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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들의 도시를 위한 교향곡 (M.T.앤더슨)

by 카마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과 소련 사이의 대혈투 중 레닌그라드 전투를 중심에 두고 쇼스타코비치의 삶과 그의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독일과 소련 두 국가의 치열한 전투 중에 2,700만의 소비에트 시민이 죽었고,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총 사망자 5,000만 명 중에 절반이 넘는 수치다. 소비에트 인구의 13.6퍼센트가 죽어나간 끔찍한 전쟁이다.

쇼스타코비치의 삶을 소련의 잔혹한 스탈린 정권 치하, 제2차 세계 대전과 떨어뜨려 논할 수 없기에, 레닌의 공산혁명과 그 뒤를 이은 스탈린의 잔인무도한 정권, 독일과의 지옥과도 같은 전투와 레닌그라드 포위전에 대해 장황하면서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한 음악가에 대한 책이라기보다는 러시아의 근현대사를 다룬 역사책 같았다.

러시아의 위대한 작곡가로 불리는 ‘쇼스타코비치’는 불안정한 소련의 정치적 상황에 의해 죽음과 삶의 갈림길에서 위태위태하게 이어지는 삶을 살아갔다. 한 발자국만 잘못 내딛어도 바로 죽음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는 힘겨운 삶이었다. 스탈린의 대공포 시대에 천만에 가까운 사람들이 끌려가고, 추방되고, 죽임을 당했다. 독일과의 전쟁 이전에 이미 쑥대밭이 나 있는 상태였다. 어제의 친구가 인민의 적으로 몰려, 죽임을 당하고, 인민의 영웅이 하루아침에 대역죄인으로 몰려 살해당했다. 스탈린의 권력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의심, 탐욕이 낳은 끔찍한 공포 시대였다.

독일의 침공 후 이어진 레닌그라드 전투는 더욱 심각한 상황이었다. 독일군의 레닌그라드 봉쇄로 인해, 100만 명 이상의 민간인이 포격과 기아로 인해 사망했다. 봉쇄된 레닌그라드의 식량이 떨어지면서, 레닌그라드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고, 쥐를 포함한 온갖 들짐승, 애완동물을 잡아먹고, 사람의 시체를 먹고, 다른 이들을 죽여서 잡아먹는 일까지 벌어졌다. 극한의 생존 위협 속에 생존을 위한 끔찍한 본능적 삶이 이어졌다.

하지만, 괴수 같은 독재자와 전쟁으로 인한 지옥과도 같은 참상과 잔인, 잔혹한 삶의 모습이 드러났지만, 인간이라는 존재를 다른 동물 종과는 다른 종으로 특별하게 만드는 면은 분명 지니고 있었다. 비인간적인 삶 속에서도 인간임을 드러내는 예술적, 본질적 가치에 대한 지향이 있었다. 쇼스타코비치는 전쟁의 참상과 끔찍한 정권 속에서 음악을 통해 삶을 지탱해 나갔다. 그의 위대한 음악은 다수의 대중이 지옥과도 같은 참상 속에서 일어날 수 있게 해 주었고, 그들이 동물이 아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존재하고 버틸 수 있게 해 주었다.

한 사람의 연약하지만 예리하고 지적인 존재가 공포를 넘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만큼의 큰 영향을 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고결한 정신이 담긴 음악 때문이었다. 물론 그의 음악도 정권에 의해 이용당했고, 전 국가적 혹은 생존의 위기 상황에서 대중의 단합을 위한 장치로 사용되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삶의 희망을 잃어버린 존재들에게 한 줄기 의지의 빛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믿고 싶다. 인간이 아닌 듯 보이는 잔혹한 짐승 같은 무리와 살인 기계들이 세상을 피투성이 도살장으로 만들어 버리는 세상에도, 인간을 고결한 존재로 만드는 그 무엇인가가 존재한다고. 현실 너머 아름다움과 숭고한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 삶의 진정한 가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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