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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희 Aug 03. 2020

스무 살에 은퇴한 축구선수,
잘 살고 있습니다.(2)

시작, 1998년 프랑스 월드컵(운동을 시작하자 공부와 담을 쌓은 아이)

  1998년, 전 세계인의 축제 프랑스 월드컵은 우리나라에는 선제골, 백 태클 퇴장, 0:5, 부상투혼으로 기억되며 아쉽게 마무리되었습니다. 6학년이었던 저는 축구를 정말 좋아했습니다. 정식 축구부는 아니었지만 새마을금고 이사였던 조기축구회 선생님의 지도 아래 조금은 체계적으로 운동을 했습니다. 고향인 부천시에서는 매년 아마추어 축구대회가 열렸습니다. 프랑스 월드컵이 열리던 그 해 대회에서 3년 연속 우승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왜 축구부에 가기로 결정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담임 선생님과 친구들 그리고 부모님까지 모두가 반대했던 기억은 나는데 무엇이 인천으로 전학까지 가서 축구를 시작하게 했는지. 그때부터 도전정신이 충만했나 봅니다. 축구를 제대로 배워본 적은 없던 저는 그렇게 인천 만수중학교 축구부에 스카우트되어 초등학교 6학년 10월에 인천으로 전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너무 신기하게도 전학 가기 전에는 공부도 열심히 하고, 수업시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를 했었는데 축구부가 되기 위해 전학을 간 후에는 전혀 수업에 참여하지를 않았습니다. 전 학교에서는 반에서 수위를 다투며 공부했던 학생이 운동을 제대로 시작하자마자 공부와는 담을 쌓아버린 것입니다. 왜 그랬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공부가 싫어 축구가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기에 어린 나이에 축구선수가 되기 위해 전학까지 갔으니 ‘운동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글을 쓰면서 '그때 왜 나 운동시켰냐'라고 여쭤보니 ‘그냥 네가 하고 싶다고 해서 시켰다.’고 하십니다. 2차 성징이 빨리 와서 또래보다 빠르고 힘이 좋았던 자신감 때문인지, 98년 프랑스 월드컵의 영향 때문인지. 그렇게 축구선수가 되기로 결심을 하고 평범함과는 작별을 하게 되었습니다. 평범함을 유지했다면 지금 저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요? 지금도 친하게 지내는 초등학교 친구들을 만나면 이렇게 허풍을 떱니다. '내가 축구하면서 쓴 돈이랑 노력을 공부에 기울였으면 서울대 갔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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