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 없이 다가온

by 까마리

지독한 무기력의 시간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한 주를 회고하는 모임이 있었는데 그곳에 발을 들이지 못하게 된 것도 거의 2달, 이 되었을 시점. 나는 2달 전, 마지막 회고모임에서 했던 나의 말을 기억한다.


‘이번 주는.. 해야 할 일을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요. 으레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아무것도요. 이런 때도 있는 거지 싶지만.. 정말 별로였어요. 제가 원하는 다음 주 저의 모습은.. 일상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해야 하는 일들이 있고, 제가 하고 싶어서 벌린 일들이 있잖아요. 평소처럼 그 일들을 하는 사이클로 돌아가고 싶어요. 돌아가야 해요. 대단한 걸 바라지도 않고, 그전에 제가 가지고 있던 사이클.. 일상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기대합니다.’

하지만 나는 그다음 주에도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함께 하는 멤버들은 다들 '이런 걸 못했어요- 저런 게 아쉬운 한 주였어요-' 했지만 그래도 조금씩 무언가를 해내는 사람들이었다. 그 누구도 서로에게 왜 그거밖에 하지 않았냐고 다그치지도, 푸시하지도 않는, 오히려 ‘그럴 수도 있다’며 위로하고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맹목적인 응원과 위로도, 하루이틀이었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 틈에서 ‘이번 주도 아무것도 못했어요’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회피했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버렸다.

뭔가를 가지고 나타나고 싶은데. 그럼 뭔가를 하면 되는데.

그럴 수 없는 때가 있다는 걸 오랜만에 절실히 느낀 시간.




2025년. 이번 여름은 지독하게 더웠고, 혼자 있는 집에서 ‘에어컨을 켜는게 사치가 아닐까’를 고민했다.

누구도 내게 타박하지 않았음에도 꾸역꾸역 더위에 맞섰다.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럴 거면 진작 켜고 좀 빠릿빠릿 움직이지. 밥 시간은 참 빨리도 찾아왔다. 꾸역꾸역 먹을 것을 찾아 해먹어야 했다.


하루가 길게 느껴지면서도 대단히 짧았다.

‘이거저거 해야 하는데’ 메아리는 멈추지 않았고 회피하려는 듯 잠만 계속 왔다.

깨어있는 시간엔 핸드폰만 하루 종일 봤다.

보고 싶어서 사둔 책이 손을 뻗으면 바로 있었음에도 못본 척 했다.

릴스나 숏츠를 인생 제일 많이 봤던 시기였던 거 같다.


나는 2,3일에 한 번씩 어떤 식으로라도 기록을 하는 편이었다. 뭔가 내 안에서 생겨나는 생각, 잡념.. 그리고 기록하고 싶은 재밌는 이야기들을 잊기 전에 기록하는 것이 나의 낙이자 자부심이었다.

하지만 그 일상이 깨졌다.

생산하는 삶을 멈추니 할 수 있는 게 소비하는 삶 뿐인 것 같았다.

내가 원하던 것들을 찾아보며 피와 살이 되었던 경험들과 다르게

그냥 핸드폰이 보여주는 대로 그냥 그렇게 생각 없이 봤다.


볼 때는 다 재밌고 유익한 거 같았는데 밤이 되면 머리 속에 남는 건 없었고

하려했던 것들을 하나도 못하고 또 하루가 가버렸다는 사실에 스스로가 지독하게 한심했다.

그냥 뭐든 하면 된다는 걸 알면서도, 조금이라도 하면 이런 더러운 기분이 아님을 알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괴로웠다.


반짝거리는 것을 찾고, 배우고 싶은 사람을 찾으면 기뻐하던 나는 어디로 가버렸나.

예전엔 그런 사람을 보면 자극이 되고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에

심장이 두근거렸었는데 무엇을 봐도 감흥이 없었다.

내가 동경하고, 닮고 싶어하던 사람들의 메세지와 말들이 가슴 깊이 새겨지고 삶의 동력이 되는 게 아닌

‘아~ 네~ 그쵸 저도 알죠~ 대단하시네요.. 네.. 저 빼고 다들 그렇게 성실하게 사십시요..’ 했다.

사람이 삐뚤어지려면 한도 끝도 없는 것이었다.

좋은 것도 받아들이는 데에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었다.


쓸데없는 유희거리만 찾아다니는 내가 너무 싫어서 그런 종류의 앱들도 다 삭제해 버렸다.

그럼 할 걸 하겠지? 제발 뭐라도 해. 뭐라도 하던 그 때로 돌아가. 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근데 또 다른 유희거리를 찾아다니고 있더라..? 인간은 정말 지독하다.

그 노력으로 그냥 조금이라도 시작하면 되거늘.




우울감이 있을 수록 밖으로 나가야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밖으로 나갈만한 에너지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익어버릴 듯한 태양이 작렬하던 6, 7월.

밥을 찾아먹고 나면 몸을 이끌고 산책이라도 다녀오고자 밖을 나서기도 했다.


무의 상태에서 보니 그냥 세상의 모든 것들이 대단해보인달까.

하루가 멀다하고 넘쳐나는 컨텐츠도,

걱정없어보이는 업계 상위권의 탑들도 '그 다음..!! 그 다음..!!' 을 외치며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

치열하다. 우르르 뛰어나가는 마라톤의 사람들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기분.

어서 뛰어 그들에게 합류할 자신도, 의욕도 없다.

난 이미 땀이 한 바가지다. 숨을 고르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 틈에 끼어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 달리던 걸 멈추니 또 다른 것들이 보인다.


매일 가던 산책길의 다리가 보수되고 새로운 길이 깔리는 것을 보는 것도

그걸 사람이 하나하나, 나의 아버지 정도되는 나이가 지긋한 분들이,

피부가 까맣게 탄 인부들이 땡볕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아침에 일어났을 때 창문으로 보이는 출근하는 사람들도,

엄마오리를 부지런히 따라가는 새끼오리들도, 참새들도,

물고기가 잘 지나다니는 길목에서 기다리는 수완 좋은 황새도,

자전거길을 위태롭게 건너는 지렁이도, 그러다 말라 비틀어져버린 지렁이에 가득 붙어있는 개미들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건, 나 뿐이군.

이렇게 젊고 사지가 멀쩡한데.

한심하다. 한심해.


그렇게 낮이면 낮인대로, 밤이면 밤인대로 괴로웠다.


지독하게 무기력한 나날.

그다음 주도, 그다음 주도 나는 한 게 없었다.


해야지 해야 하는데 해야 한다고 라는 말만 머릿속에 가득한 채로 한 주, 한 주는 빠르게 지나갔다.

그렇게 나는 3달 동안, 모임에 참석하지 못했다.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했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