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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희 Aug 03. 2020

스무살에 은퇴한 축구선수,
잘 살고 있습니다.(1)

프롤로그

  ‘죄송합니다. 운동부입니다.’ 10여 년 전 방송되었던 공영방송사의 다큐멘터리 제목입니다. 운동부이기 때문에 학생선수들이 학교에서 날마다 해야 했던 저 말은 변명과 합리화의 수단으로 학생선수와 교사에게 사용되었고 지금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학생선수였던 저의 학교생활이 그랬습니다. ‘죄송합니다. 운동부입니다.’는 말로 가득 차 제 입장에서는 배우는 것을, 저를 가르쳤던 교사의 입장에서는 가르치는 것을 포기한 시간이었습니다.     

  학교 건물 뒤 축구부 합숙소에서 먹고 자며 생활했기에 어떤 학생보다 학교 가까이 아니 학교에서 중, 고등학교 6년을 보냈지만 20살 운동을 그만두었을 때 남은 것은 학력도, 지식도, 스승도 아닌 ‘선출(선수 출신)’이라는 이름표뿐이었습니다. 한 해에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짧게는 수년, 길게는 10년 이상 묵묵히 걸어왔던 학생선수의 길에서 내려오게 될까요. 학교에 속해있었지만 학교 안의 작은 섬에 고립되었던 학생선수들이 그 섬을 떠나 사회에 나오는 것을 어떻게 준비하고 계획하고 있을지, 그리고 우리 사회는 그들이 다시 사회화될 수 있는 시스템을 얼마나 갖추고 있는지 운동을 그만두고 15년이 지났지만 크게 변한 것은 없어 보입니다.

     

  2005년 3월, 7년 동안 했던 축구선수 생활을 그만두기로 결정했습니다. 정말 간절히 운동을 했었지만 목표로 했던 대학 진학 실패와 ‘축구선수로 먹고살 수 있을까?’‘와 같은 현실적인 고민들이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빠른 결심을 하게 했습니다. 그렇게 누구나 새로운 시작을 꿈꾸며 설레어할 20살, 꿈을 이루지 못하고 인생의 첫 번째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선수 출신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새롭게 시작해야 했습니다. 15년이 흘러 지금은 몸은 학교에 있지만 학교 밖에 있는, 배움의 공간에 있지만 배움이 없는 학생들에게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이고 싶은 교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운동 일지를 썼던 것이 좋은 습관이 되어 20살 이후 일기를 쓰고 있고 가끔씩 들추어 봅니다. 그렇게 지난 일기를 돌아볼 때마다 저처럼 실패한 운동선수 경력을 가지고 사회 또는 학교에 다시 적응해야 하는 선수 출신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 고민했습니다. 선택할 필요도, 고민도 필요 없는 한 길만 걸어가다 갑자기 두 갈래, 세 갈래 길 위에 놓인 선택의 문제 앞에서 방황하고 있을 ‘선수 출신’ 후배들에게 저의 삶과 경험을 나누는 방법이 글쓰기라 생각하여 조금씩 글을 쓰고 모아놓은 것을 다음 브런치를 통해 나눠보고자 합니다.

       

  이 글들은 다른 이들이 멋진 미래를 꿈꾸며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는 20살, 실패한 축구선수로 세상에 나와 고민해야 했고 부딪혀야 했던 저의 지난 삶의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실패한 축구선수에서 경기대학교 전 학기 성적장학생에서, 고려대학교 체육교육과 학생으로의 편입, 모두가 선망하는 대기업 공채에 합격 그리고 공립 중등학교 체육교사까지. 일반학생들보다 늦은 출발이었지만 운동을 하며 익힌 끈기와 성실함으로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중시하는 평균적인 인생의 속도에 견주었을 때 결코 늦지 않고 오히려 더 빠른 속도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2018년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었을 때 갓 100일이 지난 첫째는 두 돌이 되었고, 올해 초 태어난 둘 째까지 두 아들과 함께 평범한 4인 가정을 일구어 천천히 나아가고 있습니다.     

  ‘세월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이라고 합니다.’ 일반학생이었다면 그저 평범했을 제 인생과 제가 보내온 시간들이 ‘선수 출신’이라는 이름표가 붙자 특별해졌습니다. 특별하지만 평범한, 평범하지만 남들과 달랐던 제 삶의 이야기가 익숙했던 운동장을, 코트를, 트랙을 떠나 세상이라는 곳에서 어떻게 땀 흘려야 할지도 몰라 방황하는 선수 출신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안녕하세요. 선수 출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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