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습관을 만든 나를 칭찬합니다.

by 박수종

2025년이 된 지 벌써 열흘도 더 지났다. 2023, 24년도 아직 익숙해지지 못했는데 25년이라니 세월의 흐름이 무섭도록 빠르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뭘 하고 싶은지 뭘 이루고 싶은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그러면서 브런치에 쓴 글을 쭉 찾아봤다. 2022년 9월부터 시작했으니 벌써 3년째 계속하고 있다. 평생 자발적으로 뭔가를 꾸준히 해본 건 처음이다.


161개의 글과 6개의 브런치 북을 발간했다. 그것만으로도 장하다고 칭찬해주고 싶다. 예전 1월에는 지난 시간 동안 이루지 못한 일, 이루고 싶은 것도 없이 그냥 하루하루 바쁘게 세월만 흘려보낸 일들을 반성하며 자괴감에 답답했는데 최근에는 스스로에게 칭찬받을 만한 일을 많이 했다.


약속이 없는 날은 산책 겸 무조건 나간다. 글쓰기를 제일 많이 하고 아직 섭외받지도 않은 강의 자료를 만들어보기도 한다.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기 위해 미리미리 준비해 놓자 라는 김칫국 마시는 일들을 하고 있다.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들을 수첩에 메모한다. 혼자 바쁘게 돌아다니며 출근하듯이 카페에 앉아 진지한 얼굴로 뭔가를 하는 모습이 우스울 수도 있겠지만 난 세상 진지하고 재밌다.


재미가 있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평생 글쓰기는 나와 상관없고 글을 정말 못쓴다고 생각한 사람치고 제법 좋은 결과라고 생각한다. 대단한 분들이 브런치에 많기에 이런 글을 쓰는 것이 조금 부끄럽긴 하지만 뻔뻔하게 한 번 써보려고 한다.


꾸준히 거의 매주 글을 써서 올리고 여전히 그 열정이 식지 않은 이유를 생각해 봤다. 그건 재미다. 그리고 글쓰기를 잘하거나 좋아하는 사람만 글을 쓸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다.


알고 보니 난 좋아하는 게 아주 많은 사람이었다. 글을 쓰기 전에도 책을 좋아해서 늘 읽었고 책 속의 좋은 말들을 꾸준히 필사 해왔다. 자기 전에는 책을 몇 장이라도 읽어야 투명하고 너덜너덜해진 나를 지킬 수 있었다. 낮 동안 제대로 해소되지 않은 많은 갈등과 부대낌을 그렇게라도 덜어내야만 했다.


책 읽는 시간 동안 마음을 차분히 들여다보고 엉켜있던 것들을 풀어야 잠을 잘 수 있었고 아침이면 다시 살아나갈 힘을 얻었다. 어제 읽었던 좋은 글귀들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필사를 하면서 다시 한번 곱씹고 기억하려했다. 손으로 쓰다 보니 마음에 오래 남는다. 다 기억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는데도 글을 쓰다 보면 내 생각인 듯 아닌 듯 불현듯 필사한 글귀들이 떠오를 때가 많다.

필사한 노트


처음 글을 쓸 때는 이게 내 생각인지 책 속 작가의 생각인지 구분되지 않아서 그냥 이렇게 막 써서 올려도 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한 출처가 생각날 때는 필사한 노트를 뒤져 작가와 책의 출처를 밝히며 쓰기도 하고 도저히 생각나지 않을 때는 내 것으로 완전히 체화되었거나 내가 원래 생각하고 있던 거를 책이 확인시켜 준거라 생각하고 그냥 써나간다.


필사와 모닝페이지에 들인 시간이 쌓이자 전보다는 나아진 글이 써졌다. 취미생활이 조금씩 확장되었다. 책 읽기와 필사, 모닝페이지 쓰기 같은 취미가 브런치라는 온라인 속 공간이지만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나만의 작고 아늑한 집을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다.


외출할 때는 항상 조그만 수첩을 가지고 다닌다. 언제 어느 때 빈 시간이 날지, 좋은 생각이 떠오를지 몰라 항상 갖고 다닌다. 종이에 내 손으로 직접 뭔가를 쓰거나 그리는 걸 좋아한다.

늘 가지고 다니는 수첩


외출했을 때라도 핸드폰을 덜 보려고 수첩과 펜을 꼭 들고 다닌다. 약속 시간에 일찍 도착했을 때나 혼자 외출했을 때 그 수첩은 친구가 되어준다. 카페의 예쁜 화분이나 길에서 본 고양이 사진이나 그냥 그리고 싶은 것들을 대충 그려보는 취미를 오래전부터 갖고 있었다.


대학 때도 카페에서 친구들 기다릴 때 그런 작은 수첩에 뭔가를 메모하고 작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었다. 의식하지 못하고 하던 일이 돌고 돌아 다시 내 안에 안착되었다. 자투리 시간에 하던 취미였는데 지금은 내 삶의 아주 중요한 일이 됐다.


힘들어도 매일 출근하듯이 나가서 사부작거리며 뭔가를 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오히려 피곤함이 사라진다. 좋은 습관이 됐다. 새로운 습관을 들이는 데는 21일이 걸린다는데 나는 2년 6개월 이상을 했으니 완전히 습관이 됐다고 말해도 될 거 같다. 이런 좋은 습관을 들인 나를 칭찬하면서 2025년을 시작한다. 올해는 어떤 프로젝트를 시작해 볼지 궁리하니 가슴이 두근거리고 무엇보다 재밌다.


부끄럽지만 내 거창한 올해의 계획을 말해보자면 내 그림으로 달력을 만들어보고 싶다. 나는 작년부터 알티쉬 달력을 산다. 작년에는 그랜마 모지스의 그림 달력이었고 올해는 일리야 밀스타인과 자넷 힐이라는 작가의 것 두 개를 샀다. 둘 다 너무 맘에 들어 고를 수 없어 다 사고 그 달에 더 좋은 그림을 걸거나 보름씩 바꿔 걸려고 한다. 비싼 그림은 못 사지만 2만 원쯤 하는 달력 두 개 정도 사는 사치는 부릴 수 있다.

일리야 밀스타인 달력
자넷 힐 달력


그걸 보며 내 그림으로 달력을 만들어 자비인쇄를 해서 내 그림이 좋다고 해주는 주변 몇 사람에게 선물도 하고 거실에 걸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보고 있다. 일 년간 더 열심히 그림 실력을 갈고닦아 내 년 이맘때는 근사한 달력을 소개하는 글을 써보고 싶다.


이 모든 계획이 그런 아무것도 아닌 메모와 모닝 페이지를 쓰면서 생겨나고 구체화된다. 어린 시절 놀이를 모의하듯 이런 재미난 생각들을 모으고 추진해 나가는 과정이 정말 좋다. 이런 걸 원래도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거기에 딸린 현실적인 일들이 하기 싫어 회피했었다.


예전에 유아 영어교육 교재를 같이 써보자는 친구들이 있었다. 같이 영어 교육 활동에 대한 아이디어 낼 때는 너무 재밌어서 활동 만드는 일은 거의 내가 주도적으로 했다. 그러다 아이디어들이 다 모인 후 이론적 배경이나 활동들을 잘 정리하는 글 쓰는 작업을 해야 하는 단계에 이르자 하기 싫어졌다. 1년 가까이 매주 모여 추진했던 일의 마지막 글 쓰고 정리하는 작업이 싫어 그렇게 시간과 노력을 들여놓고도 내 이름 안 실려도 된다며 빠진 일도 있었다. 창의적이고 재미난 일만 놀이처럼 할 수 있는 사람이었지 차분히 앉아 그 생각들을 모으고 정리하는 성가신 일들을 못 하는 사람이었다.


지금은 그런 부족한 면들을 다듬어 정리하고 차곡차곡 모으는 작업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다 글쓰기 덕분이다. 글쓰기를 계속하다 보니 뭔가 정리해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게 어렵지 않게 느껴진다.


강의자료 만드는 일도 원래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학교에서 강의할 때는 기본적으로 교재가 있기 때문에 추가 자료만 찾아 정리하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지금 내가 만드는 강의 자료는 브런치에 쓴 글로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드는 일이다. 전 같으면 절대로 할 수 없어 도망 다니던 귀찮은 일이다.


글쓰기가 습관이 되자 이런 일들이 별로 어렵지 않게 느껴진다. 처음으로 좋은 습관을 들인 나를 칭찬하는 일로 시작하는 아주 드문 해이며 뭔가 좋은 일로 가득 찰 거 같은 기대감으로 시작하는 2025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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