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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종 Aug 14. 2023

뭘 먹고살아야 할까요?

어떤 음식을 먹느냐가 참 중요하다는 생각은 나이가 들고 몸이 안 좋아지면서 갖게 되었다. 젊고 건강할 때는 뭘 먹어도 크게 지장이 없었고 바로 그 결과가 나타나지 않아 잘 몰랐다. 그런데 몸이 약해지고 나이가 들고부터는 한 며칠 풀어져서 술이나 과자, 자극적 음식과 외식을 많이 하면 바로 어깨통증이 생기고 소화가 되지 않는다. 눈도 더 침침해지는 거 같고 힘이 든다.


음식의 영향력이 바로바로 느껴진다. 맘대로 되는 일이 흔치 않은 짧은 인생 먹는 거라도 내 마음대로 하며 맛있는 거 먹고살고 싶은데 그것도 이젠 허락되지 않는다. 되도록 자연 그대로의 건강한 음식을 먹어야 아프지 않다. 한동안 다이어트 하느라 좋은 음식을 강박적으로 많이 먹어선지 사실 샐러드, 아보카도, 토마토, 건강하게 키운 양념 없는 고기는 꼴도 보기 싫다.


그렇게 법석을 떨며 좋은 음식을 먹었는데도 담석증으로 심하게 아팠고 결국 담낭절제 수술을 받게 되었다. 이제는 뭘 먹어야 할지 길을 잃고 말았다. 수술 후 기름진 음식 소화가 잘 되지 않아서 담백한 탄수화물 위주 식사를 한다. 소화 잘 되는 백미에 두부나 계란, 흰 살생선 위주의 심심한 식사를 했더니 속은 편해졌지만 기운이 너무 없고 단백질 부족인지 머리카락도 얇아지고 살이 빠져 얼굴은 늙어 보인다.


탄수화물 위주의 식사를 하니 속이 헛헛해서 자꾸 주전부리를 찾게 되고 빵과 과자가 당겼다. 소화는 잘 됐지만 기운이 없고 계속 배가 고픈듯해서 하루 종일 먹을 것 생각만 하게 되었다. 저탄고지 식단의 좋은 점이 단백질 음식과 좋은 지방을 포만감 있게 먹기 때문에 간식욕구가 사라지고 피부에 탄력이 생기고 머릿결도 좋아지고 풍성해진다. 그런 장점을 알기에 빨리 단백질이나 좋은 지방 섭취를 하고 싶은데 아직 소화기능이 떨어져서 받아들이질 못하고 몸은 점점 약해지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감기 몸살기가 있으니 식욕도 없어져 먹고 싶은 게 없다. 그동안 좋아했던 음식도 먹으면 또 배가 아프겠지, 몸이 아프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 식욕이 뚝 덜어진다. 소화 잘되는 심심하게 조리한 두부, 계란, 흰 살 생선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음식이라 먹고 싶지 않다. 누가 맛있게 잘 요리해서 주면 그래도 한 숟가락 먹겠는데 내 손으로 해서 먹어야 한다는 게 너무 힘들다.


친한 아이 친구 엄마도 이번에 코로나로 심하게 아팠는데도 본인이 움직이지 않으면 죽 한 숟가락도 입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이야기며 같이 하하하 웃었지만 나도 마찬가지라 씁쓸했다. 아플 때는 배달음식을 먹기 힘들다. 죽도 조미료 맛이 느껴지고 속이 울렁거리며 먹기 힘들었다. 그럴 때 깔끔하게 만든 집 밥을 먹어야 하는데 식구 누구도 만들어 주는 사람이 없다. 힘들어 죽겠는데도 스스로를 위해 음식을 만드는데 아파선지 맛도 제대로 나지 않는다. 많은 주부들이 나와 비슷할 거라고 생각한다. 남편이나 아이들은 맛있는 걸 시켜준다, 사다 준다고 하지만 아무도 음식을 만들어 줄 생각은 하지 않는다.


작년 수술 후에도 나를 위해 음식을 만들어준 건 친구였다. 친구가 직접 만든 반찬 몇 가지와 전복죽을 끓여서 갖다주었다. 정말 고마웠다. 친정엄마가 아프시고부터 누가 나를 위해 음식을 해다  건 처음이었다.


이번에 이렇게 몸이 안 좋아지고 나서 남편에게 은퇴 후에 꼭 요리학원을 다니던지 유튜브 보고 연습해서 몇 가지 요리를 할 줄 알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음식 만들기에 지쳤고 내가 이렇게 몸이 아플 때 만들 수 있는 기본 반찬 정도는 배웠으면 좋겠다고 했다. 알았다고는 하는데 앞으로 10년 후에나 가능한 일이다.


본인을 위해서도 남자든 여자든 기본적인 요리 몇 가지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도 어릴 때는 나와 요리하는 걸 놀이처럼 그렇게 좋아하더니 정말 필요한 지금은 손도 대지 않는다. 다들 바빠서라는 핑계를 대지만 요리는 그냥 엄마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게 문제다. 나이 든 자식들과 계속 살기 위해서는 그런 부분에 대해 진지하게 의논해 봐야겠다.


음식으로는 영 기운이 나지 않아 친구가 먹고 효과 봤다는 홈쇼핑 흑염소 즙도 먹어보고 레몬도 매일 하나씩 즙 내서 먹고 있는데 3주 전에 걸린 감기가 계속 재발하며 떨어질 기미가 안 보인다. 면역력이 많이 떨어진 걸까? 이렇게 한풀 꺾이며 늙어가는 걸까? 여러 생각이 든다.


오늘도 낫지 않는 인후통과 몸살기운으로 이비인후과에 갔다. 그 길로 한의원에 가서 한약이라도 지어먹을까 하다 카페에 와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요즘은 사람들을 만날 정도의 컨디션이 아니고 가끔 카페에 와서 1~2시간 글 쓰는 정도만으로도 에너지가 다 소진된다. 그래도 계속 집에만 있으면 아픈 거에 집중하게 돼서 더 힘들어 잠깐이라도 이렇게 나와 글을 쓰며 기분 전환을 한다.


남편도 원래는 '먹고 싶은 거 먹고살지 뭘 그렇게 먹는 거 가지고 오버하냐'며 영양제도 챙겨 먹지 않던 사람인데 요즘은 밀가루 음식을 몇 끼 연속으로 먹으면 속이 부대껴서 자꾸 깨고 컨디션이 안 좋다고 조심하기 시작했다. 남자들도 모여서 건강 이야기를 하는지 혈행 개선에 좋다는 유명한 영양제를 사 와서 먹고 있다.


나이 들수록 절제하며 살아야 한다니 그동안도 뭐 크게 막살지도 않은 거 같은데 참 혹독하다. 생전에 건강이 좋지 않으시던 아버님이 몸에 좋은 음식을 해다 드려도 안 드시고 컵라면을 드시는 걸 보고 왜 그러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몸이 안 좋을수록 좋은 음식 드시고 빨리 회복될 생각을 하셔야지 왜 저러시냐고 힘들게 해다 드린 사람 생각은 안 하시나 서운한 마음도 들고 그랬었다.


그런데 요즘 내가 소화도 잘 안되고 입맛이 없다 보니 얇은 면의 농심 육개장 사발면이 그나마 드실 만하셨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가는 면의 잔치국수가 그나마 입맛에 맞고 소화도 잘 돼서 자주 먹는다. 나이가 들어보니 이해되지 않던 부모님이 이해되는 순간들이 점점 늘어난다. 점점 뭘 먹어야 할지 고민이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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