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수종 Sep 05. 2023

아이가 군대에 갔다.

아이를 논산훈련소에 데려다주고 온 첫날이다. 텅 빈 아이의 방을 보니 마음이 이상했지만 그 마음을 오래 붙잡고 있지 않는다. 아이가 벗어놓은 실내복만 가지고 나와 세탁기에 넣었다. 이 방은 조금 나중에 정리해야겠다.


우리 아이는 카투사로 갈 예정이라 5주 훈련과 3주 미군훈련을 마치면 일주일에 한 번씩 집에 올 수 있다. 공인 영어시험에서 요구한 점수 이상을 받으면 추첨으로 뽑는데 운 좋게 당첨이 되었다. 대학합격만큼 기쁘고 감사했다. 그래서 사실 훈련소 보내기 전까지 크게 걱정도 없었고 마음이 힘들지도 않았다.  


오히려 아이가 군대에 가면 밥할 일도 줄고 자유로워 질 거라는 즐거운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막상 입대할 날이 다가오자 마음이 이상했다. 아이와 이렇게 오랜 시간 떨어져 본 적이 없었다. 더군다나 코로나로 몇 년을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대화도 많이 하고 친밀해져서 8주나 못 본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이 텅 비는 느낌이 들었다.


요즘엔 핸드폰도 일주일에 한번 사용할 수 있고 무리하게 훈련시키지도 않고 밥도 학교 급식보다 맛있다는 말을 들으니 조금 안심은 되었다. 어제도 날씨가 더워서였는지 부모님들과 같이 앉아서 입소식을 했다. 잠깐씩 일어나 애국가 제창도 하고 선서도 하긴 했지만 아이들을 뙤약볕아래 세워두는 일을 하지 않는걸 보고 군대가 많이 좋아 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학교 다닐 때는 저런 햇볕에서도 한참을 줄 세워두고 쓸데없는 교장선생님 훈화말씀에 기억도 나지 않는 내용들을 전달하느라 힘들게 했는데 이제는 군대에서도 의미 없게 고생시키지는 않겠구나 라는 느낌이 들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마지막으로 부모님께 인사드리고 운동장으로 내려오라는 말에 아이를 안아주고 이별을 하려니 그제야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래도 울지는 않았다. 그냥 아무 일 아닌 듯 웃는 얼굴로 보내주고 싶었다. 아이가 운동장에 내려가 서 있는데 그 얼굴에 긴장하고 겁날 때 보이는 표정이 보여 짠했다. 키가 180이 넘고 얼굴은 다 큰 청년이지만 그 속에 겁먹고 있는 아직은 여린 아기의 모습이 나에게는 보이는 거 같았다. 남편도 그랬는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주변에 우는 가족들, 큰 소리로 응원의 말들을 외치는 친구들 처음 경험해보는 입소식 광경이었다. 아이들이 다 내려오자 금방 떠나갔다. 입소식이 3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아이를 그렇게 놔두고 가라앉은 마음으로 오고 있는데 가족 톡방에 알람이 울렸다. ‘훈련소가 괜찮은 듯’ 이 짧은 말이 우리의 차가웠던 마음을 눈 녹듯 편안하게 만들어주었다. 남편과 딸도 그제야 웃으며 농담도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올라왔다.


아이 키우면서 겪게 되는 단계들이 얼마나 더 남아있을까? 남들이 그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볼 때와 내가 직접 겪는 거는 많이 달랐다. 지나고 나면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 할 수 있겠지만 그 과정 중에는 결코 담담하게 있긴 힘든 거 같다. 다 지나갔다고 아무렇지 않은 척 그 과정 중에 있는 사람을 유난 떤다고 예민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행히 내 주변에 그런 사람은 이제 없다. 오히려 그 과정을 겪었기에 얼마나 힘든지 다 안다고 걱정해주고 다독여주는 사람들이 많아서 마음이 편해지고 위로가 되었다.


주변에서 아이가 군대에 간다고 하면 힘들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내가 경험하기 전에는 그렇게 까지 공감해주고 위로해주지는 못했었다. 이번에 아이를 보내면서 먼저 군대에 보냈던 지인들과 친구들이 정말 많이 위로해 주고 아이에게 용돈과 선물을 주어서 놀랐다. 난 그러지 못했는데 미리 챙기지 못한 내가 부끄럽고 모두에게 감사하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 덕분에 또 배운다.


이제부터 내가 할 일을 계획해 본다. 아이가 군대 가기 전 어수선하고 심란해서 그런지 그 마음과 닮아있는 방을 우선 깨끗하게 정리해줘야겠다. 이 집에 이사 올 때 인테리어 하고 들어와 크게 정리할 일이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2년 가까이 살다보니 또 구석구석 쓸데없는 물건들이 쌓이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런 곳들 정리를 해야겠다.


베란다에 쌓인 잡동사니부터 정리하고 내다버리고 생활용품과 음식 쌓아 놓은 것을 재고파악해서 당분간 장을 보지 말고 그것들부터 요리해 먹어야겠다. 내 침대 옆에 쌓여가는 책들을 분류해서 팔 것을 팔고 아직 읽지 못한 것들부터 읽어야겠다. 그렇게 책을 사놓고 또 도서관에서 빌려와 읽을 책이 쌓여있다. 나도 아이 군대 보내고 차분하게 해야지 하며 미뤄놓은 일들이 많다. 그런 일들을 하면서 잘 지내다 보면 8주는 금방 지나가리라.











작가의 이전글 뭘 먹고살아야 할까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