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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종 Sep 07. 2023

집밥도 맛있을 수 있을까?

며칠 전 브런치에서 어떤 작가님의 글을 보니 배달 음식 먹고 남은 소스나 양념들, 쌈장, 다시다 같은 조미료도 적절히 활용해서 집밥을 맛있게 요리하는 과정을 써 놓으셨다. 요즘의 나와 비슷한 거 같아 반가운 마음에 구독을 눌렀다.


한때는 집밥은 첨가물 없이 건강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조미료는 절대 사용하지 않고 소스류도 되도록 직접 만들거나 성분 좋은 것을 신중하게 골랐다. 그러다 보니 내가 먹어봐도 그다지 맛있지는 않았다. 아무리 건강한 음식이라도 먹어야 효과가 있는데 맛이 없으니 남는 반찬이 많았고 식구들이 집에서는 밥을 새 모이만큼만 먹었다. 아이들이 외식이나 배달음식을 더 찾는 부작용이 생겼다.


남편이나 나처럼 이미 외식도 많이 해보고 이것저것 경험해 본 뒤에 그래도 집밥이 제일 좋고 몸도 편안하다는 걸 알기에는 이제 막 새롭고 맛있는 것이 넘쳐나는 세상에 나온 아이들에게 힘든 일일거다. 건강한기만 한 집밥을 강요하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서는  아이들의 식생활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었고 아이들도 엄마가 해준 것이 제일 맛있다고 했었는데 바깥음식의 맛을 알고부터는 더 이상 그런 말을 듣기 힘들어졌다.


내가 외출할 일이 있을 때 아직 등교 전인 아이들을 위해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볶음밥이나 유부초밥, 밥버거 등을 만들어놓고 나온다. 내 한 몸 외출 준비도 힘든데 땀을 뻘뻘 흘리며 한 끼라도 좋은 음식 먹으라고 만들어놓고 나오는데 아이가 음식을 시켜 먹을 때가 있다. 전날 술을 마셔서 해장으로 냉면이나 마라탕을 시켜 먹고 음식물 쓰레기가 잔뜩 나온 싱크대를 보면 정말 화가 난다. 이미 해 놓은 말라버린 볶음밥은 또 먹기엔 너무 맛이 없고 버리기는 아깝다.


혼자 먹겠다고 배달하면 배달비가 너무 아깝던데 아이들은 척척 잘도 시킨다. 내가 교육을 잘 못 시킨 건지 요즘 세태가 그런 건지 모르겠다. 그런 일로 나 혼자 갈등을 하다 이제는 포기했다. 아이가 술 마시고 온 다음날은 굳이 원하지도 않는 음식을 만들지 말 것, 원하는 아이 것만 만들 것, 아이들이 알바를 해서 돈을 버니 어디에 돈을 쓰던 참견하지 말것 등등 아직도 결심해야 할 들이 많다.


이런저런 일들로 생각을 바꾼 것이 집에서도 외식의 맛을 내보자는 거였다. 그 말은 곧 조미료를 사용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소스도 그냥 시판 소스 중 가장 인기 있고 맛있다는 걸로 사기로 했다. 당분이 적게 들어가고 좋은 기름을 쓰고 이제 그런 거 따지지 않고 그저 맛 하나만을 보고 고르기로 했다.


육개장이나 소고기 뭇국, 미역국 끓일 때 마시막에 다시다를 조금 넣었더니 남편이 진국이라며 어찌나 맛있게 먹던지 지금까지 애써왔던 일이 허무하게만 느껴서 헛웃음이 나왔다. 오히려 밖에서 조미료 잔뜩 들어간 것을 자주 먹기보다 집에서 약간의 조미료를 넣고 많이 먹는

게 낫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된장찌개에도 설탕을 아주 조금 넣으니 텁텁한 맛이 사라지면서 훨씬 맛있어졌다. 어묵볶음에도 물엿을 요리 블로그에서 알려주는 대로 넉넉히 넣었더니 반짝반짝 윤이 나면서 반찬이 사라지는 속도가 빨라졌다.


아이가 좋아해서 중국집에서 48000원에 겨우 10마리쯤 나오는 깐쇼 새우를 사 먹었는데 이제는 집에서 해준다. 여러 양념에 달디 단 칠리소스를 잔뜩 넣어서 튀긴 새우를 넣고 버무려주면 정말 사 먹는 맛이 난다. 어차피 단 음식을 먹을 바에 그래도 가격이라도 싸게 먹는 게 낫다는 생각에 만들게 되었다. 아보카도유에 튀겨서 몸에도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 돈 버는 느낌이 든다.

내가 만든 깐쇼새우


볶음밥 할 때도 굴소스로 간을 한다. 김치볶음밥, 계란 볶음밥, 오므라이스 모두 굴소스 한 수저를 넣으면 아이들이 아주 좋아한다. 그동안 함초 소금이나 간장 그것도 한살림 간장으로 했었다. 어릴 때는 그래도 잘 먹던 아이들이 중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외식과 배달음식에 길들여지고 나서는 억지로 꾸역꾸역 먹는 모습을 보고 굴소스와 맛소금을 활용해 요리를 하니 집에서도 잘 먹게 되었다.  


아직 아이가 유치원 정도인 부모님이 이 글을 보면 경악을 금치 못할 수도 있다. 나도 그 당시에는 그랬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아이 둘 다 아토피가 심했다. 큰 애는 아직도 아토피가 남아있어서 병원치료를 계속 받고 있고 둘째는 다행히 돌 무렵 사라졌다. 그래도 아직 꽃가루 알레르기가 심하고 음식에도 반응이 남아있다.


정말 유난스럽게 음식을 가려 먹이고 신경을 썼다. 첫 애가 아토피로 고생하는 걸 보고 둘째는 24개월 넘도록 모유를 먹이고 모유 먹이는 내내 녹즙을 갈아먹고 미역국과 된장국 같은 좋은 음식만 강박적으로 먹었다. 그래선지 둘째는 곧 아토피가 없어졌고 건강하게 자랐다.


아이가 어릴 때는 음식 통제가 가능했다. 아이가 다 큰 지금 아직 아토피기 남아있는데도 본인이 스스로 조절하지 않는데 자꾸 통제하려고 하니 감정만 상하게 되었다. 술 마시고 마라탕 같은 나쁜 음식을 마구 먹는다. 그래도 이제는 어쩔 수 없다. 먹는 것도 본인의 선택이 되었다. 그래도 좋은 재료를 조금이라도 더 먹이려 아직도 이런저런 궁리를 하는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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