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물고기(1997)

초록물고기의 비릿하고 묵직한 맛

by 카마

조직의 보스인 배태곤(문성근)의 여자 미애(심혜진)와 막동(한석규)의 로맨스. 영화는 두 남녀의 단순 치정과 사랑을 그리고 있지 않다. 둘의 감정적 교류는 있었지만, 깊은 관계로 묘사되지는 않는다. 둘의 로맨스보다는, 가족의 행복이라는 소박한 꿈을 품고 조직에 몸담게 되고 결국엔 처참한 배신을 당하는 막동이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람과 사랑을 이용하는 보스는 생존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내던지고, 어떤 자세에서건 칼을 꽂을 수 있는 냉혈한이다. 그에 비하면 막동은 순수하고 인간적이다. 조직에 몸담고 있지만,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행동 너머에는 세속에 물들지 않은 순수성과 순애보를 지니고 있다. 미애는 삶의 세파에 찌들어 비관, 허무, 비애를 호흡처럼 내뿜고, 내면 깊숙한 곳에는 아직 인간적 영혼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비관적 현실에서 벗어나려 기차를 타려 여러 번 시도하지만, 결국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되돌아오는 반쯤 길들여진 앵무새와 같은 존재이다.

인물 셋의 관계는 캐릭터로 예측할 수 있듯이, 막동은 배태곤에 이용당하고 죽임을 당한 채 버려지고, 그러한 장면을 목격한 미애는 절규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는 막동이 꿈꾸는 막동이 배제된 행복한 가족의 모습이 그려지고, 상황을 인지한 미애가 절규하며 끝이 난다.

마지막 장면이 작위적으로 보여서 조금 아쉽기도 하지만, 영화의 구성으로는 안정적이고 완결된 구조이고, 주제의식도 뚜렷하다. 90년대 한국 영화 특유의 원초적이고 거친 에너지가 영화 속에 가득 차 있다. 단순한 안타까움과 비애를 넘어서는 가슴 깊은 곳을 감싸는 음울하고 저릿한 애수가 가슴 한구석을 찌른다. 2000년대로 이어지는 한국형 누아르의 원형격으로 평가받는 영화다. 거칠지만 묵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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