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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종 Oct 13. 2023

내가 쓰고 싶은 글은요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생각해 본다. 제일 쓰고 싶은 글은 소소하지만 재밌고 맛있는 글이다. 하루키 에세이처럼. 그의 라이프 스타일이 고스란히 느껴지고 입맛이 다셔지고 그 음악이 들리는 것 같은 글들이다.


주인장마저도 대단한 이야기를 품고 있을 거 같은 식당에서 혼자 먹는 점심에 곁들이는 차가운 맥주 한잔에 대한 로망이 그의 에세이에서부터 시작된거 같다. 오스트리아로 가는 기차 식당 칸에서 먹는 비프커틀릿에 대한 궁금증, 내가 파스타를 만들면서도 하루키가 파스타를 삶는 동안 듣는다는 곡의 분위기를 떠올리는 등 일상생활 중에도 문득문득 그의 글이 떠오른다. 결혼하면서 남편이 가져온 책들 속에 있던 하루키의 에세이집을 본 그때부터 그의 글의 파편들이 내 생활 속에 스며들었다. 음식, 책, 음악들을 자꾸 상상하게 되는 간식 같은 맛있는 글이 좋다.


식사처럼 중요하지도 꼭 먹어야 하는 것도 아니지만 간식처럼 기분을 전환시켜 주는 맛있는 글이다. 하루키의 소설은 그다지 취향에 맞지 않았는데 에세이는 읽고 또 읽어도 여전히 기분이 좋아지고 소소한 일상의 멋을 다시금 깨닫게 해 준다. ‘하루키 에세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생긴 거 같다.


그의 글에 어울리는 안자이 미즈마루의 그림까지 찰떡같이 어울린다. 그의 그림도 처음에 보면 ‘뭐야, 나도 그릴 수 있겠는데?’라고 만만한 생각이 드는데 보다 보면 그 그림의 매력에도 흠뻑 빠지게 된다. 투박한 듯하지만 특징을 잘 잡아내고 하루키의 에세이를 더욱 돋보이게 해 준다. 소박한 그림을 곁들인 작은 이야기들을 세련되게 잘 쓰고 싶은 소망이 있다.


그의 영향 때문인지 그런 소소한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는 소란스럽지 않은 에세이들이 많아졌다.


두 번째는 의지를 불끈 솟게해서 행동하게 만들어 주는 글을 쓰고 싶다. 한동안 미니멀라이프에 대한 책에 빠져들었었다. 그때 우리 집은 엉망진창이었다. 일주일에 3, 4일 강의하고 아이 둘을 키우고 있어서 매일 해야 하는 식사준비와 청소 같은 기본적인 일만으로도 기진맥진해져서 그 이상의 정리나 살림을 하기는 힘들었다. 정리가 안 된 집에서 불편하게 살다 보니 더욱 에너지가 빠져나가고 힘들었다.


우연히 마스다 미츠히로의 <청소력>이라는 책을 본 게 시작이었다. 도미니크 로로, 곤도 마리에, 조슈아 필즈 밀번 등등 유명한 미니멀라이프 작가들의 책을 읽고 그동안은 그렇게 움직이기 힘들었는데 에너지가 막 솟아나기 시작했다. 괴력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힘이 솟아나면서 집을 단번에 싹 치웠다. 어마어마한 양의 불필요했던 물건들을 버릴 용기가 생겼고 꼭 필요한 물건들의 제자리를 찾아줄 수 있게 되었다.


버릴까 말까 망설이는 마음, 언젠가 필요할 때 후회할까 두려운 마음 같은 심리적인 문제까지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도 집이 지저분해지고 마음이 답답할 때 서랍 몇 개나 부엌 싱크대 정리만 해도 머릿속까지 개운해진다. 집안의 공기가 달라지고 숲 속에 앉아있는 느낌이 든다. 지금도 제일 재밌는 일 중 하나가 쓸데없는 물건을 버리거나 정리하고 깨끗해진 곳을 바라보는 거다.


글쓰기나 그림 그리기 같은 예술적 활동을 해보라고 권유하는 <아티스트 웨이> 같은 책들도 나를 움직이게 하고 글을 쓸 용기를 줬다.


집을 단정히 정리하고 앉아 글을 쓰는 현재의 삶이 좋다. 이런 힘을 내도록 도와준 책들이 고맙다. 현실에서 만날 수 없었던 스승을 만났다. 나도 지금 힘들어하고 있는 누군가를 일으켜 세워줄 수 있는 작은 손이라도 내밀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마지막으로 쓰고 싶은 글은 치유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글이다. 내가 따로 상담을 받지 않고도 조금씩 치유되고 마음이 편안해지는데 큰 도움을 받았다. 수많은 작가들의 글이 나를 위로하고 공감해 주었다. 알 수 없었던 마음의 병의 원인과 치유법을 알려주었다. 이유를 알지 못할 때 느꼈던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 시도 때도 없이 솟아나는 공허한 느낌과 우울함 속에서 인생을 낭비하고 있었다.


대학교 때 심리학에 그토록 관심이 있었던 이유는 내면의 문제를 해결하라는 무의식의 이끌림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심리학과로 전과해서 대학원을 가려고 준비도 했었다. 하지만 무기력감 때문에 제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고 그냥 현실에 순응하며 내 의지와 상관없이 삶이 흘러가는 대로 살고 있었다.


미니멀 라이프로 주변을 정리하고 나서야 심리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책들도 눈에 들어왔다. 일상의 소소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작은 힘들이 생겨나고 그것을 글로 쓰고 싶은 마음의 싹이 솟아났다.


세상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느라 놓치고 있는 작지만 중요한 일상과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알 수 있는 힘을 기르고 주변을 정리하고 자신을 돌보는 힘을 기르는데 도움을 주는 글을 쓰고 싶다. 부족하고 평생 그 과정 중에 있겠지만 그 일들을 같이 나누고 싶은 소망이 생겨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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