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상형이 돼 보려 합니다.

by 박수종

인생에서 친구가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는 중학교 때부터 소울 메이트를 찾아다녔다. 그때는 구체적으로 어떤 친구를 원하는지에 대한 생각은 없었다. 그냥 내가 좋아하고 말이 잘 통하면 됐다.


친해지고 싶은 아이에게 먼저 말도 걸고 서로의 집에 놀러 가기도 하고 시험 공부한다고 같이 밤을 새우며 사실 밤새도록 이야기하고 놀았다. 같이 라디오도 듣고 좋아하는 노래를 녹음한 테이프도 주고받으며 재밌게 잘 지냈다. 내향적인 성격은 아니라 늘 친구들이 많았다. 그러나 같이 놀 뿐이지 진짜 대화를 할 수 있는 진짜 친구는 어딘가 따로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중고등학교 시절을 지나며 소울 메이트에 대한 희미한 이상형이 만들어졌다. 주로 책 속에 등장하는 매력적인 존재들의 모습을 반영한 어떤 사람을 그리워하며 찾아다녔다.


헤르만 헤세의 책을 좋아해서 <수레바퀴 밑에서>의 주인공 한스를 자유로움으로 이끄는 예술적이고 반항아 기질의 하일루너가 이상적 친구가 되기도 하고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읽을 땐 나르치스같이 성스러운 분위기의 침착한 사람이 그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런 식으로 친구에 대한 이상적 표준을 덧붙여 나가며 어딘가에 있을 소울 메이트에 대한 기대감으로 나 자신은 돌아보지 못한 채 현실 친구들을 시시하게 보기도 했다.


그런 식으로 항목이 하나씩 추가되면서 나처럼 말이 많지는 않지만 속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문학적, 예술적 감각이 있어야 하고 패션 감각도 있어야 하고, 진중하면서도 놀 때는 누구보다 잘 놀아야 한다는 그야말로 이상적인 소울 메이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건 미래의 남편감이나 남자친구에 대해서도 같았다. 남자친구는 거기에 외모도 출중해야 하고 공부도 잘해야 한다는 조건이 더해졌다. 그러나 현실은 그런 남자는 나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대학교 때 그와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친구를 만난 적도 있었다. 영화와 책을 좋아하고 특별한 분위기가 있는 친구였다. 그 친구와는 영화와 책, 그리고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꿈에 대한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다. 같이 공연을 보러 다니고 다른 친구들과 어울려 재밌게 놀 수도 있는 이상형에 가까운 친구였다.


그렇게 친하고 맞는다고 생각한 친구도 각자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여러 오해가 생기고 지금은 만나지 않게 됐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예술적 취향이 맞았을 뿐 사실 맞지 않는 부분이 더 많았다. 내가 머릿속으로는 자유로움을 추구하지만 현실에서는 답답한 모범생 같았는데 그 친구의 자유로움 그 자체같은 모습이 좋았다.


소울 메이트의 조건을 쓰다 보니 사실은 내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거 같다. 그렇게 살고 싶었고 내가 그런 사람이고 싶었던 거였다. 그걸 친구에게서, 남편과 자식들에게서 찾으려 했고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고 혼자 실망하곤 했다. 나 자신은 전혀 그런 모습이 아니면서.


잘못된 방향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건 타인에게서 찾을 게 아니라 내가 가야 할 길이었다. 내가 만든 브런치북의 <다정한 사람이 되는 법>이라든가 <50대, 다시 나를 키울 시간>의 글을 다시 보니 내가 평생 찾던 소울 메이트의 모습은 사실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이었다.


‘예술적인 사람, 책 읽는 사람, 나처럼 일희일비하지 않는 진중한 사람, 뒷담화하지 않고 너그러운 사람, 자신만의 세계가 있는 사람, 나이 들어서도 새로움을 받아들이는 트렌디함을 잃지 않는 사람, 타인의 에너지를 소진시키지 않는 활기찬 사람, 자신만의 콘텐츠가 있어 이야기 소재가 진부하지 않은 사람, 꿈을 잃지 않는 사람, 나이나 환경에 얽매이지 않는 편견 없는 사람, 작은 것에서도 아름다움을 찾는 사람, 오래된 것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 자아성찰이 잘 되는 사람 ’ 이런 사람과 친구하고 싶다는 생각을 늘 했었는데 사실은 내가 그런 사람이 되고 싶던 거였다.


쓰고 보니 현실에 존재하기 어려운 조건이다. 외적으로는 나이보다 젊게 사는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에게서 찾을 수 있겠지만 내적인 면까지는 검증이 어려우니 그야말로 유니콘 같은 존재다. 나 자신은 그러지 못하면서 타인에게서 저런 이상적 모습을 추구하는 어리석은 생각으로 살고 있었다.


사실 친구든 남편이든 다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이 만난다고 생각한다. 내 주변이 점점 나아지고 있다면 내가 좋아지고 있다는 증거리라. 그런 면에서 나는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 주변에는 나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들로 채워지고 있다. 배울 것이 많고 위에 적은 장점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을 보면서 나의 부족한 면을 많이 발견했다. 나보다 어리지만 주변을 배려하고 살필 줄 아는 사람, 절대로 남 얘기 하지 않는 사람, 패션 감각과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사람, 꾸준히 운동하고 절제하며 단정하게 살아가는 사람 등등 많이 배우고 있다.


그런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고 나아지고 있다. 그런 모습을 찾다 보니 주변에 그런 사람들로 채워지고 있다. 나의 고치고 싶은 면, 추구하는 모습에 대한 글을 쓰면서 부족한 것들을 내 식대로 고치고 채우고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막연히 그런 사람을 외부에서 찾을 때와는 다르게 글을 쓰면서 구체적으로 그려보며 사실은 내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이상형의 조건이 좀 길지만 내가 그런 사람이 한 번 돼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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