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여행 리스트에 남미는 없었다. 비행시간이 너무도 긴데 비행기 타는 걸 싫어한다. 공중에 떠 있는 그 느낌이 싫다. 어디한곳 의지하고 붙잡을 데 없이 공중에 떠 있다는 생각이 들면 불안감이 밀려든다. 짧은 시간은 그래도 어찌어찌 보내는데 화장실에도 몇 번씩 가야 하는 긴 시간 비행은 되도록 하고 싶지 않다.
얼마 전 본 미드 <브레이킹 배드>에서 나온 멕시코의 살벌한 풍경과 남미는 무법천지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박혀버려서 아직 못 가본 안전한 곳도 많은데 굳이 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어느 날 나의 그런 생각을 단 번에 부수는 사진이 날아들었다. 동창 한 명이 남미 여행을 하며 보내준 마추픽추의 사진은 용기를 내 볼 가치가 있을 만큼 장엄하고 신비로웠다. 어느 외계 행성의 모습 같기도 하고 신화 속 장소 같기도 했다.
친구가 보내준 마추픽추 사진
사진으로 봐도 이토록 숨이 멎을듯 멋진데 실제로 보면 어떨까 한참을 상상하고 자꾸만 그 사진들을 꺼내 보았다. 그 장엄하고 아름다운 광경은 작디작은 마음을 가진 나를 떨쳐버릴 수 있게 만들어줄 것도 같고 새로운 나로 만들어줄 것 같은 기대감을만들어 냈다. 죽기 전에 꼭 한번 보고 싶은 광경이다.
남미에서 보내온 사진에서 2024년 목표가 생겨났다. ‘용기를 내보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서일까? 책 속에서도 그 다짐을 지지해 주는 문장들이 눈에 들어왔다. 류시화 시인의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다>에도 “해 버린 일에 대한 후회는 날마다 작아지지만 하지 않은 일의 후회는 날마다 커진다”
“주위의 만류와 일반화의 논리 때문에 포기한 일, 안전한 영역 밖으로 나가지 않기 위해 자신의 진짜 감정과 진실을 감춘 일이 그것이다. 그렇게 해서 흥미진진하고 의미로 채워진 영화 같은 삶을 유예시키고 관객석에서만 살아간 것이다. 나의 삶은 내가 최초로 시도하는 삶인데도”라는 문장들이 눈에 들어왔다.
안락한 생활 속에서 관객 같은 삶을 살아왔음을 후회하고 있었으면서도 용기가 쉬이 생기지 않았다. 두려움은 여전히 내 손과 발을 강하게 붙들고 있다.
친구들과 여행 계획을 짜면서도 난 참 여전했다. 최근에 친구와 군산 여행 가는 길에 가볍지 않은 충돌사고를 당하고 보니 기껏 생긴 작은 용기와 적극성마저 다시 저만치 움츠러들었다. 다치지는 않았지만 상대방 차는 폐차 수준으로 부서졌고 친구차도 많이 손상된 꽤 큰 사고여서 많이 놀랐다. 운전면허도 있고 연수를 많이 받았음에도 무서워서 운전을 하지 않는데 두려움이 더 커져버렸다.
이제 그 친구가 운전하는 차는 못 탈것 같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다행히 대중교통으로 이동하자고 했다. 글램핑을 하자고도 하고 온천여행을 가자고도 했다. 글램핑 사고 기사가 생각났지만 '생각해 볼께' 하고 괜찮은 척하고 있었다. 다행히 다른 친구가 그 기사 이야기를 하면서 글램핑은 나중에 날씨 따뜻할 때 가자고 했다. 적극적인 친구가 하는 제안들을 나와 다른 친구가 번갈아가며 안 되는 이유를 대다 보니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그냥 집에나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도 어찌어찌 속초 리조트에서 물놀이를 하고 설악산 케이블카를 타는 코스로 결정이 났다. 그런데 사실 케이블카도 타고 싶지 않다. 놀이동산의 놀이기구도 타기 싫고 그런 탈 것들에 대한 두려움이 많다.
그런 말을 친구들에게 하지는 않았다. 이 지경으로 두려움에 내 손과 발이 묶여 있다. 겁이 많고 안전에 대해 민감한 걸 주변에서 알기 때문에 표현을 자제하지만 내 마음은 아직도 그렇다.
두려움에 얽매인 내 삶의 문제점을 인식해서 마음을 다스리려고 많은 노력을 하지만 나이가 들어 상황 파악을 더 잘하게 될수록 신경 쓰이고 걱정되는 일이 많아진다. 이래서는 삶을 제대로 살 수가 없다. 케이지 속만 맴돌다 죽는 햄스터와 다를 게 없다.
그런 내가 너무 답답하고 싫은데 벗어나기가 힘들다. 내맡기라는 책을 그렇게 보고 또 보고 신께 의지해보지만 참 쉽지 않다.
올해의 목표를 ‘용기를 내보자’로 정하려고 한다. 내 한계를 넘어가 보고 싶다. 남미에 갈 계획도 세워보고 스킨스쿠버 자격증도 따서 바닷속을 유영하고 싶다. 더 이상 관객처럼 그런 일을 해내는 사람들을 보고 부러워만 하지 말고 직접 경험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