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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종 Sep 28. 2023

글쓰기는 인정욕구 때문이었나?

글을 쓰는 일이 즐겁다는 글을 매일 일기에 쓴다. 글을 쓰지 않고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다.


왜 이렇게 글 쓰는 일이 좋은지 생각해 봤다. 혼자의 시간을 잠시도 가만히 보내지 못한다.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부터 그렇게 된 거 같다. 그나마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는 일이 일기나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시간이다. 브런치에 올릴 수 없었다면 글을 꾸준히 쓰지는 못했을 거 같다. 글을 계속 쓸 동기가 없었고 그러면서도 내 생각을 드러내고는 싶은 마음에 많이 답답했을 거 같다.


브런치에 지원할 때쯤 그래도 예전보다는 조금은 나아진 거 같은 글을 남편에게 보여주고 어떤 거 같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그즈음에 글쓰기에 대한 욕구가 한참 솟아나고 가슴이 터질듯하면서 뭔가 세상에 보이고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가득 차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내 수준은 한참 못 미치는 거 같고 주변에 이런 소망이 있다는 말을 할 수도 없고 답답했었다.


그런 마음에 대한 답이라도 되듯 브런치를 알게 되고 심장이 엄청나게 뛰었던 기억이 난다. ‘내 글을 누군가 본다고? 에이 되기나 할까? 어차피 안 될 테니 그냥 해보기나 하자’ 이런 생각에 지원했는데 간절함이 통했는지 한 번에 합격했다. 사람들에게 내 글을 내보일 수 있고 공감도 받고 소통도 하니 너무 행복했다.


누구나 인정욕구가 있고 내 생각과 나를 보이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것이 제대로 표현될 방법이 없을 때 다른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주변사람들에게 자신의 중요도를 높이는 화법을 자주 써서 되레 반감을 사게 될 수도 있고 겉모습을 요란하게 꾸미거나 자랑을 쉴 새 없이 늘어놓을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면 그냥 답답함 속에 자포 자기할 수도 있었을 거다.


내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브런치에 매주 조금씩 쓰다 보니 주변 사람들에게 쓸데없는 말이나 나를 증명해 보이려는 이야기가 많이 줄어서 좋다. 안 그러려고 해도 전에는 자꾸 내가 하는 식단이나 끊임없이 솟아나는 생각들을 자주 이야기하곤 했는데 그러고 나면 괜한 소리를 너무 떠들었다는 자괴감이 들곤 했다. 그게 어떤 강요나 자랑처럼 들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냥 내 생각대로 살아나가면 되는 건데 그렇게 이야기하고 인정받고 싶어 했던 거 같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인정욕구가 있고 그게 생각만큼 충분히 채워지지 않았을 때 그 욕구의 압력이 나도 모르는새 나를 그렇게 밀어댄다.


주변사람들은 내가 괴로워하는 만큼 내 이야기에 큰 의미를 두거나 고통스럽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인정받으려고 애쓰는 것 같은 내 모습이 정말 싫고 마음은 계속 답답했다.


지금은 브런치에 그 모든 말들을 쏟아내고 나니 그렇게 후련하고 좋을 수가 없다. 그냥 내가 하고 싶던 말을 한다는 게 이렇게 좋은 줄 몰랐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단 한 명에게라도 가 닿아 공감과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기운이 더욱 솟아난다.


글을 쓰는 일은 혼자서 하는 일이지만 혼자서만 하는 일은 아니었다. 그전에도 일기도 쓰고 가끔 끄적거리기도 했지만 그 답답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부정적 감정을 털어놔도 개운해지거나 진짜로 털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열린 공간에 쓰고부터 정말로 거기에 두고 나올 수 있게 되었다.


정지우의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라는 책에 ‘많은 경우 글쓰기의 꾸준함은 인정욕망에서 나오는 것 같다’는 문장을 보고 나의 그런 마음이 무엇이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인정욕구였다. 내가 그렇게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생각이나 새롭게 추구하는 생활 방식 등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거를 일기에만 쓰기에는 뭔가 답답했던 거 모두 인정 욕구 때문이었다.


글을 쓰고 이런 외적인 공간에 내보임으로써 인정욕구가 많이 충족되었다. 많이 편해졌다. 무슨 성공을 한 것도 아니고 책을 내고 진짜 작가가 된 것도 아닌데 오버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편해지고 행복하다.


내 말을 들어줄 대나무 숲이 생긴 기분이다. 언제든 노트북을 챙겨 들고 카페에 나와 쓰면 마음이 날아갈 듯 가벼워진다.


이 글을 쓰다 보니 내가 인정욕구가 어마어마하게 많았는데 평생 인정받아 본 경험이 별로 없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인정받고 싶지 않은 척했었다는 것도. 괜찮은 척했고 '남의 인정이 뭐가 중요해. 나만 잘하면 되지' 하면서 잘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잘하려고 노력했는데 인정받지 못하면 더 비참해질 것 같아서 그랬다. 작은 성공의 경험이 너무 없었다.


그냥 쿨한 척 ‘난 잘 못해, 난 어설퍼, 난 머리가 안 좋아’ 그런 이야기들을 주변에 떠들어댔다. 그건 정말 겸손하고 극복한 게 아니었다. 내가 먼저 나를 낮춤으로써 공격받거나 비난받을 일을 미리 차단한 거였다. 난 누구보다 잘하고 싶었고 인정받고 잘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성공이나 성취에 관심 없는 유유자적하는 성향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너무 일찍 욕구가 좌절되는 경험이 많아서 그 욕구를 아예 차단한거 였다.


얼마 전 여행에서 지금도 내가 아쉽고 미래로 돌아가면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친구들과 이야기하게 됐는데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전문직을 갖는 거라고 이야기했다. 말하고 보니 지금도 자주 몽상하는 일이 그거였다. 이과였는데 원래 꿈대로 더 열심히 해서 의대나 치대에 가서 의사가 됐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니면 대학교 때라도 성적 관리 잘해서 유학을 갔다 와서 서울의 좋은 대학 교수가 됐으면 좋았겠다. 이런 상상을 너무도 자주 한다는 걸 알았다.


그만큼 내 인정욕구가 크고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는데 그 욕구를 억제하고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는 사람인 것처럼 적당한 선택들을 하며 안위만을 추구하며 살았다.


사회적 성취가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정말 마음이 초연해지고 자존감이 높아 당당하고 충만한 삶을 사는 거라면 아무 문제가 없다. 난 그런 척을 하고 나의 욕구를 잘 알지 못해서 남의 눈치만 보며 위험하지 않고 비난받지 않을 적당한 길을 비겁하게 추구해 왔다는 게 문제다. 솔직하게 내 욕구와 욕망을 밝히고 추구하는 게 진짜 삶이다. 진정한 욕구를 숨기고 적당한 인생의 모델을 내 것으로 빌려온 비틀린 삶을 살아서 그렇게 늘 공허했다.


지금이라도 내 욕구에 당당해지겠다. 난 인정받고 싶다!  난 관종이고 더 더 성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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