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일기를 다시 꺼내 읽었다. 마음에 와닿는 책을 못 찾거나 잘 안 읽힐 때 가끔 예전 일기를 찾아 본다. 일기장에 책 필사도 하고 있어서 좋아하는 책의 엑기스를 다시 읽을 수 있다는 점도 좋다.
2022년이면 그리 먼 과거도 아닌데 내가 이런 글도 썼구나 싶어 남이 쓴 글을 읽듯 재밌게 읽는다. 그 당시 고민하던 것들에서 많이 벗어났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고 짧은 시간 동안 내가 참 많이 변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당시에는 아직 인간관계에서 불안감이 컸고 그다지 좋아하는 만남이 아님에도 거절도 못하고 내 의견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채 끌려 다니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중학생 여자애처럼 그렇게 미숙한 모습이었다.
알 수 없는 우울감에 잠식당할 때도 많아서 그 당시 일기를 읽으니 그 기분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땐 아침에 눈을 뜨거나 술을 마시고 자다 깨면 가슴이 조여 오는 거 같은 불안과 우울, 자괴감 같은 감정에 한없이 빠져들곤 했다.
아빠가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엄마와 2년간 살면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많이 지치고 요양원에 막 모신 때라 더 심했겠지만 그런 기분이 기본 값이었던 거 같다.
오랜 기간 이어진 그런 불안과 우울감이 단 몇 년 만에 거의 사라진 게 정말 신기했다. 나의 감정을 차분하게 글로 쓰면서 스스로를 납득시키고 위로하고, 쓸데없는 불안과 걱정을 그만두는 연습을 하면서 급격한 변화가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러기까지 많은 노력을 했다. 10년 넘게 많은 책을 읽었고 책에서 읽은 내용을 실천하고 새로운 습관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지금도 다시 본래의 나쁜 습관으로 돌아가는 거 같으면 다시 책을 읽고 마음을 돌본다.
2022년 일기장에 필사한 정문정의 <더 좋은 곳으로 가자> 중 “우리는 성취에 대해 말할 때 개인의 의지를 주로 강조하지만 그를 둘러싼 주변의 호의와 낙관성이 큰 영향을 미치는 걸 많이 보았다. 성인이 되어 알게 된 건, 내가 몰랐거나 고군분투해 알아낸 정보를 어떤 이는 쉽게 터득하고 있다는 거였다.”라는 부분이 있었다.
어떤 사람은 이른 나이에 쉽게 터득하는 거 같은 낙관성과 자존감, 인간관계에서 나 자신을 지키면서도 지혜롭게 잘 지내는 기술 같은 거를 상처투성이에 에너지가 다 소진된 지금에서야 배우고 있다는 사실이 좀 안타깝다.
사람이 살면서 필요한 그런 것들을 배울 기회가 없었고 그런 게 그토록 중요한지도 몰랐다. 내가 유난히 어리석은 건지 몇 백 권의 책을 읽고 나서야 조금씩 변화할 수 있었고 정말 중요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일기장에 아이들과 나눈 이야기도 적혀있었다. 큰애와 작은 아이의 나이터울은 5년이 난다. 그래서 그런지 큰 애는 어릴 때부터 단 한 번도 동생을 질투하고 미워하는 기색 없이 귀여워하고 사랑스러워했다.
애기 깬다고 조용하라고 야단치거나 애기니까 누나가 뭔가를 참으라고 했을 때도 그 억울함을 동생 탓으로 돌린 적이 없었다. 그 당시에는 큰 아이가 그랬다는 것도 몰랐는데 주변 남매들 이야기를 들어보거나 지금에서 생각해 보니 정말 동생을 그렇게 예뻐만 했었다는 게 신기해서 “##야, 넌 그때 5년간 엄마 아빠 사랑을 혼자 독차지하다 갑자기 동생이 태어나고 관심이 확 줄고, 엄마가 야단도 많이 쳤는데 어떻게 그렇게 너그러웠어?, 어떻게 참았어? 화나지 않았어?”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동생은 너무 어린 아기였고 원래 성숙한 사람이 봐주는 거라는 마음이 그때부터 있었다고 대답했다.
그 대답을 듣고 많이 놀랐다 아직 20대인데 아니 그때는 6살 어린애였는데 나는 이제서 책을 읽고 깨달은 진리를 알고 있었다니 정말 깜짝 놀랐다.
사람들과 겪는 속상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럴 때 너희라면 어떻게 해?”라고도 물었더니 둘째 아이도 자기를 불쾌하게 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만날 이유가 없다고 단호하게 이야기하면서 그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게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난 내가 성숙하고 더 나은 사람이라는 자신감도 없었고, 나에게 불쾌하게 하는 사람도 내가 잘하고 맞추어야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지 그렇게 단호하고 쉽게 멀어질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고 싶어도 그럴 용기도 없었다. 그런 사람들이 오랜 시간 날 괴롭혔음에도 어떻게 나의 불쾌함을 표현할지 아니면 지혜롭게 거리를 두는지를 이제야 배우고 있는데 아직 어린아이들이 그런 책 한 권 읽지 않고도 이미 알고 그렇게 살고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경계를 지키며 적절하게 자신의 요구도 표현하면서도 인간관계를 더 잘하고 있었다. 인간관계에 큰 스트레스받지 않고 사람들과 잘 지내고 따르는 친구들도 많다. 난 내가 잘해주고 노력해야만 잘 지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현실적인 면에선 밥 한 끼 스스로 차려먹지 않고, 맨날 누워서 핸드폰 하고 싸구려 옷들을 사느라 돈을 탕진하고, 술 먹고 늦게 다녀 걱정시키는 어린애 같은 면이 더 많지만 아이들의 영혼은 부모자녀 관계로만 정의될 수 없는 또 다른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부모자녀 관계로 만났지만 영혼의 성숙도는 오히려 우리 부부보다 더 높은 거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아이들에 대헤서도 생활의 미숙함만을 보고 내가 가르치고 돌봐야 하는 존재, 나보다 부족한 존재로 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영혼으로는 훨씬 성숙한 존재일 수 있다. 내 아이들에게서 그런 느낌이 들었다. 내 자식이라고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되고 내 소견으로 아이들을 좌지우지하려 해서도 안된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에 어린아이들도 이미 마음속에 자신만의 길을 알고 있다. 그 길을 잘 펼칠 수 있도록 사랑과 따뜻함만을 준다면 아이는 잘 자랄 수 있다는 걸 계속 깨닫는다. 부모는 그저 사랑과 따뜻하고 친절한 말, 따뜻한 밥 한 그릇과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편안한 집안의 공기만을 제공하면 된다는 걸 알게 됐다.
집안을 안전하고 온전히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부모가 늘 자신을 돌보고 마음속의 송곳을 무디게 해서 먼저 편안하고 행복해져야 한다. 그래야 말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밖에서 가져온 상처와 때들, 부담감들을 온전히 내려놓고 푹 쉴 수 있고 다음날엔 말간 얼굴로 다시 일어날 수 있다.
그게 다다. 그것만 있으면 스스로 일어나서 자신의 삶을 멋지게 살 힘은 모두에게 이미 갖추어져 있다.