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지는 건 내 쪽이었고

무기력의 원인

by 까마리

기운을 잃어가던 시기는 퇴사한 지 딱, 1년이 되어가던 시점이었다.

퇴사 1년.. 그 시간이면 뭔가, 대단한 걸 해낼 줄 알았던 것 같다.


지난 1년을 돌아봤을 때,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었고

나름의 성과라면 성과들도 없진 않았었는데

뭐랄까. 나는 좀 더 기대했던 것 같다.


10년이 넘는 회사생활, 틈틈이 했던 사이드 작업들, 그 사이에 있던 크고 작은 성취감,

사람들, 동료들, 친구들과 값진 경험들..


내가 해낸 것들, 내가 가진 것들이 내게는 너무나 가치 있고

나의 자랑이자 자부심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믿고 있었는데


나의 업은 10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축소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고 뒤바뀌기도 하면서 세상은 너무나도 빨리 바뀌었다.

퇴사한 이상, 회사를 벗겨냈을 때 남는 나란 사람의 경쟁력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직장을 다니고 사이드로 작업을 할 때야 시간을 쪼개 뭔가를 했던 것이, 그것만으로도 ‘부지런하다, 특별하다, 대단하다’ 소리를 듣기도 했겠지만 그 자체가 ‘업’이 되는 것은 완전 다른 이야기였다.


어디에나 부지런하고 잘하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이 틈바구니에서 내가 특별한 것이 무엇이 있지?


타성에 젖은 이직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

제2의 직업을 찾고 싶다,

앞으로 살아갈 날을 가치 있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

취지는 좋았지. 시도도 좋았지. 근데 딱 거기까지였던 것 같았다.


처음으로 회사커리어에 따른 포트폴리오, 소개서가 아닌 나 자신에 대해 정리해 봤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 정리해보고 나니 뭐랄까..

그래 뭐, 나름 이것저것 열심히 한 거 같긴 한데.. 뭔가.. 애매~하네~.


내가 가진 것들이 너무나도 작게 느껴졌다.


이 모든 게 나 혼자에게만 의미 있었던 게 아닐까.

특별할 것 없는 나의 것들에 나 혼자 너무 의미부여를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회사를 다닐 때는 ‘회사가 아니었다면 지금 이 시간에 내 거에 좀 더 집중했을 텐데..!’ 라며 탓했었지.

이건 이래서, 저건 저래서, 바빠서, 피곤해서, 시간이 없어서, 집중할 시간이 없어서..

상황에 대한 탓만 가득했었는데, 그때는 ‘이 상황만 개선되면 훨씬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자. 그렇게 네가 원하던 시간이 왔다. 아무것도 널 방해하지 않지. 함 해봐라.’ 하는 순간을 정말로 마주하게 되니까 처음엔 설레고, 기뻤다. 기분 좋은 바쁨이 이어졌고, 행복했고, 아- 이렇게 살고 싶다, 했지.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힘에 부치고, 능력에 부치고, 쉽게 풀리는 건 없다 보니

오롯이 혼자 모든 걸 감당하게 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음을 여실히 느끼며

비대해졌던 나의 자아가 조금씩 부서지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나는, 가능성에 취해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뭔가 될 거였다면 이미 뭔가 낌새가 있었어야 하는 거 아니었을까?

문인 줄 알고 계속 두드렸던게 어쩌면 벽은 아니었을까?

언젠가는, 언젠가는.. 하며 행복회로만 돌리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아, 내 능력이 이만큼이군.’

‘내 그릇이 이 정도였군.’


‘너.. 별 거 아니네?’

‘뭐.. 생각했던 거만큼, 대단치 않네?’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나에 대한 적나라한 모습을 마주한 기분.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느끼게 되어,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나를 마주하게 된 것이

나는 그것이 슬펐던 것 같다.


좋게 말하면 자기 객관화.. 일까나.

필요한 경험이고 언젠가는 마주했어야 할 시간.

알지만, 알고 있지만,

이게 나중에는 약이 되고 내게는 도움이 된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은,

그렇다고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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