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그리는 게 너무 재밌는데 손이 자꾸 아프고 눈이 침침해서 밤에는 색 선택을 잘못하는 일이 많아지다 보니 건강해지고 싶어 식단과 운동에 더 신경을 쓰게 된다. 삶의 목적이 생기자 스스로를 더 잘 돌보게 된다.
공허해서 자꾸 생각나던 술을 줄일 수 있게 됐고 텔레비전과 핸드폰 보는 시간이 줄었다. 심심할 때 그림 그릴 생각을 하면 술을 참게 된다. 푹 자고 맑은 정신으로 일어나야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고 글 쓰러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를 알아가고 좋아하는 일들로 삶을 채워나가는 게 이렇게 좋은 줄 몰랐다. 텔레비전과 술과 사람들은 후유증을 남긴다. 시간을 헛되이 보냈다는 자괴감, 사람들과의 갈등, 부정적인 말들을 곱씹느라 낭비하는 시간과 마음의 상처가 남는다. 물론 좋을 때가 많고 재밌는 시간일 때가 더 많지만 아주 사소한 것들까지 알아차리는 나는 에너지를 너무 많이 써서 내가 서서히 물렁해지고 무너지는 기분이 들 때가 많았는데 이 일들은 나를 강단 있게 만들어 준다.
오늘 아침에도 나의 영혼이 강하고 맑다는 느낌이 들었다. 초겨울 쌀쌀한 바람에 흔들리는 레이스 커튼 위로 비추는 햇살에 행복감을 느낀다. 혼자 있는 모처럼의 시간을 집안일에 쓰고 싶지 않아 좋아하는 음식을 주문하고 이렇게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바랄 게 없는 심정이다.
말에 상처받거나 기분 상하는 것은 나의 연약함 때문이었다. 지금은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여력이 느껴진다. 강하고 빛나는 존재로 스스로를 잘 키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대견하다. 아이들을 그렇게 키우려고 했는데 그때의 나는힘이 없었다. 사람들 말에 휘둘리고 내가 휘둘리는 대로 아이들을 흔들어대며 힘들게 했던 적이 많았다.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바로 세우는데 힘써야 하는 게 인생이다. 내가 좀 더 일찍 바로 서 있었으면 아이들에게 더 큰 사랑과 힘을 줄 수 있었을 텐데 힘을 뺏는 존재였던 거 같다. 나에겐 힘이 없었다. 연약하고 나약했다.
책을 읽고 나에게 수없이 좋은 말들을 퍼부어주고 나처럼 무지한 사람들의 말이 아니라 진리에만 정신을 집중하자 좋은 나로 변해가는 게 느껴진다. 사실이었다. 부정적인 것들을 알아차리고 내가 원하는 일을 찾게 되고 그런 일들을 하면서 보내는 시간의 충만함은 날 자신 있고 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줬다.
아름다움을 찾는 사람으로, 그걸 만들어내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사람들의 평가는 필요 없다. 내 삶의 아름다움은 나로서 충분하다. 내 눈에 아름다운 것을 찾고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하다. 망설이고 회의감을 느낄 시간에 더 많이 찾고 만들어 내고 싶어졌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이런 느낌이 들까? 또 날 뒤흔들 사람을 만나면 한순간에 추락할까? 그런 일을 평생 되풀이 했는데 이번엔 다르게 느껴진다. 느긋해질 수 있을 거 같다. 느긋하고 다정하고 친절할 수 있는 힘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과 확신에서 나오는 거였다.
인생의 목적을 모를 땐나쁜 습관을 고치기 힘들었다. 그 이유가 그저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거나 건강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때는 쉽게 포기하곤 했다.
지금은 두려움 때문도 아니고 외부의 시선 때문이 아니라 이 좋은 기분을 계속 유지하며 오래도록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싶어 저절로 그런 마음이 됐고 그런 생활을 하게 됐다. 인간은 단순한 결심만으로는 변할 수 없는 존재다.
사람의 행동과 생각은 그의 과거, 경험, 환경 등 그의 인생이 축적되어 그렇게 나올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그의 행동의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그렇기에 누군가의 충고 한 마디나 잔소리로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그의 부모, 조상 때부터 해결되지 못하고 대대로 내려온 고통이나 문제들이 개인의 경험과 합쳐져 지금의 그의 사고패턴과 행동을 만들었을 수 있다. 그렇게 한 사람의 행동과 생각이 순간적이고 단순하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스스로를 관찰하면서 알게 됐다. 그러니 사람을 바꾼다는 것은 세상을 바꾸는 일만큼이나 어려운 일일 것이다.
나 자신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하면서 그걸 알게 됐다.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취약해질 때마다 어느새 제자리로 돌아와 있곤 했다. 왜 이렇게 의지박약일까, 한심할까 스스로를 탓했는데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수 백 권의 책을 읽고 의식적으로 깨어 있으려 노력해도 유전자에 깊게 새겨진 기질과 경험과 환경 그 모든 것을 한 순간에 이기기는 힘든 일이다. 그가 그런 이해 안 되는 행동과 말을 하는 이유는 그의 숨겨진 분노, 조상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자신도 알 수 없는 불안, 억울함, 상처가 혼합된 결과일 수 있다.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삼대까지 조상의 삶도 살펴봐야 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김연수 작가가 쓴 <여행할 권리>라는 책에서도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해 아버지가 다녔던 일본의 중학교를 찾아가는 내용이 나온다. 그렇게 자신을 알고 경계를 넓히기 위해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의 삶까지도 살펴봐야 한다는 걸 알고 그당시 아빠는 돌아가셨고 엄마는 치매라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게 된 게 너무 안타까웠던 기억이 난다.
나 한 사람을 들여다보고 문제를 해결하는데도 이 생을 다 바쳐야 한다. 그런 것을 깊이 깨닫게 되자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바꾸려는 말이 자연스럽게 줄어들게 되었다.
‘저 사람은 지금 저렇게 할 수밖에 없구나. 저게 저 사람의 인생 과제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평온하게 그를 볼 수 있고 잘 해결하고 편안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기까지 한다. 소용없는 일이라는 것을 완전히 이해하게 됐다. 심지어 자식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수용하게 됐다.
타인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시간에 스스로를 자세히 알아보고 원하는 방향으로 변화시키는데 더 집중하고 노력해야 한다. 타인은 절대로 변화시킬 수 없다. 내가 온전해지고 삶이 빛나면 저절로 그 영향력이 주위에 미칠 수 있게 된다. 누군가를 변화시키고 싶으면 내가 먼저 그 정도의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노력을 기울이는 게 더 현명한 방법이다.
세상을 바꾸고, 맘에 들지 않는 사람을 바꾸겠다고 나서지 말고 나 자신 하나 잘 보살피고 들여다보고 아는 것이 세상을 조금이라고 나아지게 만드는 일이 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