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너게임 이후에 달라진 코칭의 패러다임이 대중의 시각에서는 어떻게 보일까
이너게임이 현대 코칭의 시작점이라고 배웠다. 그 책에서 현대 코칭의 핵심 개념인 잠재력, 내면의 답, 파트너
십이 정리되었다. 그 이전의 코칭하는 방식이 방식이 지시와 교정 중심이었다면, 이너게임은 수행을 방해하는 '내면의 간섭'을 줄이는 관점으로 전환했다. 이너게임에서 유추해 볼 수 있듯이 스포츠 장면에서 적용되던 코칭은 존 휘트모어를 거치며 비즈니스 코칭으로 확장되었고, 코칭은 '수평적 파트너십'이라는 개념을 중심에 두게 된다. 코칭을 조금이라도 배워본 사람이라면 이 흐름을 알고 있다.
그런데 코칭을 접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코칭은 여전히 낯설거나, 스포츠 코치를 떠올리게 하는 단어다.
처음 코칭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그것이 방향을 잡아주고, 정성스럽게 훈련을 설계하며, 지식을 전수하기보다는 스킬을 단련하는 영역일 것이라 생각했다. 코칭에 대한 인식을 묻는 인터뷰에서도 비슷한 반응을 자주 접했다.
"밀착해서 지도해 주는 거 아닌가요?"
"훈련이랑 뭐가 달라요?"
"멘토링 느낌이고, 똑똑하게 잘 알려주는 거 아닌가요?"
이쯤 되면 단순한 오해라기보다 언어에 스며 있는 감각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스포츠 현장에서 '코칭'이라는 말이 먼저 자리 잡았기 때문일 것이다. 스포츠 코치는 실제로 지시하고, 교정하고, 반복을 요구한다. 이 고전적인 기능이 단어에 그대로 묻어 있다. 이너게임 이후 패러다임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그 철학을 접하지 못한 대중에게 코칭은 여전히 또 다른 훈련 방식 정도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여기에 한국 사회의 문화적 맥락이 더해진다.
관계 속에서 정의되는 자아
위계를 통해 분배되는 책임
조언이 신뢰의 표현으로 기능하는 문화
이 환경에서 "정답을 주지 않는 코칭"은 자율이라기보다 방임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점점 코칭의 어색함을 역량의 문제가 아니라 로컬라이제이션의 문제로 이해하게 되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자. 영미권 코칭 질문은 대체로 이런 느낌인 것 같다
What do you want?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What would success look like? (성공은 어떤 모습일까?)
What's stopping you? (무엇이 당신을 막고 있는가?)
주체는 개인이다. 욕구는 비교적 선명하게 언어화된다. 자율이 전제이다. 하지만 한국적 맥락에서 같은 질문을 던지면 대화는 다르게 흐르는 듯하다.
"제가 원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어요."
"이게 조직에 어떤 영향을 줄지 고민돼요."
"제 선택이 무책임해 보이지 않을까요?"
같은 질문인데, 답은 전혀 다른 곳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나는 서구 코칭 질문과 K코칭 질문의 결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구분 서구 코칭 질문 K코칭 질문 차이의 핵심
출발점 "당신이 원하는 것은?" "이 이야기를 꺼내게 된 맥락은?" 욕구 vs 맥락
정서접근 "이 상황에서 긍정적인 점은?" "이 감정이 남아 있는 이유는?" 재해석 vs 이해
책임질문 "당신의 선택은?" "조정 가능한 범위는" 결단 vs 현실
강점질문 "당신의 강점은?" "지키고 싶은 기준은?" 특성 vs 가치
행동질문 "다음 액션은?" "무리 없는 한 걸음은?" 실행 vs 지속
긍정성 초반부터 명시 후반부에 자연스럽게 압박 vs 생성
문화적합성 개인주의 전제 관계 및 맥락 전제 이식 vs 번역
이 표는 우열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단지 전제가 다르면 질문의 결도 달라진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여기 정리한 질문이 자연스럽거나 한국적이라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더 잘 와닿을 것이라 장담하는 것은 아니다. 서구 코칭이 욕구에서 출발한다면, K코칭은 맥락에서 출발하는 것이라 생각했고, 서구 코칭이 결단을 묻는다면, K코칭은 현실적 조정 범위를 묻는 것이 좀 더 우리의 현실에 일반적으로 적합하지 않나는 문제제기이다. 차이는 기술이 아니라 문화적 전제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점점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겪는 어색함은 코칭이 틀렸기 때문이 아니라, 그 철학이 자라난 토양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형식만 가져왔기 때문은 아닐까. 마치 번역된 원서로 공부하면서 문장은 읽히지만 맥락은 와닿지 않는 경험처럼...
번역을 더 잘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코칭의 철학이 어떤 배경에서 나왔는지 이해한다면, 우리는 이미 가지고 있는 언어와 관계의 감각으로 더 자연스럽고 편안한 K코칭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너게임이 말한 것은 지시를 없애라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과도한 간섭을 줄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우리의 과제는 질문과 개념을 그대로 수입하는 것이 아니라, 자율과 책임, 개입과 배려의 균형을 우리의 맥락 안에서 다시 설계하는 일일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서구 코칭:
"당신의 다음 액션은 무엇인가요?"
K코칭 버전:
"지금 상황에서 무리 없이 시도해 볼 수 있는 한 걸음은 무엇일까요?"
첫 번째 질문은 명쾌하지만 때로는 압박으로 느껴질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 질문을 더 선호하지만 압박을 받거나 평소에 고민을 많이 하지 않았다면 답변을 어려워하는 경우도 많았다. 두 번째 질문은 조금 길지만 관계와 맥락 속에서 약간 더 자연스럽게 작동하는 것 같다. 물론 강력한 라포가 형성되어 있다면 어떤 얘기가 다를 수 있겠지만, 어쨌든 질문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맥락과 대화의 상황에 맞게 질문하기 위한 원리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는 말이었다.
코칭의 언어가 어색하게 느껴지진 않았나요?
코치들이 이상한 질문을 하는 것 같이 느껴지거나, 코치로서 질문을 이상하게 하는 것 같은 때는 언제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