쓴 책의 부제가 떠올랐다.
망설이지 말 것, 완벽을 기다리지 말 것, 행복을 미루지 말 것
※부부에게 월급이 아닌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준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에어비앤비 시작하기 전 알아야 할 10가지'를 읽어보세요.
※에어비앤비 등록 등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면 제제미미의 블로그를 방문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